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한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의 그 뿌듯했던 감흥이 사라지지 않는다.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결실이기에 이 느낌은 아주 오래 기억될 것이다.
작년에 실패한 경험도 있고 해서 금년에는 앞장을 선 완산이 아주 철저히 준비를 한 모양이다. 작년에 갔었던 1100고지 가까운 코스를 택하지 않고, 거리는 조금 멀지만 안전한 영실 진입로 약 800m 전방에 초기밭 가는 길로 들어섰다. 작년에 우리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온 그 길이다.
제주시에서 출발할 때는 맑은 날씨에 낮에는 찜통더위를 예상되는 그런 날이다. 그러나 어리목을 넘어서자 구름이 시야를 가리며 가끔 빗방울도 떨어지는 전형적인 한라산 여름 날씨를 보인다. 더위를 느끼던 피부가 금세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원해졌다. 우리가 사는 제주는 참 좋은 곳이다.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에서 벗어나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1100고지 휴게소에는 완산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산행의 어려움을 미리 감지해서인지 오늘 산행에 참가한 인원은 고작 다섯 명이다. 특공대격인 은하수마저 빠지는 바람에 인원이 대폭 줄었다. 우리는 차 한 대에 모두 타고 영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영실입구가 1KM 남았다는 교통표지판을 금방 지나면 길 오른쪽으로 난 숲길이 보인다. 그 곳으로 진입하면 길가에 차를 몇 대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리는 감시초소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출발했다. 우리말고도 두 대의 차가 서 있어서 평일이지만 숲길을 걸어 오름을 찾아가는 일행이 더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완산의 말로는 여기서 갈 수 있는 오름이 우리가 갈 삼형제 족은오름 이외에 노리오름, 한대오름, 돌오름 등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약 두 시간 정도의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힘차게 출발했다.
숲길은 상쾌했다. 한창 물이 오른 짙은 녹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워 새 기운이 샘 솟는다. 이따금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나 몇 겹인지 모를 나뭇잎들이 보호막이 되어 밑에는 안전하다. 물이 고인 냇물도 건너고 새소리도 들으며 30분 정도 걸어 제1 캠프격인 첫번째 초기밭에 도착했다. 작년에 우리가 내려오다가 들려서 초기버섯도 샀던 곳이다. 지금은 오름 찾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본격적인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갈림길에 통나무를 이용하여 쉼터도 만들고 간판도 세워 놓았다. 거기서 한대오름 쪽으로 가는 여자분들도 만났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인 제2캠프인 장뇌삼 농장을 향해 출발했다. 길이 다소 질퍽가리고 빗물에 패인 길이 좀더 거칠어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 것은 없었다. 여전히 하늘을 가린 숲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20분 정도 더 걸어 장뇌삼 농장에 도착했다. 주거용 집과 창고가 두어 체 있는 꽤 규모가 큰 농장이었다. 사람은 없고 개만 주인 없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우리를 반긴다.
이 농장에서는 세 갈레로 길이 나누어진다. 맨 오른쪽이 노리오름과 족은오름 가는 길, 가운데가 한대오름 가는 길, 왼쪽이 돌오름 가는 길이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이 길로 노리오름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우회전하여 족은오름을 찾아갈 계획이다. 길가에는 그물이 쳐진 안쪽에 장뇌삼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어떤 것은 많이 자라 빨간 꽃인지 열매인지를 달고 있는 것들도 보인다. 길은 조금 좁아졌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듯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중간 중간에 샛길이 여럿 있고 리본도 매어 있으나 들어가 보면 길이 끊기거나 미심쩍어 계속 북서쪽을 향해 걸었다. 한 시간 가까이 걸으니 잡목 숲이 끝나고 삼나무 숲이 나타났다. 자신만만하게 앞장을 선 완산이 걱정이 되어 다시 돌아가자고 한다. 완산의 조사에 의하면 이 삼나무 숲은 노리오름 기슭에 조성된 인공숲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족은오름을 지나쳐 와서 다시 돌아가서 처음에 완산이 들어섰던 갈림길로 가 보자고 했다. 이왕 온 김에 계속 가 보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완산의 말을 믿고 처음 길림길까지 되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서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갈림길은 이내 끊어지고 바퀴 자국은 장뇌삼을 심으려고 개간할 때 트랙터가 다닌 흔적 같았다. 시간은 어느덧 두시간 반이 흘러 12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포기하고 장뇌삼 농장으로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숲속을 한참 헤맨 끝에 먹는 점심이라 더욱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머리를 맞대고 대책회의를 했다. 족은오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손쉬운 한대오름을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작년에도 실패한 것을 금년에도 못 찾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기필코 찾아보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완산의 사전 조사한 정보에 의하면 분명히 이 농장 북서쪽 멀지 않은 곳에 족은 오름이 있다는 것이다. 농장을 하면서 진입로를 막아버려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이 농장의 울타리를 끼고 들어가서 무작정 북서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조릿대가 깔린 숲속에는 가도 가도 나무숲 뿐이다. 우리는 되도록 높은 곳으로 그리고 어두운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사람이 안다닌 곳이라 조릿대도 상당히 키가 커서 무릎을 휘감는다. 제법 큰 내창도 여러번 건너고 썩은 나무등걸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처없이 걸었다. 이제는 방향도 잘 가늠할 수가 없다. 한 시간 이상을 숲속에서 헤맨 끝에 이제는 거의 탈진할 상태에 이르렀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이다. 지형이 차츰 높아지기 시작하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오름의 형체가 보이는 듯 했다. 우리는 환성을 지르면서 젖먹던 힘까지 내어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오름은 상당히 가파르다. 오름의 높이로 보아 삼형제 족은오름이 아니면 샛오름일 것이다. 오름 정상까지 나무가 우거지고 조릿대도 여전하다. 다들 녹초가 되어 정상에 올랐다.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니 구름에 가렸던 주변 경치가 깜짝쇼를 보인다. 야호!! 환성이 절로 나온다. 여기가 우리가 찾던 족은오름이 분명하다. 바로 앞에 구름을 이고 있는 샛오름과 큰오름의 기지국 안테나가 선명하게 보인다.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온다. 역경을 헤치고 어렵게 찾은 오름이기에 더욱 반갑고 우리가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전신을 감싼다. 30분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구름이 앞을 가렸다고 보였다가를 반복한다.
정상에 올랐으니 자연스럽게 길을 찾았기에 내려오는 과정을 순탄하다. 내려오면서 보니 족은오름 가는 길은 삼나무 숲에 들어서서 100m 정도에 갈림길이 있었다. 주위에 여러군데 리본이 달려있고 특이한 것은 리본 끝에 작은 나무가지를 매달이 놓은 곳이 그 곳이다. 중간에 길이 없어지더라도 그 방향으로 계속 가면 리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무려 네 시간을 헤맨 끝에 드디어 족은오름을 찾아 올랐다. 그래서 다시 차 있는 곳까지 걸어서 모두 여섯 시간을 걸었다. 거의 다 와서는 쏟아지는 비도 맞긴 했지만 우리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걸었다. 오름을 다니기 시작한지 다섯 해를 넘기지만 이런 경험을 처음이다.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한사람도 불평을 하는 이 없이 똘똘 뭉친 마음과 완산의 치밀한 정보와 끈기가 이루어낸 멋진 작품이었다. 2010. 7. 22.
첫댓글 완산의 손바닥 안에서 4시간이나 헤맨 끝에 시성제 막둥이오름에 올랐다. 얏~호, C오동 만세! 샛오름 너머 잠깐 보였던 큰오름 통신탑.. 오름 셋이 일직선상에 있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