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5.13 디지틀 조선일보
*<쌀밥전쟁> 제일제당 '햇반'에 농심 '햅쌀밥'도전장*
지난 8일 경기도 군포시 농심 안양공장. 농심의 '즉석밥'(전자렌지나 뜨거운 물로 데워먹는 조리된 쌀밥) 신제품인 '현쌀밥'생산이 한창인 곳이다. 그러나 보통의 생산라인을 머릿속에 그린 채 공장에 들어섰다간 충격을 받기가 쉽다.
입구에 불어오는 '당신의 작업복에 먼지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라는 경고문부터 심상치 않다. 생산라인 내부로 가려면 흰색 가운과 모자로 갈아입고, 5Cm정도 거리의 '에어샤워(바람으로 먼지를 제거하는것)'를 거쳐야 하며, 비누거품과 알콜 소독으로 손을 세척해야한다.
또 유리벽에 이어 필름막으로 이중 보호돼 있는 '진짜'라인에 진입하기 위해선 다시 캡술형 에어샤워기에서 10초간 먼지를 털어내고, 2~3초간의 신발 소독과정을 거친다. 흰색 가운 위에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이어져있는 방진복(먼지가 붙지 않도록 특수코팅 된옷)도 덧입어야한다.
이 공장의 청결도는 반도체 공장의 첨단 '클린 룸'(먼지.세균이 전혀 없는방)에 뒤지지 않는다. 이종태(40)생산 5과장은 "외부 VIP(귀빈)가 방문해도 내부 공정엔 못 들어가게 한다"고 자랑했다.
이 공장의 공정 내부는 1평방 피트(feet) 당 먼지 알갱이 수가 100개에 불과하다고 농심측은 밝혔다. 일반 공기중에는 먼지가 10만개가 있고, 반도체 클린룸은 10개 수준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클린 공장'을 거쳐야만 방부제없이 상온에서 6개월 보관이 가능한 '즉석 밥'이 생산된다.
이 공장의 연간 '햅쌀밥' 생산량은 3600만개. '햅쌀밥'은 전자레인지등에 몇 분만 데우면 정말 갓 지어낸 밥처럼 뽀송뽀송하다.
'식품의 반도체 공장'이란 별칭이 붙은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농심에 앞서 '햇반'이란 이름으로 '즉석밥'을 처음 상품화한 것은 제일제당이었다. 제일제당 박상면 햇반 마케팅 팀장은 "압력밥솥에서 고온의 증기.압력을 가해 밥을 지은뒤 뚜껑을 열지 않으면 상당기간 밥이 금방 조리된 상태를 유지한다"면서 "햇반은 이런 원리를 응용했다"고 설명했다.
무균 상태에서 진공으로 보관하는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일제당이 제품을 내놓은 초기엔 "밥마저 인스턴트(즉석) 식품을 먹을 수 없다"는 등의 반응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선 항공노선에서 최고의 기내식으로 각광받는 비빔밥도 햇반이 없었다면 등장하지 못했다.
'즉석 밥'의 진면목이 알려지면서 밥 시장도 서서히 성장, 제일제당은 지난해 27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33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선발주자 제일제당과 5년여 간의 준비를 거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 농심의 대결은 '밥시장'의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농심의 이길수 이사는 "창립 후 37년간 라면.스낵에만 매달려온 농심이 이제는 '밥 사업'을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정해 전 사력을 다할것"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2005년까지 500억원의 '밥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농심의 도전장을 받은 제일제당 김윤기 상무는 "가정용 밥 시장의 1%만 즉석밥으로 교체되면 5400억원의 시장이 형성되고, 2%로 확대되면 1조원이 넘는 시장이 형성된다"며, 수성의지를 분명히 했다.
맞벌이 부부와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주 5일제 근무 등이 정착되면 밥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것이 분명하다.
두 회사는 앞으로 밥 종류를 오곡밥.현미밥.등으로 다양화해 경쟁을 벌일것으로 보인다. 그다음 단계로 소고기국밥, 미역국밥, 육개장 국밥, 우거지 된장국밥, 추어탕밥 등 '국밥'류 신제품을 출시해 시장 쟁탈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식품 업계에 '밥 전쟁'이 입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