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싸디 비싼 올가미.
아침 해님 안녕?
참새 친구들 안녕?
담벼락아 안녕?
지나가던 똥개 안녕?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구나. 호호호호.
재영이 집에서 학교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기에 나는 기쁨의 댄스를 마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의 운빨은 여기가 끝이었다.
모퉁이를 돈 순간 교문 앞에 서있는 윤찬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정녕 저를 버리시나이까.ㅠ_ㅠ
나는 모퉁이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벽에 바짝 붙어 얼굴만 빼꼼 내밀며
그들의 행각을 주시했다.
윤찬영의 똘마니로 보이는 녀석은 교문으로 들어가는 애들을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하나하나
실험 관찰하듯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나를 수색하고 있는 듯 했다.
어제 전화 안받은 것 때문인가? 윤찬영 진짜 할일 없다.
등교하던 애들의 웅성임이 점점 커져갔다.
윤찬영은 곤란한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문기둥에 기대섰다.
윤찬영의 입이 ‘미치겠네’를 발음하고 있었다.
그렇게 쪽팔리면 빨리 가, 이 새끼야!
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치며 교복 소매를 씹어 먹듯 물어뜯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지각하기 5분전이었다.
썅... 니 땜에 새벽 같이 나와서 지각하게 생겼잖아!
짜증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난 모퉁이에서 눈만 내밀어 윤찬영을 강도 높은 레이저빔을 발산하며 야렸다.
애먼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지각은 확실해져갔다.
등교하는 애들이 드문드문해지자 똘마니는 교문을 발로 까며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윤찬영은 그제야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며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는 듯 했다.
그래. 니들도 학교를 가야 되니까 이제 슬슬 가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또다시 나는 경기도 오산으로 가야했다.
이러다 결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새끼들은 여전히 우리 학교 앞 교문에 죽을 치고 있었다.
씨댕 저것들은 학교도 안가나?
이제 서있는 다리가 후들후들해질 지경이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자 학교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당연히 교문을 통과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그년 벌써 들어간 거 아냐?”
“아냐. 우리가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사방이 고요한 탓에 그들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럼 여태 안 올 리가 있냐?”
“아 씨발. 아침 일찍 부지런 떨면서 학교 갈 얼굴이 아닌데.”
내 얼굴이 어때서? 얼굴에 부지런한 대한민국 청소년이라고 적혀있구만!
쓸데없는 것에 흥분하고 있자니 드르륵...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안 오고 뭐해?]
현경이었다.
나는 행여 버튼 소리라도 들릴까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어 문자를 썼다.
[교문 앞에 윤찬영.]
제길 것들.
이제 좀 가라 좀!
[좋은 시간 보내♡]
이건 뭐야?
또 엄한 착각을 하고 있는 내 친구 현경이였다.
지금 내가 어떤 심정으로 벽에 껌처럼 붙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나저나 함태양 새끼랑 부딪히면 좆 되는데 이년은 왜 이렇게 안와?”
똘마니는 아직도 미련이 남은 눈으로 교문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한 듯 말했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윤찬영은 씁쓸하게 웃으며 교복 주제에,
교문 앞인 주제에 담배를 꼬나물었다.
“꼬맹이 이건 오기만 해봐. 싹딱션 후려 버려.”
싹딱션은 또 무슨 말이야? 싸대기에 영어 어미 tion 을 붙인 어색한 합성어인가?
뭐든 간에 어감이 살 떨린다.
이가 갈릴 듯 무시무시한 그 단어에 나는 뜨억 하고 놀라
모퉁이 담벼락에 몸을 더욱 바짝 붙였다.
가슴이 너무 놀랐는지 그만 “딸꾹!” 하는 딸꾹질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다.
100m 근방의 똥개가 전봇대에 쉬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정적 속에서
내 딸꾹질 소리는 의외로 컸기 때문에, 윤찬영이 이걸 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는 연신 침을 꼴딱 삼키며 튀어나오는 딸꾹질을 멈춰보려 했지만
횟수는 더욱 잦아질 뿐이었다.
빌어먹을.
이대로 있다간 딸꾹질 소리 때문에 저놈들한테 잡힐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머리 위에 높게 뻗어있는 학교 담벼락을 올려다봤다.
권아미, 넘을 수 있겠나?
아무렴 싹딱션보다 힘겹겠나.
음지의 자아와 대화를 마친 나는 굳은 결의로 주먹을 불끈 쥐고
요란하게 딸꾹질을 하며 월담에 도전했다.
호빗키의 나에겐 완전 미션 임파서블이였다.
그러나 죽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까웠기에 나는 돌 틈새에 손으로 집고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발악하며 다리를 찢어 위쪽을 디뎠다.
암벽 등반도 이보다는 쉬울 것 같다.
몇 번이나 신발 밑창이 으드득 갈리는 소리를 내며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는 내 몸뚱아리.
“도와줘?”
얼마나 낑낑대고 있었을까?
또다시 신발 밑창을 갈며 제자리로 돌아온 내 등 뒤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저 좀 올려주...”
의심의 여지도 없이 대답하며 뒤로 돌아보는 순간 허걱! 윤찬영!
나는 뒤로 자빠지듯 벽에 등을 바짝 밀착시켰다.
똘마니는 여전히 교문 쪽에 있는지 윤찬영 혼자였다.
“꼬맹이 너 임마...”
“레드선!”
견딜 수 없는 공포감에 내 머리가 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레드선에 윤찬영이 의식을 잃었으리 만무했다.
윤찬영은 어이가 없는지 푸훅 하고 웃음을 흘렸다.
젠장. 초능력을 배워둘 걸 그랬어.
“아, 안녕?”
“안녕은 지랄 놈의 안녕이냐.”
뒤늦게야 웃고 있는 윤찬영에게 어색한 인사를 보내자 윤찬영은 입가에 웃음을 굳히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저번 독서실 때의 정 안 드는 포즈로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어제 왜 전화 안받았어? 처 맞는다.”
히힉!
그 눈빛과 목소리가 소름 돋게 무서웠다.
윤찬영의 얼굴이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기에 나는 시선을 피하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쪽으로 튀어버려야겠다.
윤찬영이 내 신체 부위나 옷자락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아랫부분은 방심의 극치였다.
다급한 상황을 만나 그런지 두뇌회전이 좀 되는 느낌이다.
나는 윤찬영을 올려보며 베시시 웃음을 보여준 후
바로 몸을 숙여 잽싼 동작으로 왔던 길로 달려갔다.
그러나 윤찬영은 무슨 국가대표 100m계주 선수 같은 스피드로 나를 추격해
꾀부린 지 3초도 안돼 다시 붙잡히는 꼴이 돼 버렸다.
“어딜 쥐새끼처럼 도망쳐?”
내 가방을 붙잡은 윤찬영은 내 몸을 즉각 자기 앞으로 돌려놓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제 왜 전화를 씹었는지 이유를 읊어봐.”
“어?”
“씹은 적 없다 구라 까면 한대 맞는다!”
때린다고 진짜 때리는 남자는 또 처음 봤다.
윤찬영은 내 뒤통수를 잽싸게 갈겼다.
어찌나 손이 매운지 골이 댕댕 울린다.
제기랄. 짜증나서 씹었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난 이 자리에서 죽겠지?
그렇다면 변명 모드로 돌입해야겠다.
“그게 있잖아...폰이 구려서 자꾸 꺼졌어. ㅠ_ㅠ”
일부러 안받은 거였지만 나는 최대한 표정에 가련함을 실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연출된 글로시한 눈빛이 윤찬영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윤찬영은 미간에 잡힌 주름을 펴더니 이번엔 내 정수리를 툭 내려쳤다.
“어쩐지 졸라 고물딱지더라.”
“미안.”
나는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윤찬영의 운동화신은 발이 눈에 들어오자 확 밟아주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도무지 그걸 실천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여튼 빈티지 촌닭 같은 게. 됐어. 가봐.”
너무나 허무하게 윤찬영은 나를 놔줬다.
싹딱션을 경험하게 될까하는 두려움에 잔뜩 긴장했던 나는 자기 똘마니에게로
돌아가는 윤찬영의 뒷모습을 혼 빠진 사람처럼 바라봐야했다.
“준털아 가자.”
준털이라는 똘마니는 아직 안 왔는데 가도 괜찮냐며 윤찬영에게 묻는 것이
내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윤찬영은 할 일이 생겼다며 얼버무리고 준털이란 애의 머리를 팔로 두르며 학교 앞을 떠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1교시가 시작하기 전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도착했다.
짝꿍 연희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그 식은땀은 뭐냐며...
결론적으로 몸에서 양파 냄새난다고 내가 앉자마자 끊임없이 종알댔다.
양파냄새 나나? 겨드랑이를 들어 냄새를 맡으려 하자 연희가 전달이라며 접혀진 쪽지를 건넸다.
- 아침부터 뜨거운데? 둘이 뭐했어?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
현경이에게 온 쪽지였다.
현경이의 오해는 생각이상으로 단단했다.
나는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그 아랫줄에 ‘쓸데없이 연결짓지 마!’ 라고 쓰곤
옆 분단에 앉은 아이에게 전달했다.
현경이는 내 쪽지를 펴보더니 윙크를 던지며 손가락으로 따봉을 걸었다.
미친! 그래 니 맘대로 하세요..다 정말.
s(-ㅅ-)(-ㅇ-)v 아미 논스톱 v(-ㅅ-)(-ㅇ-)z
수업이 파하자 오랜만에 짱지에게 전화가 왔다.
밴드일로 할 말이 있으니 음악실로 당장 달려오란 소리였다.
“재영이는?”
[니는 동아리를 든거냐, 팬클럽을 든거냐?]
미안하지만 애초부터 내 입회 동기는 불순의 극치였다고.
재영이는 없지만 좋은 정보가 있다는 짱지의 말에 나는
자기도 모르게 파인애플 멤버가 되어버린 현경이를 데리고 음악실로 갔다.
음악실 문을 여니 하동혁 새끼가 문 앞에서 비웃음을 날리며 마중 나와 있었다.
오늘 속이 안 좋은 사람을 너무 자주 부딪쳐서 아침에 느꼈던 희열이 희미해져간다.
천재영 정화제가 필요해.ㅠ_ㅠ
현경이 때문에 얼굴이 상기된 채 서있는 짱지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애가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누구?”
“아 얘는 홍순구. 내 친군데 앞으로 우리 파인애플을 도와줄 거야.”
이름 하고... 참.
순구란 아이는 얼굴도 딱 순구스러웠다.
어찌나 촌실맞은지, 이마의 2:8 가르마는 금방이라도 ‘대한뉴스’를 진행할 것만 같았고,
눈과 눈 사이는 너무나 멀어 이틀은 걸어야 도달할 것 같았다.
안돼! 외모는 껍질일 뿐이잖아.
내면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사람을 판단해야지.
또 속물처럼 이런다며 스스로 반성과 성찰을 마친 후 나는 순구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진돗개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소유자는 꾸벅 인사만 할뿐
반갑다는 내 말을 무참히 씹어버렸다.
저 새끼가!!
나의 분노에 짱지가 순구는 원래 말이 없는 아이라고 해명하듯 말했다.
“좋은 정보란 게 뭐야?”
일단 목적은 이것이였으므로 나는 노골적으로 음악실 커튼 밑으로 짱지를 데리고 가 물었다
짱지는 해맑게 웃으며 이번 주 주말에 재영이랑 찜질방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시 나의 사랑스런 정보통!
짱지는 스파이짓 하느라 요즘 천재영 얼굴 보기가 고통스럽다며 궁시렁 대더니
귓가에 바짝 다가와 “그날 현경이도 데려와. 꼭.” 이라고 당부했다.
하 이 자식... 나는 짱지의 목을 낚아채 머리를 비벼 주었다.
커튼 밖을 나오니 현경이가 나와 짱지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윤찬영도 모자라 짱지랑도 엮으려고 오해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방 맞은 얼굴로 그런 현경이를 보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하동혁이 부르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활약할 5월 축제까지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스케줄 의논 차 모였어.
4월부터는 지윤이집이나 연습실 대여해서 본격적으로 연습 들어갈 거거든.
몇 명 더 영입하면 존나 좋은데... 우리 아직 각 섹션별로 나눌 만큼 사람도 부족하니까.
여현경 너 혹시 악기 다룰 줄 아는 거 있어?“
칠판에 뭔가를 산만하게 끄적이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던 하동혁의 갑작스런 물음에
현경이는 뜨끔해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초라한 대답을 토해냈다.
“리코더... 아 나 탬버린도 좀 하는데.”
짱지는 그 웃기지 않는 모습도 좋은가보다.
입이 빨간 마스크가 찢어놓은 마냥 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면 모든 게 불만인 불만덩어리 하동혁은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려 칠판을 바라봤다.
“그럼 현경이 내가 베이스 가르칠게.”
“그게 말처럼 쉽냐, 새끼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다, 당연하지.”
하동혁한테 무시당해 슬쩍 기분이 나빠져있던 현경인
짱지의 흑심이 잔뜩 담긴 제안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저 음악에 음자도 모르는 애가 어쩌려고.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짱지의 들뜬 모습에 그냥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새 현경이 옆으로 자리를 옮긴 짱지는 다음주부터 방과 후 음악실에서
크로매틱연습부터 시작하자니 어쩌니 신이나 지껄여댔다.
은근히 내 쪽으로 눈길을 던지는 현경이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후회하는 낯빛이었다.
밴드의 기본 골격이 대충 완성되었다.
키보드와 작곡 담당의 짱지,
일렉기타의 하동혁,
말이 없는 순구는 커넥션,
못미덥지만 베이스의 여현경,
그리고 나 보컬의 권아미.
뭔가 힘겨운 구성의 밴드 같지 않은가?
“나 어떡하지? 까아 돌아버리겠어.
여현경 인생에 촌스럽게 기타 따윌 퉁겨야 한다니.”
덜컥 베이스를 배우기로 해버린 현경이는 교문 쪽을 향해 걸으며
자기 머리카락으로 자학을 해댔다.
나는 점점 표정란화 되어가는 현경이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매점에서 산 닭갈비맛 핫바를 베어 먹었다.
교문을 통과하는데 나는 그만 반도 안 먹은 닭갈비를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꼬맹이 너 더럽게 늦게 나올래?”
또 윤찬영이다.
아놔. 이 새끼는 여기가 지 회산가? 출근도장 찍게.
윤찬영은 오자마자 마침 배고팠다며 내 손에 들린 핫바를 뺏어 갔다.
“오홀~”
오해의 주인공 윤찬영을 가까이서 대면하게 된 현경이는 내 귓가에 다가와
이상한 소리를 흘리며 내 옆구리를 팔로 쳤다.
“언니가 자리 피해줘?”
그녀의 오해는 거침없었다.
겉은 멀쩡하지. 속이 썩었다고 저 놈은!
나는 정말 떠나려는 현경이를 잡아 팔짱을 끼고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윤찬영 쪽으로 갔다.
“왜 또?”
싸가지 없게 내뱉고 싶었으나 목소리는 이미 모터가 달린 듯 떨고 있었다.
윤찬영은 현경이가 마음에 안 드는지 무안할 정도로 노려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손 내.”
“뭐?”
“손 내노라고.”
이 새끼가 복수로 내 손목을 후려칠 생각인가보다.
특히 핏줄이 시퍼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지와 중지를 호 불어가며 세게 내려친다면....
으악!!
나는 공포에 떨며 손을 내밀었다.
손목 핏줄이 안 보이는 쪽, 즉 손등을 위로 해서.
혹시 손가락 자를까봐 주먹도 꽉 쥐었다.
허공에서 덜덜 떨고 있는 내 뻗어진 손을 보더니 윤찬영이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친다.
“죽을래?”
그리고 완력으로 내 손을 돌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만들었다.
“손 펴!”
손가락을 자르는 거였어!ㅠ_ㅠ
나는 피 튀기며 땅바닥을 구를 손가락의 참혹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뒤로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뜻밖에 손바닥 위에는 묵직하고 딱딱한 감촉의 뭔가가 얹혀졌다.
동시에 현경이 입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핸드폰이 올려져 있었다.
“무, 뭐야 이건?”
“장님이냐? 핸드폰이잖아 병신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이 씹밤바야.
나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윤찬영을 눈에 띄지 않게 야렸다.
들키면 혼날지도 모르니 최대한 미약하게.
“나, 나 주는 거야? 왜?”
“빈티지 촌닭 니를 부려먹어야 되는데 연락이 안 되잖아.”
과연 음흉한 윤찬영이었다.
헉! 그럼 이것은 일종의 족쇄?!
“내 번호 뜨면 꼭 받아라.
안 받으면 뒈진다.“
마치 칼을 들고 협박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한 윤찬영은
그걸로 볼일이 끝났는지 정문 근처에 세워둔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갔다.
부르릉 소리를 내며 윤찬영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와 현경이는 멍청하게
그 모습을 보고 서있었다.
“야 너...”
먼저 정신이 든 것은 현경이였다.
“응?”
“존나 멋지다. 저 새끼.”
“뭐?!!”
나는 경악을 하며 현경이를 쳐다봤다.
“완전 괜찮다. 미친 듯이 사겨. 사겨 버리라고!”
덥석 내 두 손을 부여잡고 현경이는 눈을 야밤의 살쾡이처럼 빛내며
저 따위 소리를 죄책감 없이 외쳤다.
“생긴 것도 어쩜 여자들이 짝짝 자석처럼 붙게 생겼는데 너한테만 목매는 것 봐.”
죽이려고 목을 매는 거겠지.
“애칭도 러브리하다. 빈티지 촌닭. 까아.
이건 진진조(MBC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에서 밍키가 봉순이를 부를 때 애칭이잖아.”
나는 그런 미쳐버린 그녀를 보며 눈에 고이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저거 여자친구 있어.”
“뭐? 진짜야?”
"Of course."
나도 저 새끼한테 관심 없지만
저 새끼가 얼굴 예쁜 그 년을 두고 나 따위의 허접을 본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현실을 인정하니 좀 마음이 쓰리긴 하군.
“아니야. 내가 딱 봤을 때
니네는 킹카와 별 볼일 없는 여자의 사랑이야기의 정석을 밟아가고 있어.
원래 남주는 저렇게 무뚝뚝하고 싸가지 없지.
둘은 악연으로 만나. 서로를 갈구고 협박도 당하면서 마지못해 만나다보면
어느새 사랑이란 감정이 싹트는 법이란다.
방금 전 대사도 완벽해! 보통 전화 안받으면 죽는다고 협박을 하지.
그리고 따지고 보면 지금 그 여자친구란 것도
과거의 여자거나 짝사랑하는 불량한 여자애에 불과해.
아 이런 거보면 남주 친구 중에 귀엽게 생긴 애랑 여주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눈 맞는 경우도 있는데 쟤 주변에 그런 애 있니?“
현경이의 숨쉴 틈 없이 이어진 말에 나는 뒷걸음질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 소설이 애를 잔뜩 버려놨군. 니가 왜 한준우를 좋아했는지 답이 나온다.
혀를 끌끌 차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현경이를 버리고 나는 그길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장편 ]
아미 논☆스톱 vol. 10
치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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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2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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