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싯다르타의 고독
1 싯다르타 태자는 매우 총명하고 영특하며 또한 인자하였다. 일곱 살 되던 해에 나라에서 가장 이름 높은 바라다니와 비사딧다라라는 두 바라문 학자를 스승으로 초빙하여 성명(문자,문법,문학), 인명(논리학), 내명(종교, 철학적인 것), 의방명(의술, 약학), 공교명(공업 , 기술)의 오명 등 육십여 종의 경전을 배워 모두 통달하고, 또 찬디데바를 스승으로 칼 쓰기, 활쏘기, 말타기, 군사 쓰는 법 등 이십구 종 무술을 다 통달했다. 열다섯 살 되던 해에는 모든 석가족의 자제들과 무술 경기를 시합하여 신기한 기술을 보여 나라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렇게 문ㆍ무ㆍ예술을 정통하고 또 지혜와 총명과 용력과 덕행이 모두 뛰어났으므로, 그 명성이 여러 나라에 떨쳤다.
2 싯다르타 태자가 십여 세 되었을 때이다. 태자의 사촌 되는 제바달다가 제 동산에서 놀다가 공중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아 싯다르타 태자의 동산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태자는 그 생명을 가엾게 여겨 곧 그 화살을 뽑고 약을 발라 싸매 주고, 제바달다가 자기의 화살로 쏘아 떨어진 기러기를 내어놓으라고 독촉하였으나 마침내 돌려보내지 않았다.
3 봄 농사철이었다. 정반왕은 태자와 모든 석가족의 동자들과 함께 들에 나가 백성들의 밭가는 광경을 구경하였다. 그때 파리한 농부들이 보습 메인 소를 몰고 땀을 흘리며, 소를 채찍질하면서 밭을 갈아엎을 때, 보습 날에 찢기어 다치고 끊어진 땅 속의 벌레들을 까마까치가 재빨리 날아들어 쪼아 먹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랍게 여기고, 태자는 홀로 나무 밑에 고요히 앉아 생각하였다. '모든 생명들은 다같이 제가 살기 위하여 세상에 난 것인데, 어째서 국왕은 백성을 부려먹고, 농사짓는 백성은 소를 부려먹고, 약한 놈의 생명은 밭가는 보습에 찢기고 또 날래고 힘센 날짐승에게 쪼아 먹히고ㆍㆍㆍ.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마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일어나기를 잊었다.
4 이렇게 태자는 날짐승ㆍ길벌레도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그 존엄성과 존재성을 소중히 관찰하며, 인생의 나고 죽음의 문제까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5 그때 정반왕은 태자가 세속의 오락에 뜻이 없고 깊이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사선 선인의 예언이 생각나서, 태자는 장차 세속을 떠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래서 태자를 위하여 여름철엔 서늘하고 겨울철엔 따뜻하고, 봄ㆍ가을철엔 차지도 덥지도 않은 세 가지 별전을 지어 철따라 거처하게 하고, 화려한 동산, 정갈한 수석에 기화요초며, 진금괴수로써 찬란하게 꾸미고, 향탕에 목욕하고 보배 옷과 금ㆍ옥ㆍ진주로 몸을 꾸미게 하며, 수많은 어여쁜 소녀를 뽑아 모시게 하고, 노래와 춤과 음악으로 즐겁게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그런 향락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6 태자의 나이 십오 세 되던 해 봄에는 항가 강물로 그 이마를 씻고 태자를 봉하는 의식을 올렸다.
십칠 세 되는 해에는 천비성 선각왕의 따님 야수다라 공주를 선택하여 태자비로 맞이하였다.
왕은 다시 많은 궁녀들에게 태자를 시위하고 노래와 춤, 갖가지 기예와 유희로써 밤낮으로 태자를 즐겁게 하도록 했다. 그러나 태자는 깊은 방에 홀로 앉아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궁녀들은 싯다르타 태자는 부부의 도를 모른다고 정반왕에게 보고하므로 왕은 더욱 걱정하였다.
7 봄철이었다. 태자는 오랫동안 궁중에 갇혀 있기가 울적하여 들에 나가 구경하고 싶었다. 이 뜻을 안 정반왕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가비라성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길을 닦고, 소풍할 동산에 꽃을 심고 향수를 뿌려 아름답게 치장시켰다. 그리고 총명한 신하로 하여금 시종하여 나가게 하였다. 태자는 궁성 동쪽 대문으로 나가 들 밖으로 향하였다. 길가에서 머리에는 서리를 이고 팔다리에는 푸른 버들가지가 얽히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돋친 채로, 활등같이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노인을 만났다. 보기에도 매우 상서롭지 못했다. '이것은 늙은 사람. 사람은 늙으면 다 저 꼴이 되고 만다는 것ㆍㆍㆍ.' 태자는 그것을 보고 깊은 명상에 잠겨 수레를 돌려 되돌아왔다.
8 그 다음에 태자는 다시 여러 시신侍臣과 함께 궁성 남문으로 나가 들에서 바람을 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살가죽은 말라붙고 뼈만 앙상한 채로, 배는 북통처럼 부어오르고 숨기운은 톱질 소리가 나며, 길가 더러운 땅에 쓰려져 "나를 좀 일으켜 달라"고 목메인 소리로 외치는 병자를 만났다. "사람은 늙어 병들면 다 저 꼴이 된다"고 시신은 아뢰었다. 태자의 가슴은 더욱 불안하였다.
9 그 다음 태자는 다시 궁성 서쪽 대문을 나서 들 밖에서 소풍하고 있었다. 한 시체를 상여 위에 싣고 네 사람이 메고 가는데, 처자와 친척은 그 뒤를 따르면서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혹은 사지를 되는 대로 내흔들고 혹은 진흙과 먼지에 뒹굴며 목메어 울부짖는 처참한 광경을 보았다. '부귀한 사람이나 빈천한 사람이나, 총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같이 죽으면 저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 태자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고 세상에 마음 둘 곳을 몰랐다.
10 이것을 본 태자는 궁에 돌아와 이레 동안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궁성 북문으로 나가 소풍하고 있었다. 길에서 어떤 집 떠난 사문을 만났다. 그는 머리를 깎고 오른 손에 긴 지팡이를, 왼손에 바리때를 잡고, 아무것도 걸릴 것 없이 저 맑은 허공을 바라보고 훨훨 걸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집을 떠나 수도하는 사문" 이라고 시신은 아뢰었다. "어떤 것이 집 떠난 사람이며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태자는 물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람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세계는 이룩되고 또 무너지고ㆍㆍㆍ.' 나는 이것을 보고 세속의 모든 것ㅡ처자며 재산이며 명예며 권리를 다 버리고 집을 떠나, 그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도를 닦고 있노라"고 사문은 말했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수레에서 내려 머리를 숙여 경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