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결혼해 지난해 딸을 낳은 탤런트 A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바보처럼 세금을 왜 내냐. 난 세금 안 낸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가 자신의 사업체 명의로 지난해 10월까지 체납한 지방세는 약 3000만원. 수차례 독촉과 전화에도 A씨가 세금을 납부할 기미가 없자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은 지난해 10월 어느 아침 서울숲 인근 A씨의 자택에 들이닥쳤다. A씨는 조사관들에게 “세금을 안 내려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억울하다”며 변명했다. 가택을 수색하던 조사관들이 옷장에서 고급 시계 10여개를 찾아내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다 가짜예요.” 그 말을 들은 조사관들이 시계를 압류품 봉투에 조심성 없이 던져넣자 A씨는 갑자기 화를 냈다. “(시계에) ‘기스’ 나면 안 돼요.” 이후 A씨는 체납 세금이 문제가 돼 외제차 딜러로 활동하던 남편과의 사이가 틀어질 낌새를 보이자 가택을 수색당한 그 주 내로 체납 세금을 완납했다.
각 구청 에이스들 모인 ‘드림팀’
국내 최고의 세금징수부서로 유명한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지난해 역대 최고액인 2374억원을 징수했다. 2015년에 비해 577억원이 많다. 서울시 누적 체납 세금은 1조2299억원으로 전년보다 726억원이 줄었다. 38세금징수과는 1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전문적으로 징수하는 곳이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가 있다’는 헌법 38조에서 이름을 땄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의 주특기는 악질 체납자의 가택수색이다.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이 부서 조사관들은 일출 이후부터 일몰 이전까지 체납자의 가택을 수색할 수 있다. 국세청, 검찰 근무자들도 이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러 방문하곤 한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 수준의 세금징수 전문 부서인 셈이다. 자치구 세금 체납자의 명단은 특정 기간이 경과되면 서울시 조례에 따라 매년 1월 1일부로 이 부서에 이관된다. 이 부서의 활약상은 지난해 OCN의 TV드라마 ‘38 사기동대’로 극화돼 해당 방송국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의 세금 징수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소속 조사관들이 꼽은 비결은 첫째가 경쟁이다. 38세금징수과는 맨투맨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드림팀’이다. 과장까지 5개 팀에 41명의 조사관이 근무한다. 일반 지자체는 세금 징수 관련 부서를 공매 담당, 견인 담당 등 업무별로 나눈다. 반면 38세금징수과는 체납자를 조사관이 맨투맨으로 맡는다. 압류부터 소송까지 한 체납자에 대한 모든 업무를 한 조사관이 모두 담당한다. 조사관들의 실적은 매주 주간보고서에 팀별로 징수·고발·공매·출금·가택수색 등 항목별로 세분화돼 공개된다.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1년 세금징수 전문 TF로 38세금징수과가 창설될 때부터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안승만 38세금징수 조사관은 “38세금징수과는 각 구청에서 가장 유능한 체납징수 전문가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가스통 들고 조사관 협박도
올해 38세금징수과가 역대 최대 성과를 거둔 데에는 내부 학습조직인 ‘2%를 찾아서’의 역할도 톡톡했다. ‘2%를 찾아서’는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이 모여 서로의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일종의 동아리다. 서울시 지방세 중 평균 2%가 이듬해로 체납된다는 데서 이름을 땄다.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모이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모이는 이 동아리에는 과장을 포함한 41명 전원이 참석한다. 이 조직을 처음 제안한 민병혁 조사관은 “38세금징수과는 조사관들이 맨투맨으로 경쟁하는 만큼 정보공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 동아리를 통해 서로의 징수 기법과 체납자에 대응하는 방법 등을 토론하고 공유한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징수기법을 발굴해낸 덕도 크다. 체납자의 아파트 분양권을 찾아내 압류한다든지, 법원에 협조를 요청해 체납자가 채권자인 민사소송을 찾아낸 뒤 채권을 압류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는 만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해 체납자가 600달러 이상의 물품을 가져올 때 공항에서 압류하는 방안도 현재 검토 중이다.
거액의 세금을 체납해 가택수색까지 받게 된 이들이 순순히 문을 열 리가 없다. 경찰 입회하에 문을 따고 들어가면 일단 욕설부터 날아온다. 창문에 다가가 “뛰어내린다”고 하거나 가스통을 들고 “터뜨린다”며 조사관을 도리어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천하의 38세금징수과 조사관이라 해도 별수가 없다. 우울증에 걸려 다른 부서로 옮긴 직원도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도 심하다. 한 조사관은 “늦은 밤에 전화가 와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할 때면 섬뜩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체납자 소유 차량의 번호판을 압류하다 망치로 맞아 다친 조사관도 있다. 물론 해당 체납자는 경찰에 고발당했다.
체납자를 추적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고액 체납자는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납부 능력은 있지만 재산을 숨겨 세금을 피하는 것이다. 체납자의 동태를 살피느라 밤을 새야 하는 경우도 많다. 가택수색을 할 때는 체납자가 출근하기 전에 가택을 덮쳐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면 집을 나서야 한다.
이 때문에 조사관들이 38세금징수과에서 근무하는 평균 기간은 3년 안팎이다. 그 후에는 다시 세무·세제과 등 기존에 근무하던 부서로 돌아간다. 조조익 38세금징수과장은 “사회지도층이나 유명인의 고액체납은 강력히 다뤄야겠지만 정말 파산해 간신히 먹고사는 사람을 쫓아가는 것은 공무원이 할 일이 아니다”며 “유능한 조사관들이 모여 있는 만큼 현장에 나간 조사관의 판단을 믿는 편”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한다’는 슬로건을 실현하기 위해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은 오늘도 현장을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