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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격투기 소식˚… 스크랩 [복싱] 매니 파퀴아오에 대하여...
도전...짱 추천 0 조회 50 09.11.17 1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78년 12월 17일, 빈곤과 혼돈의 정글 필리핀에서 그는 태어났다. 그곳에서의 삶이란 벌거벗은 생존, 잡화와담배를 팔던 아이는 건설현장의 잡역부로 일을 하다 15세 되던해 수도 마닐라로 가는 선편에 몸을 실었다. 엠마뉴엘 다피드란 파퀴아오, 아무것도 가지지못하고 태어났지만 장차 세계를 정복할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1995년 1월 프로 복서로 데뷔전을 치른 파퀴아오는 96년 1월까지 열한번을 싸웠고 그 중 네명에겐 라스트라운드가 종료되는 벨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당해 2월 그는 러스티코 토레캄포라는 선수를 상대로한 일전에서 3회 KO를 당하며 최초의 검은별을 달게 되었다. 패배는 가끔 좋은 경험이 된다고들 한다, 파퀴아오의 경우가 특별히 그랬던것 같다, KO패를 당한 후 불과 2개월만의 재기전은 비록 판정이었지만 파퀴아오는 96년 5월 부터 97년 6월 까지 여덟명의 상대를 모조리 KO로 때려잡게 되는데 이들 중엔 이성렬과 이욱기라는 두명의 한국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8연속 KO승의 마지막 상대는 OPBF챔피언이었다.

 

29개월 동안 21전을 싸우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한 파퀴아오는 이후 세번의 시합에서 전승 2KO승을 거두었고 KO당한 두명의 선수가 들은것은 경기의 시작을 알렸던 그것이 유일했다. 98년 크리스 마스 이브, 파퀴아오는 WBC 플라이급 타이틀을 노리고 타일랜드로 원정을 가게된다. 3차방어전을 치르던 챔피언 챠타차이 사사쿨은 그때까지 33승(26KO) 1패를 기록하던 강타자였지만 파퀴아오는 그를 8회에 스탑시키고 첫번째의 밸트를 손에 넣게된다.

 

호주출신의 선수를 상대로한 논타이틀전을 3회에, 멕시코 에서온 가브리엘 미라와의 1차방어전을 4회에 각각 정리한 파퀴아오는 2차방어전을 위해 다시한번 태국을 방문하지만 이번에는 3회에 격파당하며 쓴맛을 보게된다. 이미 플라이급에서의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던 파퀴아오는 슈퍼 밴텀급으로 두체급을 월장 하게되는데 이후여섯번의 시합을 모두 KO로 장식하게되면서 2001년 6월 미국무대에 초청을 받기에 이른다.

 

MGM그랜드 호텔의 특설링에서 벌어졌던 이 시합은 IBF 수퍼 밴텀급 타이틀 매치 파퀴아오는 그러나 원래 정해져 있던 도전자의 결장으로 인해 생긴 공석에 급히 투입되었던 대타였다, 상대는 남아공에서 온 챔피언이었고 챔피언은 5회까지 일방적으로 ?기다 6회에 터진 도전자의 레프트 직사포를 정면에서 받고 1차로 쓰러지게 두번째의 다운을 기록한 직후 경기는 종료되었다. 두번째 체급에서의 두번째 벨트를 손에 넣은 파퀴어오는 이 시합을 계기로 미국 프로모터들에게 그 상품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다.

 

 해당 동영상) 파퀴아오-래드와바전

 

2001년 11월 벌어졌던 아가비토 산체스와의 IBF,WBO 통합 타이틀전은 로블로와 버팅으로 얼룩진 무승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부터  미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4전 전승 전KO승을 캐리어에 보탠 파퀴아오는 페더급으로 진출해 당시 P4P에서 최상위권을 지키던 맥시코산 하드펀쳐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당시의 바레라는 에릭 모랄레스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멕시코 출신의 슈퍼스타였다, 이 두선수와 파퀴아오는 21세기의 벽두에 상호작용하여 복싱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게 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써 놓았던 한 꼭지의 글로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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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BOYZ 의 재림. 에릭 모랄레스와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두선수는 1977년에 대전했던 Z-BOYZ, 29전전승 전 케이오의 알폰소 사모라(Alfonso Zamora)와 45연승 44케이오의 카를로스 사라테에(Carlos Zarate) 각기 비유될 수 있다. 체급에 비해 큰 신장에 차가운 복싱을 구사했던 사라테와 에릭 모랄레스, 그리고 단단한 체구의의 열혈한이었던 사모라와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그리고 네선수 모두 MADE IN MEXICO였다.

 

모랄레스와 바레라의 대전은 단지 정상급 선수들간의 라이벌전 구도를 넘어선 개인적 비호감이 개입된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시작된다. 이는 두 선수들이 복싱스타일 뿐만아니라 성장환경까지 대척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인데, 맥시코 시티의 부유한가정에서 자라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던 바레라와 티후아나의 빈민가에서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모랄레스가 서로를 이해 할 수없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벤텀과 슈퍼밴텀급에서 3개의 밸트를 걸고 2000년 2월 19일에 벌어진 모랄레스와 바레라의 통합 타이틀전에 앞서 전문가들은 노쇠의 기미를 보이는 바레라를 절정기에 도달한 모랄레스가 쉽게 제압할것이라 에상했다.

 

경기는 팬들이 바라던 대로 끝없는 강타의 축제가 되었다. 특히 이경기의 5라운드에선 초반 바레라가 레프트 훅을 정확하게 적중시키며 모랄레스를 로프로 몰았다가 모랄레스의 반격에의해 그로기에 몰리는장면을 연출하여 링지선정 올해의 라운드로 선정된다. 채점자들을 고민에 빠뜨렸던 이 경기는 라스트라운드까지 역전에 역전이 거듭되는 최고의 명승부였고 링지는 베스트 라운드에이어 그해 최고의 경기로 이 시합을 선정하게된다.

 

하지만 모랄레스에게 승리가 돌아간 결과는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WBO는 타이틀을 모릴레스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모랄레스-바레라 1차전 하일라이트

  

 

모랄레스 바레라의 2차전

 

첫대결을 통해 서로를 학습한 두 선수는 2차전에선 치밀한 연구를 통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대결에 임했다. WBC 페더급 타이틀 매치였던 이승부 역시 부심들의 채점기록에 어려움을 준 막상막하의 명승부였다. 4라운드에 바레라는 쓰러지게 되는데, 이는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의 견해론 모랄라스의 보디공격에의한 다운임에도 불구하고 주심은 이를 슬립다운으로 판정하게되며 결과적으로는 또한번의 판정시비를 낳게된다. 1차전과는 반대로 재전의 피해자는 모랄레스가되었다.

  

Enter the Conqueror. 정복자의 등장.

 

엠마뉴엘 '메니, 혹은 패크맨' 파퀴아오는 필리핀산 사우스포 파이터다. 그는 WBC  플라이급의 왕좌를 어이없는 감량실패로 빼앗기고 두체급을 올려 2001년 IBF 슈퍼벤텀급의 밸트를 쟁취한다. 그리고 2003년에 모랄레스를 누르고 경량급의 통일천하를 꿈꾸던 멕시코의 강타자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와의 일전을 벌이게 된다.

대부분의 팬들은 바레라의 강타가 패크맨을 잠재우리라 믿었지만 시합의 결과는 팬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가 되었다. 사우스포 스텐스에서 직사되는 매니 파퀴아오의 주포, 왼손 스트레이트에 의해 바레라는 초반부터 캔버스를 기었고 세번의 다운을 빼앗긴 끝에 결국 11회에 TKO로 처참하게 파괴되고 만다.

 

파퀴아오-바레라 1차전 하일라이트 

 

바레라-모랄레스의 러버매치 - 포르티시모 알레그로 콘브리시오

 

양선수 모두 노란색글러브를 착용하고 임했던 이 경기는 세차레의 명승부중에서도 단연 백미였다.
빠르고 격렬하게 전개된 강펀치의 트레이드로 정의될수있는 풀라운드의 이 대결은 언어로는 표현 할 길없는 장대한 드라마였고,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팬들을 감동시켰다. 보디를 찍고 안면으로 올라오는 바레라의 왼손연타는 전성기의 차베즈를 연상시켰으며 장거리의 원투에 이은 레프트어퍼로 바레라를 괴롭히던 모랄레스의 스킬은 로페즈의 그것과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명 해설자 짐 림플리는 이 시합을 두고 '종료의 공이 울릴때까지 야만적으로 펀치를 교환했던,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트 파이팅'이라 묘사했다.

 

바레라의 승리로 돌아간 이시합의 끝에 모랄레스는 바레라에게 물통을 집어던지는 신경질 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때까지 상대를 칭찬하지 않았던 바레라는 이 시합이후 모랄레스를 최고의 파이터로 인정하게된다.

 

바레라-모랄레스 3차전 하일라이트 

 

 

모랄레스 파퀴아오의 침공을 저지하다.

 

바레라를 완파하며 두체급을 정벌하고 멕시칸에 의한 경량급의 지배를 분쇄하려던 매니 파퀴아오는 2005년 3월19일 슈퍼페더급의 왕자 에릭 모랄레스와 일전을 벌이게 된다.
 
모랄레스는 이 시합에서 전레없이 언더독으로 취급되는 수모를 겪지만 신장과 리치, 그리고 빠른 스텝을 적극적으로 살리며 카운터위주의 경기운영으로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어 자존심을 회복한다.

 

 

                                 

 

 

 

정복자 대업을 이루다.

 

2006년 1월21일 필리핀의 최신형 전차 패크맨은 다시한번 에릭 모랄레스의 영지를 침공한다.
경기의 초반은 1차전과 흡사한 양상으로 흘러갔지만 중반부터 험악한 기세로 달려드는 매니 파퀴아오에게 수차레의 강력한 보디 훅과 명치 스트라이킹을 허용하면서 모랄레스는 기동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10라운드, 매니 파퀴아오를 상대로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가 모두 마찬가지였듯, 모랄레스역시  작열하는 레프트 스트레이트의 포격에 의해 두번의 다운을 기록하고, 매니 파퀴아오는 레프리스탑의 TKO승을 거두며 3체급의 타이틀을 획득한 정복자로, 필리핀의, 그리고 세계복싱의 새로운 영웅으로 그 이름을 드높인다.

 

http://youtube.com/watch?v=0R_7ZjV3IWY

 

에필로그.

 

2006년 11월 에릭 모랄레스와 매니 파퀴아오는 3차전을 벌이지만 이미 에릭모랄레스는 예전의 날카로움을 상실한 상태였고 매니 파퀴아오에게 원사이드로 끌려가다 3회에 KO패를 당하게 된다. 그는 캐리어 전반에 걸쳐 최강의 상대들과 강렬한 타격전을 무수히 벌여왔고, 이시점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의 영지는 앞으로 매니 파퀴아오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그곳에선 또다른 명승부들이 벌어지게 될것이다.

 

http://youtube.com/watch?v=e6otH0_D7RQ&mode=related&search=

 

바레라와 모랄레스 파퀴아오는 현대복싱의 3대 스타일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왼손훅과 레프트 바디를 앞세우고 돌격하는 파이터 바레라,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어지는 화려한 컴비네이션과 현란한 움직임의 복서 모랄레스,

 

그리고 지저분한 라이트잽으로 상대를 교란한후 치명적인 왼손의 직사포로 상대를 파괴하는 사우스
포 매니 파퀴아오,

 

이들의 교전기록은 30여년전의 먹이사슬에 못지않은 명승부의 연속이었으며 장대한 복싱의 역사에 중요한 한 장으로 기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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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니 파퀴아오의 대전기록에서 또한명 빼 놓을 수 없는 선수는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다. 두 선수간의 1차전 첫라운드에 파퀴아오는 원투 스트레이트를 적중시켜 다운을 빼았아 냇고 이후 같은라운드에 두번의 다운을 더 뺏아내게 된다. 마르케스는그러나 초반의 데미지를 훌륭하게 수습해 이후의 라운드에서 는 오히려 파퀴아오를 압도하게 되었고 판정은 결국 무승부가 되었다. (부심중 한명이 1라운드의 채점을 10-7로 기록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후일 인정하게 되는데 세번 다운 당한 라운드의 경우 10-6으로 보는것이 정상적인 때문이다.) 

 

파퀴아오-마르케스 1차전 1라운드 

 

2008년 3월 파퀴아오는 마르케스와 재전을 치루었다. 마르케즈는 WBC 슈퍼 페더급의 챔피언이었고 파퀴아오는 필리핀 최초로 세체급에 도전하고 있었다. 1차전과 다름없이 박빙의 난타전이 초고속으로 전개되던 내용이었는데 승리는 스플릿 디시전으로 파퀴아오에게 돌아갔지만 일부전문가들은 판정결과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마르케스의 진영은 6백만불의 게런티를 걸고 리매치를 요구했지만 파퀴아오는 네체급을 노리기 위해 그 제의를 거부하게 된다.

 

파퀴아오-마르케즈 2차전 하일라이트

 

2008년 6월 라스베가스의 만달레이 베이 호텔 특설링에서 매니 파퀴아오는 WBC 라이트급 챔피언 데이비드 디아즈와 대전했다. 사우스포 끼리의 이 대전에서 파퀴아오는 오른쪽으로 돌며 라이트를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마치 거울에 비친 오른손 잡이들의 대전과도 같았던 이 시합에서 상하를 나누어 치고 쇼트 어퍼를 간간히 섞는 파퀴아오의 라이트와 체급을 네단계(사실은 5단계로 보는것이 옳을듯, 그는 밴텀급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나 올렸음에도 여전한 위력의 레프트로 상대를 철저하게 유린하는 모습을 보며 이 경기의 해설자 짐 림플리는 다음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라이트급에 나타난 왼손잡이 잭 댐시다, 그의 스피드와 파워는 비교를 거부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난타를 당하던 챔피언은 9회 결국 파퀴아오의 레프트를 카운터로 먹으면서 산화하고 말았으며 그 날 매니 파퀴아오는 아시아인으로써는 최초로 네체급을 정복하게 된다.

 

파퀴아오-디아즈 9라운드  

 

오스카 델라호야와 매니 파키아오의 대전은 흥미위주라고 해도 될만큼 상궤를 벗어난것이었다.  매니 파퀴아오의 체격은 잘 봐줘도 페더급의 그것이고 오스카 델라호야는 주니어 미들까지 대응할 수 있기때문이다. 11Cm의 신장차이와 비록 계체에서는 엇비슷한 체중이라도 파퀴아오의 경우 리바운드(계체량이 끝난 후 시합까지 24시간동안 음식물과 물을 적절히 섭취하여 체중을 회복하게되는것)는 없을것이며 호야의 경우 라면 얘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설사 리치의 차이를 극복하고 파퀴아오의 주먹이 적중된다 하더라도 미들급의 주먹맛을 본 호야에게 그것이 통할지, 뿐만아니라 리치의 차이를 스피드로 극복이 가능할지도 가늠이 되지않았고 그런이유로 이 시합은 파퀴아오에게 너무나 불리하게만 보이는것이 사실이었는데, 그 결과 또한 세간의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파퀴아오-호야 하일라이트

 

 

파퀴아오의 이번 승리는  스피드와 헤드웍의 화합물이다. 왜냐하면 파퀴아오는 거리(리치)상의 불리를 속도로 극복했고 한발이라도 받으면 경기가 그대로 끝날 호야 공격을 현란한 상체움직임으로 무위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절초풍할만한 결과였고 빛나는 승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것이다. 호야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몸이었고 시합에 타이틀이 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합이 파퀴아오의 상업적 가치를 더 높이긴 했지만 앞으로 만나야할 상대들을 생각해 보면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유리할 듯 하다. 파퀴아오가 호야만한 사이즈의 상대와 다시 싸울 일은 없지 않겠는가.

 

매니 파퀴아오는 78년생, 미국나이로 29세다. 이제 기량이 만개한 지점,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가게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마르케즈와의 러버매치는 꼭 성사되어야 할것이며 24연승 전 KO를 기록중인 사우스포 에드윈 발레로는 분명 파퀴아오를 향해 칼을 갈고있을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우리는 알수 없다, 그저 기다릴 뿐.

 

 

 

 

참고) 에드윈 발레로에 관한 예전글....21연승 할때까지의 내용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엘 잉카' 에드윈 발레로는 1981년 베네주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에 복싱을 시작하게되고 86승 6패 57KO의 아마추어 경량급으로선 비상식적인 케오율을 기록하며 프로로 전향하기 전 3년간 중남미 아마추어 챔피언을 지낸다. 20세가 2002년 발레라는 프로의 링에 섰고 첫 상대에두아르도 에르난데즈를 시작과동시에 난타해 1회 KO로 때려잡으며 데뷰의 신고를 하게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Lsg9DYKachk&mode=related&search=

 

발레로 대 에르난데즈

 

2005년 에드윈발레로는 헤로 반도라는 일본선수를 상대로 16전째의 시합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합에는 1905년 미국의 라이트급 복서 영 오토가 가지고 있던 15연속 1회 KO라는 대기록이 갱신되기를 기대하는 복싱팬들의 기대가 걸려있었다. 발레로는 반도를 1회에 초살시키면서 세계복싱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고 그는 이 기록을 와이버 가르시아를 상대하기까지18연속 1회 KO로 연장시키게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GSMCjkxS3U

 

발레로 대 반도

 

그를 상대로한 두번째 라운드를 최초로 경험한 선수는 Genaro Trazancos라는 맥시코산 터프가이였다, 그러나 그역시 버티는것은 2회까지엿고 약간은 석연치 않은 TKO 판정에 의해 결국 물러서고만다.

 

http://www.youtube.com/watch?v=YAZregpxgAQ

 

발레로 대 트라잔코

 

2006년 8월 발레로는 빈센트 모스퀘라가 소유했던 WBA 슈퍼페더 타이틀을에 도전한다. 스피드가 뛰어난 테크니션이었던 모스퀘라는 사우스 포 발레로의 왼손강타에대한 대비가 되어있엇고 발레라의 강타는 번번히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이시합의 3라운드에서 모스퀘라는 발라라의 턱에 두발의 레프트 훅을 꽃아넣었고 발레라는 최초로 캔버스의 맛을 보게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MPNmAg7_5E

 

발레로 대 모스퀘라 3라운드

 

그러나 10라운드에 발이 느려진 모스퀘라는 발레라의 왼손훅을 허용하고 TKO패를 당하고 발레로에게 타이틀을 내주게된다. 바레로는 올 1월 마이클 로자다를 1회에 박살내면서 21전 21승 21KO의 전적을 기록하고있다, 이제 그는 1950년대 미국의 헤비급에서 라마 클락이 세웠던 44연속 KO의 기록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사우스포 매니 파퀴아오라는 고봉이 버티고 있더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듯하다. 파퀴아오 처럼 발레로 역시 사우스포이고, 보통 사우스포가 그러하듯 교과서에 없는 복싱을 구사한다, 발레로는 문성길을 연상시키는 어색한 동작과 어기적거리는스텝을 가졌고 테크닉면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또한  오로지 강타만을 위주로 끌고나가는 그의 경기 방식과 연타시 턱이 들리는 버릇은 그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현역 복서중 파운드 포 파운드 최강의 헤이메이커인 에드윈 발레로는 세계의 복싱팬들로부터 광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있으며 그의 연속KO행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초미의 관심사라 할 수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JqN-bvRymrk

 

발레로 대 로자다

 

http://www.youtube.com/watch?v=t4XMVrDsc7Q

 

발레로 하이라이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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