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문법1 / 신현식
“연상을 해야 한다. 근접한 것, 유사한 것, 반대의 것을 떠올려야 한다!”
AI에게 의미 찾는 방법을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첫 수필집을 낼 때엔 아무 문제없었다. 체험을 그대로 옮긴 작품이었지만 나름대로 충격이 컸기에 재미와 울림이 있었다. 두 번째 수필집을 낼 때까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전보다 충격이 작은 소재였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세 번째 수필집에서는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충격도 의미도 작은 소재들이라 재미도 울림도 크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작은 소재를 그대로 옮겨서는 졸작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늦되어도 한참 늦된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책을 세 권이나 묶었으니 울림이 큰 이야기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퍽이나 지난한 삶을 살았기에 그만큼이라도 쓸 수 있었지만, 소재가 정말 소진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붓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언가 특단의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즈음 AI가 글도 쓸 수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언젠가는 AI가 수필을 쓰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필은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쓰는 것인데, 기나긴 삶의 여정을 모두 입력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선택된 일부분의 소재를 주면 그에 해당하는 글은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AI의 사고 체계가 궁금했다. 애매하거나 얼기설기 풀리지 않는 문제는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기계가 죄다 하고 있지 않은가. 충격이 강한 체험은 굳이 AI의 도움이 필요 없을 테니 의미가 잘 나타나지 않는 체험을 명령어로 줄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을 명령할까.
마침 AI를 전공하는 지인이 있었다. AI에게 소재 찾는 것을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대답은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질문이 그러니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AI 운영 체계가 되어 보기로 했다. 질문도 AI에 맞춤한 구체적, 단계적으로 물어봐야겠다.
AI에게 수필을 쓰려면 어떤 대상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의지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관심(호기심, 의심)을 가지고 있으면 특별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것이 보인다고 했다.
대상을 찾으면 글을 바로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바로 쓸 수 있고, 의미를 찾지 못하면 분석해야 한다. 대상을 이루고 있는 근본이나 바탕, 또는 속성을 분석해야 한다.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관찰하거나, 의도적인 관점으로 보거나, 또는 '왜'라고 대상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AI는 그맇게 관찰, 관점, 질문을 할 때엔 근접한 것, 유사한 것, 반대의 것을 연상해야 한다고 했다. 연상에 의해 숨은 의미가 보이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거나,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다른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AI에게 의미를 찾았으면 소재 선택이 완료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 역시 찾은 의미가 크면 바로 작품에 적용할 수도 있고, 작으면 다음 단계 의미를 키우는 상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순간 의문이 일었다. 그렇게 복잡한 절차를 밟아 찾은 의미도 결국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할말)가 아닌가. 그렇다면 메시지를 먼저 정해놓고 체험을 찾는 것이 훨씬 수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것은 주제로 쓰는 방법으로 수준에 이르는 글은 되지만 풍성한 의미를 담아내기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단계의 상상을 더해야 보다 나은 작품이 된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내 영역이 아니다. 메시지에 맞아떨어지는 체험을 찾아야 하는 때문이라 했다.
소재 하나 발견하는 것이 이렇게 복잡한 줄 몰랐다. 나는 무의식중에 이런 여러 과정을 한꺼번에 처리했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뜨리거나 소홀히 하면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체험 그대로 쓰거나 쓰지 못해 미적거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딱 부러지는 AI의 사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AI가 말하는 다음 단계 상상이 더욱 궁금해졌다.
첫댓글 아, AI 무섭다.^^
결국 인간을 맘대로 부릴 것 같은,그런 예감이 드는 편리하고 섬뜩한 존재,이미 우리 곁에 와 있지만, 아직은 생명의 따뜻함을 더 사랑하고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