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어차피 찾아올 인생의 후반전을 남들보다 좀 더 빨리 그리고 잘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김종용씨(35). 코스닥 상장사인 중견기업에 다녔던 김씨는 말년차 대리 때 사표를 냈다. 또래보다 진급도 빠른 편이었고 이듬해 과장으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아내는 “이혼하겠다”며 초강수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오는 3월이면 창업으로 제2의 인생을 연지 만 2년이 된다. 10개로 시작했던 테이블은 이제 30개로 늘었다. 올해 김씨의 매출 목표는 10억원이다.
김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로에서 나름 유명한 ‘너와나 누룽지 통닭구이’ 사장이다.
김씨가 10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은 ‘사오정’(45세가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시대상과 무관치 않다.
김씨는 “회사 내 평가도 좋았지만,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100세 시대라는데 ‘사오정’ 얘기가 나올 만큼 정년이 빨라졌다. 더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창업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민은 깊어졌다. 퇴직 후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3가지였다. 좀 작은 회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하거나 아니면 집안에 물려받을 게 있으면 잇는 정도였다.
“작은 회사로 가면 보다 안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될 테고 집안에 물려받을 게 없으니 선택은 결국 창업이었다”고 김씨는 부연했다.
김씨의 성공창업을 관통하는 3가지 키워드는 △철저한 사전 준비 △성공에 대한 신념 △적극적인 소상공인 지원정책 활용으로 정리된다.
김씨의 첫 번째 창업 성공비결은 철저한 준비에 있다. 김씨는 창업할 때 준비과정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특히 경험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가 우여곡절 없이 창업 후 2년 만에 연매출액 10억원을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원동력인 셈이다.
김씨는 창업 결심 이후 좋아하는 운동도 포기하고 주말이면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단골 통닭집을 찾아 무보수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씨는 "단골 손님이 갑자기 무보수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하면 당황할 만도 할텐데 그 가게는 워낙 유명한 집이어서 사장님한테 배워 이미 창업한 분들도 있더라.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 같은 사례가 많다고 한들 누가 예비창업자에게 덜컥 경영 노하우를 알려주겠는가. 김씨는 고기 굽는 비결을 배우기보다는 시키지 않았지만, 홀 서빙부터 자청했다.
김씨는 "손님일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먹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포장도 해갔지만, 먹을 줄만 알았지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생맥주 한 번 따라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경험을 꼭 해봐야 창업했을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서빙을 하면서는 손님 반응을 주로 살폈는데 지금도 손님의 불만사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장작구이 통닭집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주말마다 3개월 동안 계속됐다. 나중에는 호프집 등 다른 가게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는 창업준비기간 1년6개월 중 11개월 동안 계속됐다.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비창업자의 60%는 창업준비기간이 6개월 미만이고 10명 중 1명은 1개월 미만의 '총알 준비'를 거쳐 창업한다. 김씨의 창업준비기간은 보통의 경우보다 3배쯤 길었던 셈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김씨는 단골가게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은 후로는 창업에 잰걸음을 보였다. 준비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씨는 “창업이 쉬우니까 대부분 체인점을 생각하는데 본점도 이익을 추구하므로 경쟁력이 많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개인창업은 메뉴개발도 직접해야 하고 어렵지만, 잘 준비하면 체인점과 차별화된 성공적인 창업이 가능하다”는 견해다.
주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한 김씨는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창업준비에 나섰다. 요리라고는 라면을 끓이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학원도 다녔다. 요리학원은 지금도 괜찮은 과정이 있으면 종종 수강한다.
창업 과정에서 최대 난관은 가족을 설득하는 거였다. 아내는 창업하면 ‘이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부모님은 창업자금을 걱정했다.
김씨는 회사 업무보고를 하듯 창업계획서를 보고서 형태로 작성해 아내와 부모님을 설득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창업자금은 자동차 등을 팔아 충당했다. 그리고 사표도 냈다. 가족을 설득해 퇴직하긴 어렵다고 보고 벼랑끝 전술을 쓴 셈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저질러버렸다. 솔직히 가족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고 김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어쩌면 젊기에 가능했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다.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김씨는 적당한 가게 자리를 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쉬고 7~8개월을 공들였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게 고작이었다. 상가 전문 부동산이 있다는 것도 모를 때였다. 닥치는 대로 부동산에 들어가 상가를 구하려 한다고 문의했다.
김씨는 “무작정 부동산을 찾으면 첫 질문이 얼마짜리를 원하느냐였다. 당시 인테리어 포함 창업비용을 1억2000만원 선으로 생각했는데 처음 소개받은 자리가 아주 마음에 들어 당장에라고 계약하고 싶었다. 문제는 다음날 다른 부동산에 가보면 더 괜찮은 가게가 보이고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초보가 주관적인 견해로 (입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후 객관적인 시각을 얻기 위해 인터넷 등을 찾아보게 됐다. 창업 관련 블로그 등을 뒤지다 옛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제공하는 상권 분석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게 그 무렵이었다.
상권 분석 자료를 부동산 정보와 종합하면서 그동안 초보자 눈에 잘 안 들어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지금 가게는 처음에 계약하려던 곳과 동네, 상권이 모두 다르다. 나중에는 창업 관련 책과 상권 분석 자료를 토대로 현장에 가서 직접 유동인구 등을 살폈다. 특히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제공하는 배후지 유동인구 분석 프로그램이 큰 도움을 줬다. 같은 조건이면 배후 거주자가 많은 상권이 유리하므로 일주일 넘게 후보 가게들을 비교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씨 가게는 배후 유동인구가 많고 가까운 곳에 신호등과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들어섰다. 행인들이 건널목에서 빨간불에 멈춰섰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김씨 가게가 보인다.
김씨는 가게를 확장할 때도 이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원래는 제2호점을 내려고 준비했지만, 상권을 미리 분석해보고는 옆 가게를 인수해 가게를 확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진흥원이 간이과세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컨설팅도 유용했다. 김씨는 진흥원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김씨는 “상권 분석 프로그램이 없다면 예비창업자는 그런 것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관계자들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른다. 진흥원의 유용한 프로그램 덕분에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부단한 메뉴 개발이나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 서비스는 그가 단기간에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양념이다.
김씨는 “개인적으로 맛집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맛있고 양이 푸짐해야 하고 값도 저렴해야 한다. 이를 구현하려고 늘 노력했다. 창업 이후에도 요리학원에 다녔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총 9가지 메뉴를 개발했다”고 역설했다.
손님 재방문을 유도하는 쿠폰 운용에서도 그의 고민이 읽힌다. 김씨는 손님이 쿠폰을 모으기보다 쓸 수 있게 배려했다. 김씨 가게에서 통닭을 먹으면 1000원짜리 쿠폰을 준다. 쿠폰 10장을 모으면 1마리를 공짜로 주는 것은 기존 쿠폰과 같다.
하지만 김씨는 쿠폰을 낱장으로도 현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차별화했다. 1장을 가져오면 1000원, 2장을 모아오면 2000원을 깎아준다. 모은 쿠폰을 현금처럼 쓸 수 있으니 손님이 쿠폰을 그냥 버리는 일은 없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예비창업자들에게 “창업이 목적이 아니라 성공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인생을 전·후반전으로 나눠 생각할 때 퇴직 후 인생은 후반전인데 좀 더 잘 준비하면 멋진 후반전을 치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