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고무신의 추억(追憶)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는 하늘까지 닿겠네' 라는 동요가 있다.
어린시절 새신을 새로 사서 신는 날의 기분은
정말 하늘에 닿을 것같이 가볍고 신나는 일이었다.
낡은고무신이나 검은 운동화가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 떨어져야
그제사 아버지는 다음 장날에
새신을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5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가야만 신을 살 수가 있었다.
그러면 손꼽아 다음 장날을 기다린다.
어린이는 장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신을 직접 신어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장에 가실 때 손뼘이나
지푸라기로 발을 재어서 눈대중으로 사신다.
새신을 기다리는 장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앞산 언저리까지 장에 가신
아버지를 마중하러 들락날락한다.
해거름에 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장보따리에서 소금에 절인 고등어, 대장간에서
새로 담금질한 낫과 칼 등 생활용품과 함께
물론 기다리고 고대하던 까만 고무신을 꺼내신다.
간혹가다 신을 잊고 안사가지고 오는 날도 있다.
그러면 그 긴 기다림과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허탈해져서 밤새도록 혼자 울 때도 있었다.
새신을 사오기로 한 장날은 빨리 신어보고 싶어서 밤새우고,
안사오는 날은 실망해서 밤새우고 이래저래 들뜬다.
고무신을 사오신다고 하시고는 운동화라도 사오시는 날은
그날 저녁도 거르고 운동화를 가슴에 꼭 안고 잠이 든다.
요즘처럼 신발의 크기가 mm로 구체적으로 되어있지 않고 10문이니,
10문3이니 하는 식으로 신발의 크기를 잰다.
그냥 지푸라기나 손뼘으로 재는 신발의 크기는 발에 딱 맞을 수 없다.
조금 크거나 작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다음 장날에 다시 바꾸어 와야 하는데
그것을 기다리기가 싫어서 꼭 맞다고 고집한다.
고무신의 크기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남자는 9문대에서 12문대 이상까지가 있고,
여자는 15문대에서 21문대까지 있다.
남자 고무신은 한 문수당 크기는
20m의 차이가 나고 여자는 5mm의 차이가 난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김삼기 소장님 제보
고무신 하면 어른들은
많은 상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차표고무신, 말표고무신, 진양고무신….
아마 이러한 상표들이
고무신 세대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름일 것이다.
고무신의 종류도 다양했다.
흰고무신, 검정고무신, 남자고무신,
여자고무신, 할아버지고무신 등
성과 나이 색깔에 따라 달리해서 고무신을 신었다.
고무신은 우리 어린 시절에는
훌륭한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밀기만 하면 저절로 굴러가며
스스로 소리까지 내는 장난감 자동차는 아니었지만
고무신 한 컬레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난감 자동차였다.
한짝 위에 다른 한짝을
약간 구부려 끼우면 자동차가 되었고,
한짝을 둥글게 말아 끼워서
다른 한짝 앞코에 끼우면 아주 훌륭한 짐차가 되었다.
개울가나 모래톱에서 고무신 한 컬레로
여러 가지 자동차의 모형을 두루 만들어
거기에 따른 자동차 소리도 음성으로
묘사해가며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다.
고무신 하면 하교길 뜀박질이 떠오른다.
시오리 학교길에서 돌아올 때면 으레껏 뛴다.
도시락이 든 덜거럭 거리는 책 보자기를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두 손에 고무신 잡고는 학교문에서 집까지 줄곧 뛰어서 온다.
고무신을 신고 뜀박질을 하면 양말을 신지 않던 그 시절에는
땀이 많이 나서 미끄러지기에 고무신을 아예 벗어 들었다.
고무신은 또한 선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환갑 때가 되면 고무신이 중요한 부조감이었다.
빛바랜 할아버지의 회갑사진에 보면
수연상 앞에 차곡차곡 쌓인 고무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장사를 지낼 때 상여꾼들에게 주어지는 물품에도
보면 흰수건 흰양말과 함께 흰고무신이 있다.
상여꾼들은 새로운 흰양말과 흰고무신을 신고
머리에 흰수건을 쓰고 상여를 멘다.
지난 시절 선거 때만 되면 고무신은 살 필요가 없었다.
장에만 가면 한번에 선거입후보자들로부터
몇 컬레를 선물로 받기 때문에
그 해에는 고무신을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옛날 선거를 '고무신 선거'라고 까지 했다.
고무신을 처음 사면 해야하는 일이있다.
고무신은 모양이 같고 단지 크기에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잔치나 모임에 가면 신발이 바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고무신을 처음 사는 날은 소죽솥 앞에 앉아서
철사줄을 달구어 고무신 안쪽에 *나 +표 등으로 자기 신발에 새긴다.
잔칫집에 가면 우리 할머니들은
봉지에 자기 신발을 꼭 싸서 직접 관리를 하는 이유도
아마 신발의 외형이 똑같은 고무신에서 나온 풍속일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애용되기 시작한
고무신은 검은 운동화세대를 걸쳐
오늘날의 유명 메이커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 우리 어린이들은 고급 운동화를 반도
덜 떨어졌는데도 새로 사달라고 조른다.
새신 하나 신기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기대 속에서 마음에서부터
새신을 신었던 그 어린시절의 고무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여러분들은 고무신 하면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저는 멀리서 째까닥 째까닥 하고
들려 오는 엿 장수 가위질 소리에 찢어진
고무신짝 들고 뛰던 생각이 제일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고무신은 또 아이들에게 좋은 장난감 노릇을 해 주었습니다.
고무신 우구려서 기차 놀이도 하였구요,
고무신에 모래 담아서 놀기도 하였구요,
가끔가다가 개울 물에
고무신 한 짝 떠내려 보내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지요.
그 뿐입니까? 재래 화장실에 고
무신 한 짝 빠트리면 그것 꺼내느라 애 먹었던
생각도 나구요, 버스타다가
고무신 한 짝 벗겨저 민망하였던 생각두 나네요
고무신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1922년 8월5일 이었답니다.
이날 대륙 고무 공업 주식회사에서 처음으로
출시와 동시에 순종이 최초로 신었던
한국인으로 기록이 되었다네요.
그 후 1932년 만월표 고무신과 1948년 국제 상사에서
왕자표 고무신으로 이어졌는데
고무신은 원래가 일본에서 들어 왔답니다.
우리 전통신발인 짚신은 빨리 떨어지고,
오래 신을수 없었던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고무신은
비싸도 오래 신을 수가 있었구요,
그래서 선호하다 보니까
우리 신발로 굳어 졌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고무신도 요즘은
중국에서 수입을 해 온다는데요.
고무신이 우리 곁에 오기전 까지는 농경 사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짚을 가지고
짚신 이나 미투리를 만들어서 신었는데요.
이것은 자본이 전혀 안 들었구요.
부지런만 하면 얼마 던지 삼아서 신을 수가 있었습니다.
통 나무를 파서 만들었다는 나막신은
비오는 날 장화대신 신었다는데요.
이 나막신은 신분에 구별 없이 널리 신었다고 하더군요.
조선 말엽 궁중 상궁 나인이나 사대부
중년 여인들이 많이 신었다는 궁혜,당혜,
운혜가 있는가 하면 나이먹은 여인이 신는 흑혜,
기생들이 많이 신었다는 기혜가
있었구요, 남자들 신발로는 테사혜,
외코혜, 발막혜, 등이 있었답니다.
또 있지요 추운 겨울에 남자들이 신었던
동구니 신, 눈위에서 걸을 수 있는 설피가
있었습니다. 설피는 요즘도 두메
산골에서는 이용을 하는 것 같더군요.
이렇게 서민들은 짚신을 신고 있을 때
양반가 에서의 신발들은 색갈과 무늬에 따라,
신발의 운두와 색채 조화에 따라
신분이 엄격히 구별 되었다네요.
고무신이 우리 곁에 처음 왔을 때는 귀한
신발이라 고무신 닳는 것이 아까워 고무신
엽구리에 차고 맨발로 다녔다는 사람들 많았구요,
아이들이 고무신 신고 뛸라 치면
고무신 닳는다. 뛰지 말아라 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고무신은
짚세기에 비해 흙도 잘 안들어 가지요.
고무신이 더러워지면 물에 북북 씻어서
툭툭 털면 새 신발 같아 졌으니까요.
그 당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외출했다가
돌아 오면 시어머니 고무신 깨끗이 닦아
다음 외출할 때 툇돌에 가지런히 놓아 드렸지요.
고무신에도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이 있었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폐타이어로 만들어서 질겼다 라는 말이 있더군요.
지금도 농촌에서는 검정고무신 신은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군대간 사이에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는 말이 있지요.
옛날에 아녀자가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았을때
도망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네요?
그러면 신발 자국이 밖으로 간 것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 온 것 같이 보이니까요.
이것이 유래가 되어 여자가 변심한 것를 가지고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는 말이 나왔다고하더군요.
경찰에서 범인이 조사를 받을 때도
고무신을 신키고 조사를 하지요.
다른 신발들은 흉기로 사용를 할 수가 있구요
고무신은 잘 벗겨 지기 때문에 잘 뛸 수가 없어서라네요.
제가 한복을 입을 때마다 생각나는 왕자표 고무신,
똘방이 발에 신키고 싶었던 벙어리 꽃 고무신,
밭 일 할때마다 생각나는 검정고무신,
이 모두가 저의 곁을 떠나고 말았지만
지금도 가끔씩은 생각나고 가지고 싶어 진답니다
첫댓글
새 신을 신고 팔짝~
어릴 적 명절에는 새 신을 선물받고 좋아 했는데..
고무신은 별로 신어보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