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니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눈물도 행복으로 변해가.
오 마이 갓!
서서 오줌 쌀 뻔했다.
그 후 난 윤찬영의 협박에 부끄럽게도 내 구린 폰을 선보였고
윤찬영은 “이거 작동은 되냐?”며 힘 있게 비웃은 뒤 자기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
연락 오면 재깍 튀어나오라는 말과 함께.
다행히 난 삥이라도 뜯을까 오늘 따라 천원밖에 없는 내 지갑을 저주하고 있었는데
윤찬영은 내가 빈티나게 생겼는지 차마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괴롭히겠다는 거야, 그 새낀.
앞으로의 일을 미리 짐작하자니 오금이 저린다.
걱정으로 잠을 뒤척여 초췌한 몰골로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정란이와 현경이가 마침 기다렸다며 내게로 저글링처럼 다가왔다.
“니 동창놈이랑 어제 어디 갔어? 핸드폰은 왜 안받아?”
그 새끼한테 연락 올까봐 겁나서 꺼놨지.
구린 핸드폰 이참에 그냥 한강에 확 갖다 버리고 싶다.
“권아미, 말을 해.
입술은 왜 이렇게 푸석하게 말라가지고 니 지금 병든 닭같애. 먼일이야?”
거의 혼수상태에 가까운 내 얼굴을 보며 현경이가 따뜻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 바람에 꾹꾹 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윤찬영 후헤엥 그 새끼가 흐어엉 나 죽일 흑 죽일 지도 몰라 엄마아-.ㅠ0ㅠ”
이때쯤이면 ‘윤찬영 그 자식 재수없다’ 라든지,
‘그 새끼가 뭔데? 어이없다. 걱정 마. 내가 조져줄게’ 등의
친구로서 사명감이 담긴 그런 한마디가 들려와야 하건만,
내 친구년들은 나의 우는 모습을 존나 추집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걔 앞에서 니 또 무슨 미친 짓을 한거야?”
“흑. 그런 짓한 적 엄떠.”
초등학교 때, 기억도 안 나는 원한 산 게 있긴 하다만.
“그 새끼 보통 새끼도 아닌 거 같다만.
어제 그 놈이 니 끌고 그렇게 가고 나서 함태양이 빡 돌아가지고
지랄도 그런 개지랄이 없었어.
애들 수군거리는 거 들어보니까 그 놈이 영빈고 뭐 되는 거 같더라.”
어쩐지 질이 안 좋은 것 같더니 정말로 무서운 아이였구나.
어쩜 그 괴롭힌단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를지도 몰라.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간다.ㅠ_ㅠ
“이 참에 니 그냥 그 놈이랑 알콩달콩 좀 해봐. 우리도 니 덕에 권력 좀 누리게.”
이건 또 무슨 깨강정 튀기는 소리냐?
이년들.. 지 일 아니라고 완전 함부로 말한다.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한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훌쩍거렸다.
오늘은 창문으로만 재영이 보는 걸로 만족해야지.
흉물이라 도저히 다가갈 수 없구나.
이럴 때는 나는 저주에 걸려 지하 감옥에 갇힌 괴물이고
너는 바라만 볼 수 있는 세계에 사는 어여쁜 공주님 같애.
s(-ㅅ-)(-ㅇ-)v 아미 논스톱 v(-ㅅ-)(-ㅇ-)z
집에 가는 길에도 혹여 윤찬영 새끼가 나타날까 방어태세를 갖추고
주변을 철저히 경계하며 걸었다.
조그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허공에 지른 헛주먹질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은 진짜 뭔가 깨름직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발자국 소리도 기분 더러운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발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거의 110동 앞까지 따라온 그 발자국은
드디어 내게 음흉한 숨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흘렸다.
“권아...”
순간 국기태권도의 노란띠 자세로 비장하게 등 뒤의 상대에게 일격을 가했다.
“끅.”
배를 정통으로 맞고 신음을 내뱉으며 눈앞에 쓰러진 놈은 윤찬영일거란 내 예상과 달리
흰 편의점 봉지를 손에 쥔 김뒈진이었다.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그렇게 격하게 인사를 할 필욘 없잖아.”
아무래도 내장이 파열된 거 같다는 재수 없는 소리를 하며
계속 상체를 구부리고 영감처럼 걷는다.
죄책감으로 사람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듯싶다.
김뒈진은 통로 앞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내 어깨를 잡아 세웠다.
“지금 샤브샤브 먹으러 갈 건데, 오빠랑 같이 먹으러 갈래?”
“윽. 내가 왜 그쪽이랑 단둘이 밥 먹남요?”
밥맛 떨어지게 시리.
질색하는 내 표정에 김뒈진은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로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웃더니
“단둘 아닌데.”
하며 턱으로 주차장 쪽을 가리켰다.
오마이갓.
김뒈진이 가리킨 곳에는 나의 기쁨덩어리 천재영이 차 안 조수석에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젠장. 오늘 얼굴 완전 괴물인데.
지금쯤 눈 붓기 좀 가라앉았으려나.
나는 잽싸게 몸을 돌려 은색 소화전에 어른어른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엉킨 머리를 손으로 빗질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김뒈진을 돌아보며 상큼하게 말했다.
“당삼 오케입죠!”
보글보글 육수가 끓고 서빙하는 직원이 그릇에 내온 야채를 솥 가득 쏟아 넣는다.
아직 젓가락을 들어올리기엔 성급한 상황인지라 다들 끓고 있는 육수의 기포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마주한 재영이의 얼굴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침이라도 흘릴까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요즘 통 안보이던데 뭐해?”
어묵이 둥둥 떠올랐고 김뒈진은 버섯과 어묵을 건져내 입에 넣으며 내게 물었다.
“공부하러 독서실 다녀요.”
“아, 그렇군... 뭐?!”
김뒈진은 입 안에 든 게 다 보일정도로 추하게 놀랐다.
아니 내가 공부 좀 한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반응 마음에 안 들어.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야?”
저 고운 입에서 참 아름다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수작이라니? 너무 날 불신하신다.ㅠ_ㅠ
“그, 그런 거 없다 뭐.”
천재영은 나를 의외라는 눈으로 잠시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끝까지 열심히 해.
언젠가 니 인생의 빈약한 볼륨에 실망하지 않으려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니가 원하는 걸 하는데 도움은 될 거야, 분명.“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한다.
어쨌든 재영이가 나를 격려해줬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출 수도, 감추고 싶지도 않다.
띠리리리-.
분명 폰을 꺼놨는데 언제 또 자동온이 되버린 건지,
하여튼 골 때리게 구린 내 폰 눈물이 다 난다.
이거 혹시 윤찬영 새낄지도 모르는데. 안 받아야지.
핸드폰을 살짝 허벅지 밑에 깔고 앉았다.
하도 고막 찢어지는 소리라 별로 효과가 없었다.
벨소리 울리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 받아?”
김뒈진이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걸 노골적으로 얼굴에 나타내며 내게 물었다.
나는 안받아도 된다고 괜한 관심을 밀쳐냈다.
“집일지도 모르잖아.
저녁때가 다됐는데 안 들어오면 부모님 걱정하실 거 아냐.”
“아 그런 건 아닌데. 아빠는 지금 연락 못해요. 일하고 있어서.”
“아빠? 엄마가 아니고?”
고것 참 궁금한 것도 많으셔라.
“엄마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혼?”
“돌아가셨어요. 병이 나서.”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 동정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얘기했다.
뭐 정말로 엄마 얘기에 가슴이 미어진다던가 하는 통증은 전혀 없었지만.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꺼내놓고 나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아미는 불우한 아이었구나.”
김뒈진은 위로랍시고 꺼낸 말에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그러게 평소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얘기를 왜 처 꺼내가지고.
우린 조용히 먹는 데만 열중했다.
칼국수에 죽까지 추가시켜 먹고 나오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셋은 여전히 말없이 주차를 해둔 아파트까지 걸어서 갔다.
차도 쪽이 가까워오자 천재영이 의식적으로 나랑 자리를 바꿔 걸었다.
이 세심한 배려. 기뻐서 미치겠다. 집에 가서 다시 추억하며 울어야지. 울기 예약!
길거리 흡연을 하며 걷던 김뒈진이 그 모습에 픽 웃는다.
“자상하기도 하셔라.”
재영이가 심상치 않은 눈초리로 김뒈진을 노려본다.
이 둘 사이. 도대체 뭘까? 가끔 보면 친한 척 연기 떠는 느낌도 나고.
둘 사이에 흐르는 엄청나게 냉랭한 기류에 왠지 내가 민망해진다.
“오홋! 저기 좀 갔다 가자.”
김뒈진이 가리킨 곳은 실내 야구 연습장이었다.
실컷 먹고 쓸데없는 헛스윙으로 포만감을 꺼트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김뒈진의 차를 타고 온 입장이라 의지와 상관없이 따라가야 했다.
재영이도 썩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프로필에 운동 안 좋아한댔지.
김뒈진이 동전을 바꿔오자 재영이는 안친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도 덩달아 안치겠다고 하자 김뒈진 입이 오리처럼 튀어나왔다.
그러기도 잠시 다시 능글맞은 미소를 치며 말했다.
“오빠 치는 거 구경하고 싶어서 그러구나? 너무 멋지다고 깍깍거리면 안돼.”
저 화려한 착각은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는 거냐?
한대 얻어터진 얼굴로 보고 있자 김뒈진은 윙크까지 처하고
녹색 철그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탕 탕-!
공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시끄러운 소리를 배경으로 맞은편 기둥에 기대 지루한지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닥을 발로 비비는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재영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감상했다.
나는 입가에 흐른 소량의 침을 소매로 닦으며 천천히 재영이 쪽으로 접근해갔다.
내 발자국 소리에 재영이는 내내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팔을 자기 쪽으로 거칠게 잡아끌었다.
거의 동시에 주먹을 쥐고 스피디하게 달려가는 남자가 내 등 뒤를 스친다.
펀치 게임을 즐기고 있던 남자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상황이었다.
“하여튼 넌...”
박력 있게 나를 잡아끈 재영인 내 팔에서 손을 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은 이미 하트가 동동 뜨고 코끝은 감동으로 샤르릉 알싸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기쁨의 눈물은 집에 가서 흘려야지.
어떡해, 너무 기뻐. 지켜줬어. 재영이가 또 날 지켜줬어.
검은자와 흰자 옆에 구슬들이 반짝이는 순정만화 여주인공 같은 내 눈동자가
부담스러운지 등을 돌리는 재영이었다.
오늘따라 친절한 이 모습. 게다가 부끄러워하고 있잖아.
이제 재영이도 점점 내게 마음을 열어가는 건가?
뒤통수를 긁적이는 재영이를 나는 벅찬 가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벅차다 못해 흘러넘친 마음으로 나는 용기를 내어 재영이 곁에 한걸음 다가섰다.
그래. 우리 재영인 이런 거 부끄러워 하니까 누나가 먼저 데이트 신청해주께.
“이, 있잖아. 내일 토요일인데 학교 마치고 뭐해?”
“뭐?”
“별거 없음 나랑...”
데이트 신청은 어떻게 하는 거냐?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 몰라서 미처 이 쪽 분야는 연구를 못했는데.
하여간 인간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어.
이렇게 언제 닥칠지 모르잖아.
한탄도 잠시, 나는 고심 끝에 강렬한 눈빛을 뿜으며 말을 토해냈다.
“나랑 놀자!!”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놀자’라는 말이 지나치게 초딩스러운가? 대답할 기력도 빠질 만큼.
재영이가 한숨을 쉬면서 다시 기둥에 등을 기대선다.
말을 붙을 수 없을 정도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재영이는 입술을 달싹이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진지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너 있잖아. 나랑 오늘 이렇게 밥도 먹고 그래서 좀 친해졌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손으로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재영이의 이어질 말을 난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좀 오버다.”
그래, 그럼 그렇지.
갑자기 날 좋아한다거나 내게 맘을 활짝 열리가 없는 거였는데.
이게 진짜 뻔한 반응인데. 실망이 가슴에 번져갔다.
무안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저린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도진의 힘이 꽉 들어간 뒷모습을 보고 있던 재영이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왜 좋냐?”
약간은 심드렁하고 조소가 섞인 그 말이 재영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부끄럽게 뭐 그런 질문을.
당황해 있는 나완 달리 천재영은 침착하게 한두 번 당한 일이 아닌 것처럼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내 얼굴보고 좋아하는 거 아냐? 날 제대로 알기나 해?”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
천재영이 한 말이 다 맞는 말이니까.
윤정이한테 받은 프로필 외에 천재영에 대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것도,
얼굴에 반했고, 그 얼굴 때문에 두근거린 것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니가 너무 다가왔어.”
울상이 된 내 머리를 가볍게 누른다.
그러기도 잠시 재영이는 한숨을 쉬며 동전을 다 쓴 도진이 그물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자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돌아가는 차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자기가 공치는 모습을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며
삐져있던 도진의 투정도 멈춰버리자 정말이지 숨 막히는 침묵만이 남아있었다.
학교와 가까운 동네로 들어간 김도진의 차는 골목을 돌고 돌아
담이 높은 고급빌라단지에 세워졌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재영이 안전벨트를 풀고 내릴 기세였다.
“그럼 들어가.”
재영이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워낙 으리으리한 빌라인지라 보안도 철저했다.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찍고 천재영은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가 천재영의 집이구나. 공부도 잘하는 주제에, 윽 부자잖아.
도대체 너는 부족한 게 뭐니?
공부도 못하고 집도 가난한 나와 비교하자니 비참해질 정도다.
내가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구경하는 모습이 우스운지 백미러로 나를 보던 김뒈진이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스토커.”
누가 스토커라고 그래?
눈을 치켜뜨며 김뒈진을 노려보자 김뒈진이 빈 조수석을 손으로
팡팡 내리치며 앞에 와서 앉으란다.
느끼했지만 난 뒷좌석에서 내려 김뒈진의 옆으로 가 앉았다.
김뒈진은 씩 웃으며 후진을 하기 위해 부담스럽게도 내 등받이에 손을 얹혔다.
매끈하고 잘생긴 옆선이 내 눈 앞에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움찔하자 또 피식 웃는다.
김도진.
자세히 뜯어보니 나 같은 애한테 미움 받기엔 서러울 만큼 흠 잡을 때 없는 멋진 얼굴이다.
나도 모른 새 목구멍을 타고 침이 꼴깍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아 난 진짜 잘생긴 얼굴을 너무 좋아하나보다.
속물 속물 이 빌어먹을 속물!
그러니까 천재영한테 그런 소릴 듣지.
실내 야구 연습장에서 했던 재영이의 말이 귓가에 재생되어 들리는 것 같다.
윽, 또 기분 나빠졌어.
그럼 그때 압구정에선 나한테 말한 건 뭐였어?
어차피 신경 쓰이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이렇게 잘라낼꺼면 그때 그런 말은 말았어야지.
“씨이... 얼굴보고 좋아한 게 그렇게 나쁜 건가?”
“누가? 재영이가 그래?”
“내가 걜 제대로 모른다고 좋아지는 마음을 막을 건 없잖아.”
뒤늦게 올라온 분한 마음 때문인지 눈을 깜빡이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기 예약한 게 이런 식으로 터져 나올지 몰랐다.
내 눈물에 김뒈진은 난감한 표정이다.
나는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눈물을 닦으며 억지웃음을 지어주었다.
“어떻게 들이댔길래 그래?”
큰 도로로 나가자 밀리기 시작한 차에 김뒈진은 한 손은 핸들을 잡고
나머지 팔은 창에 걸쳐 이마를 짚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시무룩해져서 아무 대답도 없자 김뒈진은 “엄청 들이댔나보군.”이라고 단정 지었다.
막혔던 차도가 뚫리기 시작했는데 김뒈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죽을 거 없어. 재영인 원래 그런 애야.
자기가 그어 놓은 선에선 잘 대해주는 가 싶다가도 그 이상을 넘어오면 용납 못해.“
어쩌다 그렇게 삭막한 인간으로 자라났을까?
하긴 그 얼굴로 좀 고백을 많이 받았겠어?
“천재영 주변엔 나 같은 애가 깔렸겠죠?”
하아. 말하면서도 비참하다.
나한텐 하나 뿐인 사람인데, 걔한테 난 그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니.
“그럼. 니 같은 애가 백 명은 있었을 걸.
중학교 땐 절정이어서 일일이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였지.“
과거를 회상하는 김뒈진의 눈빛이 아련해진다.
나라도 나 같은 애 짜증나겠다.
만난지 일주일도 안돼 좋다고 따라다니는 내게 어떤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래도 슬픈 건 어쩔 수 없어.
이런 현실이라는 걸 인정해야하는데, 받아들여야하는데.
내 감정이 그런 식으로 폄하되는 게 억울해서 슬프고 아파.
닦아냈는데 또 눈물이 흘러내린다.
“얼굴에 반해 좋아진 감정은 진심이 아닌가?
이렇게 욱신거리게 아픈 거 보면 절대 가벼운 게 아닌데.“
이번엔 도진의 나머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꾹 눌러놨던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어느새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한 도진은 내가 섧게 우는 걸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지독하다.”
내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도진은 담배를 입에 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좋아하는 줄 상상도 못했네.”
그 말에 왠지 머쓱해진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뱉는 도진의 눈이 다시 아련해진다.
“천재영이 딱 한번... 누굴 좋아한 적이 있긴 했지.
근데 그게 짝사랑이었어. 믿겨? 걔가 짝사랑을 했다는 게.
결론은 잘 안됐어. 감정에 배신당했다고 하는 게 더 옳으려나?
그래서 그 뒤로는 뭐... 알만하지 않아?
지금처럼 마음을 쾅 걸어 닫고 사는 거지.
그 녀석 옛날엔 제법 귀여웠는데 말이지.“
중간 중간 픽하는 웃음이 섞였지만 대체적으로 감정 없는 목소리로 줄줄 늘어놓는
김도진이었다.
재영이의 과거를 잘 알고 있구나.
삭막하게 변한 것도 다 그때 배신당한 것 때문이겠지?
다치지 않으려는 자기보호의 일종으로.
“미리 알았으면 말릴걸 그랬네.”
자조 섞인 김도진의 말이 이어졌다.
진짜 안 되는 건가?
원래도 없었지만 품었던 희망이 바닥을 보인다.
하나님 전 어쩌면 좋아요. 엄청난 벽에 부딪혔어요.ㅠ_ㅠ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처럼 차 안은 심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김도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담배 피는데만 집중했다.
그때 똑똑-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와 김도진은 일제히 조수석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권아미 너 여기서 뭐해?”
윽! 아빠였다.
아빠는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가까이서 확인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 니 새끼는 누구야?!”
명색이 목사란 사람 입에서 참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아빠는 김도진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다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자기 딸은 울었는지 눈탱이가 뻘개있지 안 그래도 수상한 김도진은
인상을 퍽퍽 쓰며 불량하게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으니.
우리 앞에 내려진 지랄 맞은 타이밍에 존경을 표할 뿐이다.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차에서 내리며 분노에 떨고 있는 아빠의 팔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아빠는 여전히 애꿎은 김뒈진을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안다시피 통로로 끌고 갔다.
“너 이눔새끼 한번만 더 걸리면 내 손에 혼날 줄 알아.”
“아저씨 미안해요.”
김도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리 부녀를 보고 있었다.
적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까지 싸그리 까먹을 만큼 아빠는
길길이 날뛰며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쳤다.
이 상황이 수습이 안돼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겨우겨우 흥분한 아빠를 달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의심을 놓지 않는 아빠 때문에
한동안 거실에서 설교를 들어야 했다.
아빠의 설교가 끝난 건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스위치를 키는 것도 잊은 채 어둠 속을 더듬어 침대를 찾아 교복을 벗지도 않고
뻗어버렸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건 아니었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창을 뚫고 들어왔다.
시리고 차가운 빛깔이었다.
또르륵 베개를 적시는 눈물.
아 또 생각나버렸어.
안된다는 거. 가망 없는 도전일 뿐이라는 거.
알고 있다. 일방적인 감정으로 시작된 내 사랑은 내가 포기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거.
아무도 아쉬워할 사람도,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는 것도.
이렇게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간다니.
아무런 힘도 없는 이 작고 나약한 감정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다니.
돌아갈 수 있어. 아직은.
그때처럼 다시 위로해보지만 이번엔 먹히질 않는다.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베개는 벌써 축축해져버렸다.
그딴 자식 그냥 포기해버리면 그만인데.
포기하기 싫어. 이렇게 쉽게 포기해버리기 싫어.
포기해버리면 그동안 뛰었던 내 심장이 너무 아깝잖아.
그렇다면 난 어쩌면 좋으니?
아빠가 깰까 새어나오는 울음을 막으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으니 공기가 뜨끈해지고 이불에서 내 입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결국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불을 걷어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짝사랑이면 뭐 어때?
좋아하는 동안은 행복했고,
가끔 걷어차는 천재영 때문에 아팠지만 그것 나름대로 기뻤잖아.
어차피 3개월도 안남은 한국 생활인데 못 사귀면 어때.
슈주 오빠들 좋아할 때 스캔들 나면 꺽꺽 울어대긴 했지만
어차피 내 남자가 될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처럼 천재영을 좋아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간절히 바라고 또 기도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말을 믿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청승맞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침에 일어나 익사체 같은 내 얼굴에 기절하기 전에 세수하고 붓기 예방해야겠다.
나는 냉장고로 달려가 우유를 꺼내 마시고
녹차 티백을 찬물에 담가 눈두덩이 위에 올리고 잠이 들었다.
s(-ㅅ-)(-ㅇ-)v 아미 논스톱 v(-ㅅ-)(-ㅇ-)z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교복을 챙겨 입었다.
나답지 않은 짓이었지만 1분이라도 어서 재영이에게 찾아가 말해주고 싶었다.
어제 답해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내 속에 찌꺼기처럼 남아서 영 개운치가 않았다.
준비를 하고 보니 평소 등교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빠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아빠는 이상한 짓을 한다면서 여전히 수상한 눈초리다.
나는 그런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오늘부터 현경이와 같이 아침에 공부를 하기로
희망2006 계획을 세웠다는 더욱 의심 갈 거짓말을 쳤다.
정직한 소년 링컨처럼 순백의 삶을 살고 싶었는데...
아빠 미안해요.
운동화를 구겨 신고 문고리를 돌리는데 아빠가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현관까지 따라나섰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연기를 해야 했다.
아빠가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소리 안 나게 달려 1506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초인종을 한 백번은 눌린 것 같다.
그제야 비로소 문 건너편에서 잠에서 덜 깬 하품 섞인 김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예요.”
나는 문에 바짝 붙어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답했다.
탈칵 잠근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엑! 이게 뭐야? 찔끔 열린 문엔 안전고리가 걸려 있었다.
김뒈진. 어제 일로 마음이 많이 상했나보다.
“왜?”
목소리가 진짜 삐졌다.
내가 좀 열어보라고 문틈으로 손을 넣자 김뒈진은 내 손을 찡기게 할 작정인지
문을 닫으려들었다.
그러나 소리를 지를 수 없기에 나는 얼른 손을 빼고 닫혀진 김도진의 대문을
멍하게 바라봐야했다.
“이 씹탱구리!”
아빠에게 들킬 순 없기에 문짝을 발로 까며 속삭이듯 분노를 풀었다.
다시 한번 문을 차려고 발을 뒤로 젖히고 발끝에 온 기를 다 모으고 있는데
김도진이 문을 열었다.
좀만 늦었으면 김도진의 잇힝한 부위를 걷어찰 뻔했다.
“죽을래?”
슛돌이 포즈의 나를 보며 김뒈진이 초딩처럼 말했다.
그 모습은 정말 얄미웠지만 일단 이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나는 비굴하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김도진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김도진이 잡은 내 손을 확 띠어내며 눈을 부라렸다.
“함만 더 아저씨라 부르면 점례할머니라 부를 거야.”
김뒈진이 화가 난 포인트는 아빠의 오해가 아니라 아저씨라 불렀기 때문이었다.
싱거운 새끼.
하긴 아직 20대 총각한테 습관적으로 아저씨라 부른 내 잘못이 크지.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직 잠옷 바람인 김도진의 팔을 끌고 갈 때가 있다며
끌고 나왔다.
신발장 위에 놓인 도진의 차 키를 들고서.
“스토커.”
잠옷차림으로 운전대를 잡은 도진은 재영이의 집 앞으로 데려가 달란 내 말에
싹퉁머리 없는 말투로 또 스토커랜다.
이 인간 저 말 너무 좋아해.
“역시 생각 없는 기집애였어 넌.”
핸들을 꺾으며 김도진은 사뭇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팬의 겸허한 자세로 재영이를 좋아하기로 했어요.”
“어쭈.”
“처음 시작한 사랑인데 질 순 없어요.
이 감정에 져버리면 다음에 올 사랑은 겁나서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 아저...”
큰일 날 뻔했군.
씨까지 발음했다간 김도진은 도로 한복판에 나를 떨구고 갈게 분명했다.
“오빠의 도움이 필요해요. 끝까지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거나
힘들다고 도망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런 너를 재영이가 엄청 싫어할 텐데.”
“괜찮아요. 백번 차이면 백번 다시 달려가고.
천 번 차이면 천 번이고 다시 가서 재영이한테 내 마음 보여줄거니까.“
“니가 오뚜기 케찹이냐?”
“하하하.”
썰렁한 새끼.
마구 까주고 싶지만 데려다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한약을 쥐어짜듯
웃음을 던져주었다.
김뒈진 자식과 힘겨운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재영이네 빌라 앞에 도착했다.
볼수록 위화감 느껴지는 빌라다.
그 으리으리한 자태가 “너 저리 꺼져.” 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때까지 애들 중에 니가 젤 심해.
너 마음 많이 다친다, 그러다.”
김도진의 말엔 걱정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런 도진에게 지켜보란 듯이 나는 승리의 브이를 날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체를 두드리며 오라이~를 기운차게 외쳐주었다.
봄이라지만 아직 아침공기가 차다.
나는 시린 손을 호호 불고 또 비비며 천재영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참새들이 통통 발을 튕기며 뛰어다닌다.
고거 참 노는 게 귀엽네.
그 모습을 쭈그려 앉아 쳐다보며 후후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참새 중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날아와 면상공격을 갈겼다.
기겁한 나는 뒤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는 꼴이 돼버렸다.
그때 멀리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재영이라 믿었던 나는 빌라 현관 쪽으로 고개를 빠릿하게 돌렸다.
순간 찬바람이 쌩- 내 몸을 날려버릴 듯 불었다.
“케케케케케켁.”
웃는 거 진짜 더럽다.
그냥 가던 길 곱게 가지 내 꼴이 뭐가 그렇게 우습다고 현관의 나온 여자는
입가에 손을 갖다대고 개콘 캐릭터 설인범 같은 웃음 지었다.
웃는 낯짝은 기분 나빴지만 여자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S라인의 착한 몸매 소유자였다.
두개 동으로 마주한 듯 서있는 빌라는 총 60가구 정도가 사는 빌라치곤 큰 규모다.
60세대 중 저 여자처럼 귀티나고 몸매 예쁘고 얼굴까지 상콤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부자니까 성형의 힘도 약간 빌린다면...
아아 이 빌라에 적들이 너무 많아!
매일 아침 감시해야 하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내 곁을 지나며 경멸의 눈빛을 지어주었다.
‘뭐 저런 땅거지 같은 게 여길 왔어?’ 라고 얘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도 질세라 ‘웃는 건 애자 같은 게.’ 라는 메시지를 담아 그 눈빛을 맞받아쳐줬다.
여자가 사라지자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짱돌을 집어던지며
“별꼴이 만땅이야!” 라고 외치고 분을 주체할 수 없어 씩씩댔다.
재영이가 연상타입이면 어쩌지? ㅠ_ㅠ
벌써 소유욕에 동요하고 있는 못난 나였다.
삼십육 겹으로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니
하필이면 이 순간 천재영이 빌라 현관을 나오다 내 모습에 멈칫하고 있었다.
“심장 떨린다 진짜.”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근데 이거 나를 보고 두근거렸단 거야?
그러나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천재영이 탁하고 답답하다는 눈으로 꽃샘추위에 코까지 빨개진 나를 쓸어 보았기 때문이다.
“뭐야?”
아침부터 찾아온 이유를 듣겠다는 듯 재영이 내 쪽으로 걸어오며 퉁명스런 말투로 물었다.
그래도 어제에 비한다면야 목소리가 7g정도 나긋나긋해있었다.
차분히 털어놓는다. 네 앞에. 밤새 정리한 내 마음을.
“어제에 니 물음 나 대답 못했잖아. 답해주려고.”
천재영은 그럴 필요 없는 데라 중얼거리며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이 되었다.
욱 했지만 팬의 겸허한 마음을 떠올리며 참았다.
“맞아. 니 얼굴 보고 좋아한 거 맞아. 사실이라서 어제 아무 말 못했어.
지금도 니 그 잘생긴 얼굴이 좋아.
그 얼굴이 아니었음 애초에 반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고.“
솔직한 내 발언에 어이없어하며 천재영은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나를 스쳐지나간다.
“거만하게 굴지 마. 새끼야!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욱한 마음이 터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천재영에게 내가 소리를 지르다니.
어쨌든 돌아보지 않았지만 발걸음을 멈추게는 만들었다.
“미안한데 난 알면 알수록 너 더 좋아졌거든. 니가 움찔해도 계속 다가갈 거거든.
날 실망시켜서 떨어져 나가게 해볼 작정이라면 어디 한번 해봐.”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던 천재영이 몸을 반쯤 내게로 돌린다.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무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난 포기 안 해. 천재영 니가 암만 차봐라. 내가 죽나.”
그에 재영이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살짝 미소 짓는다.
“마음대로 해.”
그리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 얼른 몸을 돌려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봤지롱~
재영이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홀린 사람처럼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까오!!!!”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이런 소소한 행복감...
니 곁에 있으면 적어도 이게 있으니까 견딜 수 있어.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장편 ]
아미 논☆스톱 vol. 09
치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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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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