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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40년간의 광야 생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나온 날로부터 40년간의 광야 생활이 시작되며,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받아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으로 광야생활은 마치게 됩니다.
40년간의 광야생활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나중에 육체의 장막을 벗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은 전체 이스라엘 역사를 보았을 때 매우 짧은 기간입니다. 애굽에 내린 각종 재앙, 홍해를 건넌 일, 구름기둥/불기둥으로 인도하심, 물이 샘솟는 반석, 40년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린 하늘 양식 만나, 하나님의 성막, 십계명을 주심, 각종 피의 제사 등 일반적으로 겪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같은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40년간 광야 생활이라는 것은 매우 특별한 기간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가나안 정복전쟁, 사사의 시대, 열왕의 시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리, 북이스라엘의 패망, 남유다의 패망, 바벨론 포로시대, 포로에서의 귀환...이스라엘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모든 일들은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여러가지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역사속의 일들과는 구별되는 매우 특별한 계시가 40년간의 광야 생활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우리 크리스챤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전쟁을 연속선상에 놓고 영적 교훈을 찾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가나안 정복전쟁이 끝이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계속 이어가야만 합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40년간의 짧은 광야 생활입니다. 광야 생활의 시작과 광야 생활의 마침은 결국 우리 크리스챤에게는 신앙의 시작과 신앙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통해 40년간의 광야생활과 크리스챤의 신앙생활을 대조해 보고, 영의 거듭남, 순종, 부활과 휴거 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거듭남 (영의 구원)
많은 크리스챤들이 영생과 구원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천국의 비유로서 포도원의 품군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른 아침에 사람을 모으고, 오전 9시, 오전 12시, 오후 3시, 마지막으로 한시간 남겨놓고 오후 5시에 사람을 모아서 일을 시킵니다. 이제 오후 6시가 되어 포도원 일이 끝났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한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줍니다. 그러자 먼저와서 일한 사람들이 포도원 주인을 원망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품군들이 품삯을 받는 것은 한 데나리온 뿐입니다. 품삯에 차별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일했는가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천국의 비유로서 혼인잔치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혼인잔치를 준비합니다. 먼저 잔치에 청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종을 보내어 잔치에 오라고 하자 어떤 사람은 밭으로,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어떤 사람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서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잔치에 오지 않은 사람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살라버립니다. 그리고 종들을 사거리에 내보내어 악한자나 선한자나 만나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혼인잔치에 데리고 옵니다. 이제 혼인잔치 자리가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잔치자리에 들어왔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이 사람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선한자 악한자를 묻지 않고, 예복을 입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영생은 행위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도 차별없이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영생은 영의 거듭남, 영의 구원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이란 말은 영의 구원, 혼의 구원, 몸의 구원을 모두 포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구원을 얻은 후, 믿음으로 순종함을 배우는 광야의 생활을 혼의 구원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가나안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믿고, 죽음을 보지않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몸의 구원이 있습니다.
(2) 믿음으로 순종 (혼의 구원)
크리스챤은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영접함으로 사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의 죽음, 장사지냄, 세상과의 결별을 온 우주에 선포합니다. 이제 홍해를 건넜습니다. 사탄은 더 이상 믿는자를 노예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모든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에 척박한 땅, 광야의 40년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막을 예비해 주신 것처럼 크리스챤들을 각자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낮과 밤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언약괘)을 주셨고, 인간들이 죄를 지으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죄를 도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40년 생활은 믿음과 순종을 배우는 기간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가나안땅이 보이는 요단강가로 갈 수 있습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명시 8:14-16)
(3) 믿음으로 휴거 (육체의 구원)
어떤 분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순종과 믿음으로만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생활과 가나안 정복전쟁을 같은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가나안 정복전쟁이 끝이 아니고, 사사의 시대, 열왕의 시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역사에 크리스챤의 신앙의 여정, 신앙의 전체 단면을 매칭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해석방법입니다. 40년간 광야 생활만의 특별한 계시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야생활의 시작과 광야생활의 끝,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신앙의 시작과 신앙의 결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이 죽거나 휴거되는 것은 이 세상일이 아닙니다. 사망과 휴거는 둘 다 이 세상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수기 14:6-8)
요단강은 휴거를 소망하는 장소입니다. 엘리야는 육체의 죽음을 겪지 않고 요단강가에서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열왕기하 2:11)
여호수아와 갈렙이 애굽에서 나와 육체의 죽음없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휴거의 예표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휴거를 받을 수 있는 두가지 조건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40년 광야 생활을 믿음과 순종으로 잘 인내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술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나안땅을 주시고,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형제들을 낙담시키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요단강가에 서있습니다. 이제 다른 크리스챤 형제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굳게 믿는 자들은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메뚜기로 여기며 믿음이 약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형제를 낙심시키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절대로 요단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또 다시 척박한 땅, 광야로 되돌아가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첫댓글 그림과 게시글에 내용을 조금 추가했습니다. 배경설명이 부족해서, 많은 분들이 질문을 올려주셨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성경말씀을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창세기2장
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이때 불어넣는것이 영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
요한복음 20 :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영은 하나님 교통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영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3 : 21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요?
우리가 구원받으면 성령을 통해서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혼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내의 인격입니다.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모두 혼입니다.
자 자신을 혼이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 :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개역성경
베드로전서 1 : 9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킹제임스
님이 궁금 하시면 영어 성경이나 기타 찾아보세요
영혼이 맞는지 아니면 혼이 맞는지
즉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혼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혼은 나입니다.
몸은 흙이고요
몸은 첫째 부활에 구속을 받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