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열흘이라는 시간, 아니 내 생의 순간순간을 어쩌면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걸어온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던 곳.
그렇게 성모님은 긴 시간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비발디의 슬픔의 성모(stabat mater)를 들으며 그 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폴란드의 쳉스트호바, 빛의 언덕이라는 뜻의 야스나 구라 수도원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그곳에 계신 검은 성모님께로 향합니다.
크라코우가 문화 예술의 중심이라면 이곳, 쳉스트호바는 폴란드인들의 영적, 정신적인 수도이자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로
순례객 수로 첫번째인 멕시코 과달루페 다음으로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드는 세계적인 순례지입니다.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 이 정식명칭인 야스나 구라 수도원 입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 모습이
불빛 속에서 낯선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객들을 따뜻이 맞이하고 계십니다.
수도원 성당에 불이 켜지고 우리보다 앞서온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성당 입구에는 2010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은 폴란드 대통령 부부와 각 부처 위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지요.
카친스키 대통령은 폴란드 자유노조를 이끌어 공산주의체제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의
참모로 철저한 반공주의 신념을 지녔던 인물로 평가됩니다. 성모님께 그들의 영혼을 맡겨드리며 잠깐 머리를 숙입니다.
성당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5시 반부터 시작된 아침기도 소리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름답게 이어집니다.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기적의 선물을 주신 성모님....
묵주와 목발등이 벽에 걸려져 있습니다.
6시가 되자 나팔소리가 장엄하게 울리며 중앙 제대의 가려져 있던 블랙마돈나 초상의 모습이 공개됩니다.
빛의 언덕이라는 뜻의 야스나 구라 수도원, 폴란드의 아침은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성화속 마리아의 모습은 특별했습니다.
성모님 얼굴에 눈으로 확연히 보이는 상처 자국, 마치 창에 찔린 예수님 모습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마음 깊이 전해졌습니다.
성화 옆쪽엔 교황 바오로 2세께서 저격당했을 때 핏방울이 그대로 묻어 있는 영대가 걸려져 있습니다.
상처는 아들과 어머니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2천년이 지난 오늘에 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고통없이 눈물없이 사랑은 완성될 수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아침 예식에 참례하고 나오는 길, 주위는 여전히 푸른 어둠 속에 잠겨 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며 걷는 길, 어제 하지 못한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마음의 어둠을 지우고 돌아보니 수도원에도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환한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야스나 구라 수도원에 왔습니다.
이번에도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새벽보다 환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아주십니다.
벽에는 성화의 역사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성모님의 성화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오지요.
전승에 따르면 쳉스트호바의 성모님 초상은 성 루카가 예수님의 성가정에 사용하던 식탁 위에 그린 것으로
300년 동안 예루살렘에 숨겨져 있던 중 성녀 헬레나가 성 십자가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합니다.
헬레나 성녀는 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왔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화를 위한 성당을 봉헌했다고 합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벨즈를 거쳐 최종적으로 1382년 4월 오폴레 공작 부아디수아프 오폴츠치크에 의해
쳉스트호바에 도달하게 됐다고 합니다.
17세기에는 성화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 구라 수도원을 스웨덴 침략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지요.
또 성화를 보관하고 있던 성당을 검은 성모화가 화재로부터 구해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검은 성모화는 특히 뺨에 두 줄의 상처가 나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은 1430년 후스파가 성모화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실은 마차가 떠나지 않자 성모화를 땅에 내동댕이쳤고 일당 중 한명이 칼로 초상화를 내리치면서
두 줄의 상처가 났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찌르려 하는 순간 그는 넘어져서 죽고 말았다고...
이 성화는 처음부터 정치적 불안 시대에 살던 수도자들과 기사들 그리고 치유 은사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병자들,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해온 신자들로부터 큰 공경을 받았다고 알려집니다.
18세기 폴란드가 독립을 지키지 못하게 됐을 때, 성모화는 모든 항쟁의 수호자가 되었고 민중들은 마리아를 해방과
국가 통치권의 수호자로 열렬히 공경했습니다.
현재에도 폴란드교회의 심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교회의를 비롯, 다양한 교회 관련 회의 심포지엄 등이
모두 이곳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벽면에 해시계인지 보기 드문 모양의 시계가 시간을 알려줍니다.
다시 성당에 들어서니 천사 같은 아이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곳에서 아이들 마음에 깊은 신앙을 심는 나라 ,
열살 소년이었던 콜베 신부님께 두 개의 상자를 들고 나타나셨다는 성모님 또한 이 쳉스트호바의 성모님이셨다지요.
아이들이 먼지 섞인 세상안에 자라면서도 그들의 마음이 성모님 안에 굳건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당 마당에서 수녀님들은 무얼 그리 올려다보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아프리카 콩고에서 오셨다는 주교님께서 순례자들에게 강복을 주십니다.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순례를 온 모양입니다.
잠시 긴 벤취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답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에 둘러 싸여 있는 신부님의 모습도 낯선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동심의 환한 미소도 참 해맑습니다.
폴란드 전통의상인 듯한 고운 옷을 차려입은 소녀 둘이 성당 마당을 향해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 눈에 이렇게 예쁘면 성모님 눈에는 얼마나 더 예쁘게 보일지,
이곳은 아이들의 첫영성체 예식도 자주 볼 수 있는 픙경이라고 합니다.
수도원 한 쪽에 아름다운 문이 있어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닫혀 있어도 하늘을 담아낼 수 있고 빛을 통과시킬 수 있으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폴란드 태생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교황좌에 오르신지 몇 개월 후의 역사적인 폴란드 방문 동안에
쳉스트호바의 성모님 앞에서 기도드리셨지요.
"폴란드의 아들을 베드로좌로 부르신 사실은 이 성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곳은 큰 희망의 땅이며,
나는 이 성상 앞에서 수 없이 기도하곤 하였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교황은 이후, 1983년과 1991년에도
쳉스트호바의 성모님을 방문하십니다.
이곳, 은수자 수도회의 로마노 신부님의 안내로 수도원 홀을 볼 수 있었는데요.
수도원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들과 깃발들이 하얀 벽과 어우러져 깨끗한 신비감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에는 고상 옆에 성당의 블랙 마돈나의 모사품이 있지요.
수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성모님 초상은 전승과 달리 6~7세기에
이름 모를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오랜 세월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통하여 훼손되어졌으므로 중간에 어느 화가에 의해
다시 복구 되는 작업이 여러번 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간 익숙하게 보아왔던 예쁜 모습의 성모님의 모습과는 다른, 슬픔과 상처가 깊이 배인 성모님의 초상이
언뜻 보면 낯설고 무서워보이기까지 한다고 어떤이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초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수님의 고난과 성모님이 살아내신 일생이 마음 깊이 전해옴을 느낍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그로 인한 상처 또한 신앙인으로서 감내해야하는 우리들의 몫임을
생각하면서 그분께 기도드립니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 또 희망을 우리도 간직할 수 있기를...
아드님의 수난을 통하여 마음 속에 깊이 패인 상처를, 그리고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심으로써 사랑을 완성하신
어머니의 사랑의 승리를 저희도 닮을 수 있기를 말입니다.
9월의 마지막 날, 가을이 조금씩 물들어가는 이곳 야스나 구라, 빛의 언덕에서
상처에서 피어나는 성모님 사랑의 빛 또한 온 세상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음을 느끼며
마지막 행선지 바르샤바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