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너머 몽금포 해수욕장,
백령도엘 다녀왔습니다.
백령도 곳곳의 볼거리 먹을거리에 취해서 보낸 이틀
물론 안개주의보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지만
두무진 부근의 바닷가 풍경은 명승 8호에 걸 맞는 명승지였습니다.
그러나 잘 보내고 돌아와서도 가슴이 아린 것은
아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보았던 장산곶 너머 몽금포 해수욕장과
심청의 전설이 서린 인당수를 마음속으로 바라만 보고 돌아온 것입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은
용연반도의 북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 팔경 중 한 곳으로 이름이 난
장산곶과 몽긍포 일대를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율곡 이이는 몽금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송림 사이 거닐다 보니 낮 바람 시원하고,
금모래에서 놀다 보니 어느덧 석양이 지는구나
천년 지나 아랑의 발길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고운 주름 다 걷히니 수평선은 더욱 멀어라”
장산곶은 산줄기가 서해 깊숙이까지 뻗어갔다고 해서 장산(長山)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조선시대에 아랑포영과 조니포진이 설치되어 있었고 수군만호가 한 사람 배치되었던 국방상의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장산곶의 모래사장에 대한 택리지의 기록을 볼까요?
“장산곶 북쪽에 금사사(金沙寺)가 있고, 바닷가 20리 거리가 모두 모래 언덕이다. 이곳의 모래는 아주 곱고 금빛 같아서 햇빛에 비치어 반짝인다. 이 모래들은 바람에 따라 모래가 쌓여서 산봉우리처럼 되는데, 높아지기도 얕아지기도 하며 아침저녁으로 위치가 옮겨져서 혹 동쪽에 우뚝했다가 서쪽에 우뚝하고, 갑자기 좌우로 움직여서 일정한 방향이 없다.
그러나 모래 위에 있는 금사사는 웅장하고 화려하며 끝내 모래에 묻히지 않는데, 이것은 실로 괴이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해룡(海龍)의 조화이다”라고 한다. 모래 속에서 해삼이 나는데 모양이 방풍(防風) 같다. 매년 4, 5월이면 중국 등래(登萊) 바다에서 배를 타고 오는 자들이 많다. 관에서 장수와 이속(吏屬)을 보내 쫓으면 이들은 바다로 나가 닻을 내리고 있다가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언덕에 올라와서 해삼을 따간다.”
이 같은 모래를 세(細)백사, 즉 가는 모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미포 해수욕장의 승경을 처음 발견하고 개발에 착수한 사람이 미국인 선교사인 언더우드였습니다. 그는 1900년에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피서를 하며 보냈고, 그 뒤 중국 일본의선교사들과 해수욕장 부근 일대의 대지를 점유하는 수속을 밟아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별장 50여 채를 지어 세계적인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구미포해수욕장과 몽금포해수욕장 그리고 대청도 해변 가 일대에 있는 가늘고 흰 모래를 규사라고 부른다. 마치 설탕가루나 고운 소금같이 알맹이가 가늘어 손에 쥐면 어느새 새어나갑니다. 가벼워서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으로 날려 천태만상의 모래언덕을 이루는 이 모래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연간 약 7만 톤쯤을 실어갔습니다.
한편 장산곶은 “용이 할퀴듯, 범이 움켜쥐듯 다투어가며 자리 아래에서 기이한 모습을 비친다”고 할 만큼 경치가 수려한데, 국사봉 자락의 장산곶 해변에는 염옹암(鹽瓮巖 소금항아리바위)이라는 가파르고 높은 바위 두 개가 서 있습니다. 그 아래는 물살이 세고 해수가 굽이치므로 이 앞을 지나는 배들이 좌초하거나 난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난사고를 막기 위해 옛 어부들은 장산곶에 사당을 세우고 바다의 신에게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또한 백령도 건너 장산곶 일대는 <몽금포 타령>의 본 고장이기도 하지요.
“ 장산곶(長山串)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今日)도 상봉(上峯)에 임 만나 보겠네. ‘<후렴> 에헤요 어헤요 임 만나 보겠네. 갈 길은 멀고요 행선(行船)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른다.”
<몽금포타령>은 황해 장연(長淵)지방에 있는 몽금포 어항(漁港)의 정경, 고기잡이생활의 낭만을 엮은 노래로 만든 가볍고 경쾌한 민요입니다. 그러나 잘게 꺾어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애수(哀愁)가 감돕니다. 중모리장단이며 수심가조(愁心歌調)인 <몽금포타령>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몽금포는 마치 비단 필 같이 길고 넓게 펴놓은 흰색의 모래사장이 전개되는데, 이 모래는 백사白沙, 금사金沙, 명사明沙라고 부릅니다. 4킬로미터나 되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 있고 해수가 맑아 천혜의 해수욕장으로 꼽힙니다. 특히 모래의 질이 우수하여 명사십리(明沙十里) 또는 ‘금사십리‘라 하였는데, 모래알이 아주 가늘어 바람이 불면 날아가 모래언덕을 만든다. 맨발로 딛고 가면 발 아래서 소리가 난다고 하여 ‘명사鳴沙’라 하거나, 모래알이 맑고 깨끗하여 ‘명사明沙’라 하였습니다.
금세 그리운 것이 백령도이고, 눈에 밟힐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곳이 바로 몽금포입니다.
언제쯤 몽금포 해수욕장을 걸으며 지난 그리움의 세월을 이야기하게 될 런지?
임진년 유월 스무닷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