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청학연못 답사기(2006. 6.24~ 6.25 일행 5명)
평택(오전 9시출발) - 경부고속도 - 대진고속도 - 88함양IC - 함양시내 - 오도재 - 마천면 - 백무동주차장 - 한신계곡 - 가내소 - 세석 - 영신봉 - 비박세석 - 촛대봉 - "청학연못" - 촛대봉 - 세석 - 한신계곡 - 백무동 - 마천면 - 화계 - 생초IC - 집으로(오후 8시30분도착)
밝달뫼 6월 정기산행은 지리산 "청학연못"이다.
작은 물 웅덩이 하나 찾으러 1박짜리 배낭지고 5시간의 계곡을 올라, 세석에 서야 한다는게 영 부담스럽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조회한 그 곳의 정경과 소개를 담은 글을 읽는 순간,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다. "그래, 또 떠나자!" 여지껏 산에 가는게 이유가 있어서 갔는가? 무거운 인생의 등짐을 짊어 진 채, 희망의 삶을 살아가듯 또 걸어 보는 것이다. 거기에 무언가 있다니깐!
비탈님의 9인승 이스타나가 나타났다. 나를 포함한 일행 5명의 배낭이 맨 뒷 좌석을 꽉 채운다. 나의 싼타모는 오늘 쉬게 해 주자. 주말인데 고속도로엔 차가 별로 없다. 낼 비가 온대서 모두들 집에서 쉬나 보다. 날씨는 맑고, 덥기까지 하다. 늘 다니는 지리산 가는 길이 , 이젠 서울 지나 일산가는 것 보다 짧게 느껴진다. 이스타나 핸들이 떨린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금산인삼휴게소에서 점검 후, 이상 없음 확인한다. 지리산에 지남철 달라 붙 듯 빨려 들어간다. 오도재 전망대에서 지리산의 주능선을 감상한다. 칠선, 한신계곡을 확인 한 뒤 그리로 방향을 잡는다.
비탈님, 건빵님의 110리터짜리 배낭은 항상 공포스럽다. 사람보다 크게 보여 더욱 그렇다. 배낭 카바의 "밝 달 뫼" 로고가 선명하다. (가자!) 백무동 주차장에서 한신계곡으로 들어선다. 풍부한 수량의 계곡과 주변 풍광은 지친 삶의 위안이다.
등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맘 속으로 "경치 좋다!" 라는 감탄사가 날 때마다 그 무거움을 잊는다. 오후 6시. 마지막 급경사를 지나서 세석목책에 다다랗다. 시원하다 못해 쌀쌀한 바람에 마주서서 세석평전을 빼꼼히 내려다 본다. 1986년에 지금있는 저 산장자리에 블럭(?)으로 축조된 백열전구 달린 산장에서 30여명이서 함께 일박한 기억이 떠 오른다. 그당시 운동장처럼 벗겨진 삭막한 세석이 이젠 구상나무와 갖가지 관목으로 푸르러졌다. 큰 바위틈에서 쏟아져 나온 세석천은 예쁘게 치장된 수돗가로 변해졌고, 주변도 잘 정비되어 있다. 산에 갈 때 마다 쓰레기 모아 내려 온 보람을 느낀다.
영신대에서 일박 계획을 뒤로 미루고 세석 고개마루 비박처에 여장을 푼다. 비닐치고, 배낭 풀고, 버너 켜고, 삼겹살 볶고, 소주 꺼내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워 마지막으로 한잔씩 들이킨다. 5명이 자기엔 자리가 비좁다. 나는 혼자 뚝 떨어져 돗자리 깔고 새로 구입한 침낭커버 씌운 침낭에 들어간다. 너무 더워서 눈을 뜬다. 주변엔 동물들의 숨소리, 발자욱 소리,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소리가 잠을 설치게 만든다. 그래도 지리산의 포근함은 여전하다. 아무 걱정없이 깊은 잠을 청한다. 내일 찾아갈 "청학연못"의 희망을 가득 품어 안은채...
후드득...후드득...소리에 잠을 깬다.
비탈님 순간, "기상!" 모두 침낭을 박차고 나온다. 비가 올 것 같다. 건조 해장국에 지어진 밥을 넣고 죽을 끓인다. 누룽지와 섞어서 구수한 아침식을 대신한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마지막으로 비닐 걷고, 꽁초줍고, 쓰레기 세봉지 각자 손에 쥔다. 세석산장 밑으로 들어서니 거세게 비가 몰아친다. 차가운 빗줄기, 판쵸우의, 우비로 중무장을 하고 카메라는 비닐로 소중히 싼다. 체력이 부족한 데르즈님은 세석산장에서 배낭을 지키기로 했다. 촛대봉으로 향한다. 남동쪽으로 부터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친다. 촛대봉에서 장군봉쪽으로 경계를 넘는다. 여기부터 주위깊게 "청학연못"의 들머리를 찾아야 한다.
약간의 욕심이 앞서 건빵님과 나는 사진에서 미리 본 것 같은 지역으로 뛰어든다. 어지러운 소로길, 비박흔적, 여기다 싶어 내려섰는데...그건 오늘 내린 빗물이 고인 웅덩이였다. '허탈감'....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탈출한다. 이젠 리더의 지시에 따르자. 욕심을 버리자. 나와 윤셈님은 "갈라진바위" 근처에서 기다리고, 비탈님과 건빵님은 한참을 내려간다. 쏟아지는 안개비 속에서 내려 오라는 외침. 정신없이 능선을 내려가니 양쪽에 돌기둥이 두개 서있고 우측으로 약간의 공터. 그리고, 작은 길이 보인다. 넷은 그리로 들어선다. 꼬리표가 한개 보이고, 직감으로 맞다 싶어진다. 내리 돌면서 우거진 숲길을 헤치고 나가니 거기에 웅덩이가 보인다. 거대한 슬랩밑에 예쁘게 펼쳐진 "청학연못"이었다. 정적인 연못옆엔 샤워 꼭지처럼 시원한 폭포가 내리 쏟아진다. 아주 작은 폭포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거기엔 수백년의 시간이 멈춰 있었다. 변한게 없었으니깐. 중국엔 무릉도원, 티벳엔 샹그릴라, 우리에겐 청학동이 있었다지. 잠깐 다녀 왔는데 시간이 엄청 흘렀다는... 비는 계속 쏟아진다. 온 몸은 젖었지만 우리 넷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여기저기 들러본다. 사진 찍고, 각자 지식을 총 동원하여 이 연못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되돌아 갈 시간. 촛대봉으로 다시 올라 가는데 무척 지루하다. 세석까진 더욱더 더디고... 주룩주룩 비내리는 세석산장 밑에서 김치라면과 즉석삼계탕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비가 오니 정기산행팀도 별로 없다. 빠른 하산길 한신 계곡으로 다시 들어섰다.
어제 오름길에서 놓친 계곡의 비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내려온다. 백무동 주차장엔 우리 이스타나 혼자 뿐이다. 뒤돌아 보니 운무로 지리산이 감춰진다. 마치 너에게만 청학동을 보여 주고 다시 숨겨 버린다는 마고 할멈의 주술처럼....
비탈님 쉬시오. 가는 길은 내가 운전하리다. 처음 잡는 승합9인 이스타나. 지난 달의 비박처 함양 독바위 밑을 지나면서 운전기능이 몸에 와 닿는다. 생초IC에 들어서자 시속 90Km, 비는 오락가락 와이퍼를 흔들고 조치원에서 폭우를 뚫고 평택에 들어서니 오후 8시 20분. 비가 오지 않는다. 수고하신 팀원들께 생맥주로 인사를 대신한다. 집에 오자마자 신발, 배낭, 판쵸우의, 배낭커버를 욕조에 넣고 비벼 빤다. 아내에게 이거까지 맡길 순 없지. 그 좋은 청학동을 다녀오게 후원해 준 사람에게....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1986년엔 세 석 에 함 께 있 었 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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