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유무 상통과 유사한 가짜들
사도행전 4:32~36
찬송가 317장(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유무 상통의 모습은 흡사 공산주의의 칼 막스가 주장한 재산 공유 개념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때로 칼 막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공산주의는 성경의 이 구절을 가지고 자기들의 공산주의 재산 공유의 근거를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상은 기독교 사상과 완전히 다릅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유물론에 입각하여 인간은 단지 영혼없는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재산 공유 제도는 인간의 오랜 전통인 사유 재산 제도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고 국가가 모든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최종적 형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곧 노동자의 혁명이 성공하여 유산 계층인 부자들을 내몰고 역사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자 정권이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완전한 역사의 완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하였습니까? 역사의 실제는 그 반대로 귀결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권력을 쥔 구 소련의 지도자 레닌과 스탈린 치하에서 그들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에 독재 정권을 이루었고, 반대되는 사람들은 농민 노동자 지식인 가릴 것 없이 수백만 명을 숙청하였습니다. 그들의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 경제 체제는 도리어 수많은 오류를 일으켜 대 기근 시에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만들어냈습니다. 다른 민족들 체첸,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외의 연방 국가들의 국민들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 가운데 스탈린 치하에서 일제 탄압을 피해 연해주 지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 일명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가혹한 이주 정책에 따라서 중앙아시아로 끌려가서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대 기근으로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죽어나갔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지만 저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 하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며 온갖 부정 부패을 일이키는 온상은 저 중국 공산당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중국 공산당 내의 부정 부패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우리가 종종 뉴스 시간에서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결국 공산당원들의 독점적 지위와 재산 독점을 위하여 나라의 온 백성들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상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온 백성들이 다 잘사는 나라를 만든다고 명분은 내세우지만 그들은 자기들 공산당을 위하여 온 백성들을 노예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은 공산당 국가라로 분류 자체도 부끄러운 족벌 독재체제로서 김일성 일가에게 충성하면 보상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 누구라도 생존 그 자체가 위험한 악한 정권입니다. 그들은 모든 인민들에게 따뜻한 고깃밥상을 채려준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잡고 있고 우리나라와 미국의 공격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민중의 생각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김정은 집단의 체제 유지의 명분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사실 민중들의 삶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기들의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산주의 이념을 주장하는 현실 국가들은 전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재산 공유의 모습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공산주의의 국가의 독점적인 계획 경제와 정반대인 순수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 자유 시장 경제 체제 역시 문제가 많이 있는 제도입니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손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을 추구할 수 있기에 자유시장경제 체제도 통제가 필요한 불완전한 체제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제시하는 경제 제도를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유추해보면, 성경적인 경제 체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인간은 그 주신 은혜 속에서 개인적인 소유를 누리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완전히는 팔지 말라고 당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며, 희년과 안식년 제도를 통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악습이 계속되는 것을 막으시는 율법 규정 역시 인간의 경제적 자유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여서 그것을 함부로 침범하는 것은 절도죄, 강도죄로 다스려집니다.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그러한 뜻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소유를 이기적으로 누리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만 이기적인 소유욕을 선으로 여기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내어놓고 자선을 베푸는 것을 복스럽게 여깁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재산 공유의 특별한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렬한 믿음과 성령의 깊은 감동 감화의 열매로 나타난 일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강요받은 바 없이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선행으로 구제 헌금을 드린 것입니다. 그들의 선행을 아무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구절은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구절은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집단들에서도 악용하곤 하는 구절입니다. 이단 교주들은 이 구절을 빙자하여 신도들에게 그들의 개인 재산을 헌납하도록 유도하고 강요하곤 합니다. 세월호 때에 부각되었던 유병언의 구원파 집단 내에서도 신도들이 재산 공유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점이 뉴스 시간에 드러난 것이 기억납니다. 아가동산 이기순 교주의 경우도 자기를 신격화하면서 신도들을 세뇌시켜 재산을 헌납하게 하고 경기도 이천 일대에 집단 거주시키며 강제 노동시키면서 반항하는 이들은 살해하여 암매장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나뭇꾼 엘리야라고 자기를 주장하는 박명호라는 자칭 그리스도 역시 그 신도들을 이끌고 공동체 생활을 유도합니다. 현재 국내 몇 군데 그러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고, 제주도에 돌나라라고 하는 공동체에서 그들은 함께 노동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신옥주라는 은혜로교회의 교주 역시 말세를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태평양의 섬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서 재산을 헌납하게 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참담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들은 그런 일을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사도 바울은 직접 일하여 돈을 벌어서 전도 사역 비용과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자기가 가진 재물을 내놓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도들이 재산을 함께 나누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부활의 소망 가우데 성령 충만함으로 인하여 성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이었기에, 이후에 일어난 막스 레닌주의의 무신론적 사상으로 인하여 강제로 재산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특정 계층을 위하여 분배한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 체제나 이단 사이비 집단의 재산 공유 강제 노동과는 전혀 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산 공유 등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 혹시라도 강제적인 강요나 속임수나 거짓 교리의 미혹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사상이나 정치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속여서 재물을 탐내는 악을 우리는 잘 분별하여 거부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경제의 기본 사상은 경제적 개인 소유권을 존중하는 사상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러한 재산을 통하여 세상에 항상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선의의 마음에서 우러나 너그럽게 손을 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복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가난한 자가 항상 끊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들에게 선을 베풀라는 말씀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와 형제들뿐 아니라 세상의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역량이 되고 기회가 되는 대로 너그럽게 선을 베푸는 일에 힘을 씁시다. 그와 같은 선행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초대 교회 유무 상통과 유사한 가짜들이 역사 속에 많이 있었고 오늘날도 정치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탐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속박된 이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다시금 베풀어 주옵소서. 삶의 불안정함 때문에 가난해지고 병든 이들이 온 세상과 우리 주변에 있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손을 펼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