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00]사투리의 매력魅力과 사투리의 마력魔力
1970년대 전설적으로 활약했다는 국가대표 배구선수, 김영자(1949년생) 샘에게 어찌어찌 인연으로 졸저 『어머니』를 2월말 드린 적이 있다. 한 달 후쯤 그분의 부군(최창신: 문광부 차관보-올림픽조직위 초대 사무총장 역임)이 “자네가 준 책을 통독했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더군. 고향이 부산인데도 전라도 사투리의 감칠맛까지 이해가 가더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해서” “하하, 그래요? 저도 읽어줘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졸저에 전라도 사투리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의식해 쓴 적도 없다. 그냥 내뱉거나 쓰는 말이 우리 지역의 ‘표준어’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각 지역 사투리나 방언은 뜻보다 먼저 악센트나 인토네이션에서 차이가 나고, 구별이 될 듯하다. 『태백산맥』 『아리랑』 『혼불』『관촌수필』『토지』『순이삼촌』 등에 나오는 전남북,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의 사투리와 방언을, 어찌 그 지역 사람이나 출신이 아니고 뉘앙스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모두 탯말(어머니 자궁에서부터 들은 말)들이기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번역飜譯은 반역反逆이다’는 말처럼 임파시블impossilbe한 게 그들만의 언어가 아닐까? 총선기간 조국 대표의 “쫄았제?” 한마디 말이 “쫀겨?” “쫄아부럿제?” 등 지역별 버전으로 번져 웃음을 자아낸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튼,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 선생의 시를 잘 모르지만, 우연히 어느 잡지에서 읽은 <사투리>라는 시를 보고 무릎을 쳤다. 전문을 읽어보자.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아래의 시를 함께 감상해 보면 어떨까. ‘조정’이라는 시인이 2022년 펴낸 시집 『그라시재라』에 나오는 <물에 비친 찔레꽃> 시이다.
나는 꽃 중에 찔레꽃이 질로 좋아라
우리 친정 앞 또랑 너매 찔레 덤불이
오월이먼 꽃이 만발해가꼬
거울가튼 물에 흑하니 비친단 말이요
으치께 이삔가 물 흔들리깜시
빨래허든 손 놓고 앙거서
꽃기림자를 한정없이 보고 있었당께라
그것으로 작문 써서 소학교 때 상도 받었어라
인자 봉께 화순떡 자네 딸이 군내 백일장 장원 헌 거시 어매
탁애서 글구만
이런 시들이 절창絶唱이 아니면 무엇이 절창일까? 두 시가 참말로 ‘만나다(맛있다)’. 전라도 사투리에는 무슨 냄새가 날까? 고것이 시방 문제다. 농부 아버지의 굵을 장딴지가 떠오를까? 엄마 베적삼의 칙칙한 쉰 냄새가 날까? 제주도 방언이나 사투리가 여직 살아 있듯(소멸위기 언어에 꼽혔다), 전라도 사투리만큼은 단군할아버지 고래적부터 언제까지나 살아 왔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조선팔도의 사투리 모두 그러할 것이지만. 사투리는 지역별 우열優劣이나 그 어떤 차별이 없다. 우리들의 탯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언제부턴가 까마득히 잊어먹거나 잃어버려 거즈반 다 죽어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까. 사투리의 매력魅力과 사투리의 마력魔力에 대해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투리 시 두 편을 읽었다. 비록 아침저녁으론 쌀쌀하여 긴 팔을 입어야 하지만, 낮에는 완전히 초여름 날씨로 덥다. 그래도 ‘계절의 여왕’ 오월답게 연초록 나뭇잎들이 햇살에 비쳐 초록초록한 게, 윤슬(강이나 호수의 물이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빛나는 잔물결)보다 훨 아름다운 것같은, 참말로 허벌나게 좋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