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0일 월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조재형 신부
복음; 루카2,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 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 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 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지난봄에 뉴욕에서 달라스로 왔습니다. 오니까, 교우들이 ‘창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창고 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후원하고 떠나셨습니다. 매주 토요일 형제님들이 창고 공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기초를 놓았고, 바닥, 벽, 지붕, 창문, 문, 전기 공사를 했습니다. 창고가 완성된 다음에는 청년들이 멋진 벽화로 마무리했습니다. 2월에 시작한 창고 공사는 7월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도 매주 토요일 현장에서 형제님들과 함께했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선물한 것은 ‘창고’가 아니라, 창고 공사를 통해서 형제님들과 청년들을 선물했습니다.
지난 8일에 ‘사도회와 이냐시오회’의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사도회는 40대 형제님 모임이고, 이냐시오회는 50대 형제님 모임입니다. 모임 자리가 하나도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창고 공사를 통해서 얼굴과 이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들이 제게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세요?’ 제가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는 이유는 가능하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자녀와 아버지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글을 쓰는 이유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겁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았다는 겁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악을 이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은 친절하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성탄을 지내면서 카드를 보내는 것도, 구유 경배를 하는 것도, 선물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성탄을 지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묵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 독서는 신앙인들이 삶을 살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올해도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363일을 욕심과 욕망 때문에 채우려고만 했어도, 오늘과 내일 마음을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산다면, 베푸는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을 산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헤로데가 살았던 궁전에서는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과 규율에 얽매여서 살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한나는 예수님을 보았고, 축복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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