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할거라면 이것만 꼭 기억해주세요
2024.01.19
앞서 밝혔듯 나의 어른 혐오증의 첫 시작은 엄마에 대한 몰입과 동일시에서 비롯됐다.
엄마가 미워하는 어른을 그대로 미워하는 것, 그 첫 상대는 엄마의 남편, 즉 나의 아빠였다.
엄마, 아빠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싸우고 다시 좋아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수험생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2 때 결국 이혼했다. 방식은 엄마가 집에서 나가는 쪽이었다. 하지만
양 쪽 모두 최선을 나에게 다해주셨고, 수능 전날은 서로 불편했을 텐데도 파격적으로(?) 엄마가
집에 와 전복죽을 끓여주는 뭔가 웃지 못할 따뜻한 촌극(?)마저 펼쳐졌다.
암튼 나의 이런 가정사를 굳이 얘기하고 다니지 않았음에도 성인이 된 나에게
종종 지인들이 이혼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이혼은 흔하다면
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고 심지어 나는 간접적으로 겪었기에 친숙한 소재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이혼하고 싶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일단
말리며 책 한 권을 선물한다. 곽경희 작가의 <남편이 자살했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극단적인 대안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전문 작가도 아닌 중년의 여성이 직접 겪은
충격적인 일에 대해 더없이 솔직한 필체로 쓴 날 것의 글을 읽고 또 읽었을 정도로 인상에 남은 책이다.
이 책을 정독한다면 이혼하려고 먹은 독한 마음이 조금은 녹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선물해 본다.
아래는 나도 마음에 담아두려고 타이핑해 둔 책 내용 일부다.
남편이 떠나고 실질적인 가장이 되니 나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중략) 죽기보다
싫었던 병원을 다시 내 발로 찾아갔다. 다시는 근무하지 않겠다고 버렸던 간호사 신발을
다시 사야 했다. (중략) 아이들만 남겨놓은 채 집을 나서며 나는 개떡 같은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절감한다.
밤에 아이들만 있는 것보다는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진
아빠라도 옆에 있으면 불안함이 덜어질 것 같았다.
이혼한 집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아이들에겐 아버지라고 부를 대상이 있고
어머니라고 부를 대상이 있으니 말이다. 대상이 없다는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우기가 힘들다.
존재의 부재는 그 자체만으로 큰 상처다.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온 천하를 주고라도 그를 다시
살려내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게 하고 싶다. 이혼을 하고 영영 나와는 안 보고 살더라도
아이들만큼은 아버지란 존재를 만나고 밥도 함께 먹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모두 모여 엄마인 내 험담을 한다고 해도 기쁘고 행복할 것 같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처음 ‘이혼’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굉장히 무서웠다. ‘이혼=엄마, 아빠를
다시는 못 보게 되는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수면제를 모아서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죽는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주워듣고, 노상명이라는 친구랑
나눠서 동네 약국에 전화를 걸어 “수면제 파나요? 한 번에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이런 걸 물었던
기억도 난다. 마침(?) 친구도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얘기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타이밍이 맞았다.
그땐 친구도 나도 진지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해도 믿기 어렵고 황당한 초등시절 일이다.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 중인 이상민 씨의 엄마가 “엄마 재혼 해도 될까?”라고 물었을 때,
“엄마 재혼하면 죽어버릴 거야.”라고 말해서 결국 평생 혼자 사셨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
본인은 그 말을 굉장히 후회한다고 했지만, 당시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아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저런 격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두려웠던 것이다. 겁먹은 고슴도치가
찌르지도 못할 가시를 더 과장되게 세우듯 아마 그런 뜻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부모가 갈라선다는 것은 아직 미숙한 아이에게는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이자 근본이
뒤흔들리는 일이다. 그래서 아끼는 주변인이라면 일단은 이혼을 말려보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절대 아이 앞에서 상대방 험담을 하진 말라.”라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미움과 인간에 대한 실망이 반복되다 못해 지겨워서 갈라서는 것인데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없을 수 없고, 게다가 필연적으로 상대를 닮은 자녀 앞에서 마음이 늘
담담할 수 없는 것이리라.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난 일방적으로 엄마가 폄하하는 아빠의 대한 얘기를 거의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시점부터 들었고, 내가 커가며 직접 아빠를 겪기 전에
이미 나쁜 아빠로 확고히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에게 아빠는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여리고 감성적이고 자상하고 나에겐
모든 걸 다 해주는 희생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애써 부정했다. 마치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았기에 더 악랄하게 아빠를 미워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꾸준히 미워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아빠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슬프게도 그제야 깨달음이 왔다.
“아, 우리 아빠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
되돌려서 그게 아니었다고 마음을 표현하려 해도 아빠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제야 엄마가 미웠다. 주입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데
왜 대체 무조건 미워하게만 만들었는지 원망스러웠다.
물론 엄마도 어렸고, 당시에는 이혼 후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금처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알지만
원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 가정의 자녀로서 이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확고하다.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들이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엄마를 혹은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앞서서 인식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나쁜 사람을 배우자로 둔 사람만큼,
나쁜 사람을 부모로 두어야 하는 자녀의 삶도 굉장히 슬프고 괴롭기 때문이다.
by. 편은지 피디 https://brunch.co.kr/@pyunpd/282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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