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속 '영혼의 나무' 닮은 등나무꽃 황홀경···'아시카가 플라워파크'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 (12)
CNN의 '세계 꿈의 여행지 10'에 선정된 곳
수령 160년 등나무, 도치기현 천연기념물
광대한 정원은 한 그루의 등나무에서 시작
꽃에 집중하니 나조차 사라져 풍경만 보여
꽃구경은 관광버스 당일치기 여행에 딱 좋은 아이템이지 싶다. 수도권에 속하는 도치기현(栃木県)에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등나무꽃 정원이 있다. '아시카가 플라워파크(あしかがフラワーパーク)'다. 등나무만이 아니라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있어서 초봄에서 가을까지 즐길 수 있다.
등나무꽃 시즌의 라이트업과 겨울의 일루미네이션은 일본 야경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1년 내내 볼거리가 있는 정원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등나무꽃이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등나무꽃 축제가 열린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등나무꽃 축제가 열리는 '아시카가 플라워파크(あしかがフラワーパーク)' 전경 /사진=양은심
1920년, 도치기현에 사는 대지주 하야카와(早川) 씨가 마당에 등나무를 심었다. 그 후 한 그루 두 그루 더 심어 나갔다. 1968년, 지역 주민에게 정원을 개방하기 위해 '하야카와 농원'을 설립한다. 그 후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대부분이 농지였던 지역에 도시화의 바람이 분다. 이전해야만 했다.
1997년, 약 3년의 정비 기간을 거쳐 '아시카가 플라워파크'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다. 수령 130년의 거대한 등나무도 무사히 이전했단다. 플라워파크는 도치기현의 명물이 되었고 세계에도 이름을 날렸다.
2014년. 큰 등나무(大藤/오후지)의 모습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영혼의 나무'와 닮았다고 화제가 되었고, 핀란드의 오로라,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거리와 함께 CNN의 '세계 꿈의 여행지 10'에 선정되었다.
영화 '아바타'의 '영혼의 나무'를 닮은 큰 등나무(大藤/오후지) /사진=양은심
2018년에는 도보 1분 거리에 전철역까지 생겼다. 마당에 등나무를 심은 지 100여 년. 농원을 설립한 지 5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온 '아시카가 플라워파크'. 도치기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160년의 큰 등나무(大藤)가 만드는 1000㎡의 꽃그늘. 그 외 350그루의 등나무. 80m에 달하는 흰 꽃 등나무 터널. 그리고 각 계절에 피어나는 제철 꽃들.
대지주였다고는 하나, 한 개인의 마당에서 시작하여 지역의 명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꽃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인간 승리의 감동을 느끼게 했다.
정원 입장료는 유동적이다. 2022년, 내가 간 날은 1700엔. 이 글을 쓰며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2023년은 400엔~2100엔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매일 아침, 꽃이 핀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 오늘 입장료는 어른 2100엔, 어린이 1000엔.
등나무꽃 시즌이 가장 비싸지만, 등나무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한 철 돈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원을 돌아보고 알았다. 나의 속 좁은 생각이었음을. 정직하고 합리적인 요금 설정이었다.
2022년 5월 2일.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서둘러 정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입이 쩍 벌어진다. 화분에 키운 등나무꽃을 모아놓은 화단부터 압권이다. 화분이 이러니 땅에 심은 등나무들은 어떨 것인지 기대에 부풀어 가슴이 콩닥거린다.
입구에 마련된 환영 코너 /사진=양은심
이 정원의 상징인 큰 등나무(大藤/오후지)로 향한다. 정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보라색 하얀색 등나무꽃들이 눈짓 손짓하지만, 수령 160년의 등나무를 볼 생각에 발길이 바쁘다. 연보라색 꽃송이를 드리운 거대한 등나무가 눈앞에 나타났다.
살랑살랑. 한들한들. 웅장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우아하다. 영화 '아바타'의 '영혼의 나무' 바로 그것이었다. 한참을 서성이며 눈에 담고 사진과 영상을 찍은 후 발길을 옮겼다.
'아시카가 플라워파크'의 상징인 등나무 /사진=양은심
봐도 봐도 끝이 없는 등나무꽃의 향연. 짙은 보라색 꽃이 보였다. 등나무 겹꽃이었다. 올망졸망,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꼭 포도송이 같다. 겹꽃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놀랍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연못 쪽으로 눈을 돌리니 건너편에 큰 등나무가 보인다. 꿈속 같다. 이런 풍경이 어찌 현실일 수가 있는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포도송이를 연상시키는 보라색 등나무 겹꽃 /사진=양은심
등나무꽃 아래서 바라본 '아시카가 플라워파크'의 연못 /사진=양은심
조금 발길을 옮기니 흰색 등나무꽃으로 만든 터널이 나왔다. 정원 곳곳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터널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신비로움이라니. 꽃그늘 아래에서 나가기 싫어진다. 한참을 서성거렸다.
'아시카가 플라워파크'의 흰색 등나무꽃 /사진=양은심
관광객들이 '아시카가 플라워파크'의 흰색 등나무꽃 터널을 즐기고 있다. /사진=양은심
연못 저편에 방금 보고 온 겹꽃 등나무 터널이 보인다. 역시 환상적이다. 나 홀로 여행이어서인지, 꽃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꽃에 집중하니 사람들 모습은 날아다니는 벌과 다를 게 없다. 나조차도 사라진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풍경만 존재할 뿐.
연못 쪽에서 바라본 겹꽃 등나무 터널 /사진=양은심
노란색 등나무꽃도 있다는데, 내가 간 2022년 5월 2일에는 피지 않았었다. 일본에서 키우기가 어려운 색인데 성공했단다. 살구색(薄紅色) 등나무꽃은 이미 지고 없어서 아쉬웠다. 살구색 등나무꽃이라니. 안내판 사진을 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마지막으로 소프트크림이라도 먹으며 한숨 돌리려고 매점으로 향했다. 현금 결제만 가능하단다. 세상에, 2022년에! 코로나 시대에! 관광지인데! 그렇다. 일본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다. 적어도 1000엔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프트크림 살 동전이 없을 정도로 텅텅 빈 지갑을 들고 여행길에 나선 나를 탓할 수밖에. 달달한 휴식은 포기했다. 하하.
이번 여행은 나의 등나무꽃 상식을 기분 좋게 부숴줬다. 수령 160년의 나무가 치렁치렁 꽃을 피우다니. 흰색 등나무꽃의 아름다움이라니. 보지 못한 살구색과 노란색 등나무꽃은 언젠가 다시 관광버스 여행에 신세를 지련다. 피는 시기가 다르니 두 해에 걸쳐 가야 하나? 그러고 보니 매해 보러 온다는 어르신이 계셨다. 올해도 가셨을까?
바깥 산책로에서 바라본 흰색 등나무꽃 터널 /사진=양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