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술 마시고 외로워서 책을 읽고 외로워서 시를 쓰는 시인. 그 중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시인. 문학을 하는 사람은 술을 즐겨야 한다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셨다고 당당히 고백하는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술잔을 기울인다. 기자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술잔을 부딪치며 그의 속 시원한 생각들을 들었다. 이건 뭐 인터뷰를 가장한 술자리다. 어서 빨리 인터뷰를 마치고 애인과 만나야 한다며 서둘러 마시자는 시인 류근. 몇 번째 애인인지 모를 그녀와 마시기 위해 ‘술배’를 아껴두겠다며 조금씩 들이키는 그에게서 뭔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진다. 너무 솔직해 헛웃음이 나온다고 할까? 실제로는 애인을 만나는지 팬을 만나는지 혹은 동네 친구 시인들을 만나는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러 의미로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그의 애인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의 이런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은 그의 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덕분에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들은 북특정 다수에게 ‘좋아요’ 세례를 받으며 널리 퍼졌고 어느새 시인으로보다 페이스북 스타로 더 유명해졌다. 그런 그가 그 인기에 힘입어 산문집을 펴냈다. 페이스북의 글과 거기에 덧붙이는 새로운 글들을 엮은 책이다. 제목 역시 매력적이다.『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니 이 솔직한 시인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그와의 취중 인터뷰를 전한다. 얼큰한 술기운도 함께 전하니 느껴보시길. 현실과 책 속의 이야기가 다릅니다
픽션과 팩트. 이것도 하나의 장르가 아니겠는가 생각해요. 매체도 다양해지고. 장르가 시, 소설, 논픽션 꼭 이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다른 장르가 나와도 되지 않는가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여기 있는 류근이 현실에 있는 류근과 다를 수 있어요. 그렇다고 이게 류근이 아닌 건 아니에요. 이건 나의 정서이고 진실이고 하니깐. 제 안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 남편 다 자기만의 역할이 있는데 여기에선 가난하고 찌질하고 못나고 좌절하고 우울하고 이런 류근이 있는 거죠. 매일 이렇게 살면 사람이 살겠어요. 그런데 별반 다르지 않아요. 알아 듣고 계신 거죠? 애매하고 모호하게 얘기를 하면 모호하게 알아 드시면 됩니다.(웃음) 책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인데요. 사랑이 찾아오던가요? 원래 제목은 ‘울면 좀 어때’ 그런 거였어요. 다들 탐탁하지 않은 거에요. 그러던 중에 아는 분이 평론가인데 이번에 에세이를 내요. 그런데 제가 제목을 지어줬어요. 사랑이 다시 내게 말해주는 것들. 이거였어요. 우연히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혜민스님이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내신 거에요. 뭔가 ‘것들’이 비슷하잖아요. 그러다 그 형도 책을 계속 안내고. 그래서 제가 그냥 먼저 썼어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라고 조금 바꿔서. 형이 나중에 왜 니가 쓰냐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제목 괜찮나요? 책의 제목을 보면서 작가님에게 뭔가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번 사랑을 해요. 예쁜 여자한테는 늘 말을 걸어요. 요즘은 바빠서 연애를 못해서 마음이 바빠요. 이제부터 가열차게 연애를 해야 해요.(웃음) 꽤 미남이십니다. 목소리도 좋으시고. 소실적에 여자들 많이 울리셨을 것 같은데요 그 때는 예쁜 여자한테 잡혀서 꼼짝 못하고 살았어요.(웃음) 어제도 독자 분들과 만났는데 다 그런 것들만 물어봐요. 어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사실 출판기념회를 가장한 술판이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더라고요. 여성 독자들이 많던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왔어요. 재미있는 점은 아저씨들이 많았다는 거에요. 아저씨 팬들이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런가 고민을 해봤는데 제가 쓴 글이 전형적인 한국남자들의 아픔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찌질한 저를 보며 상대적으로 위안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 이런 시인도 사는데 하시면서. 완전 실패한 시인의 모습이잖아요. 보살펴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문체나 내용들이 무척 특이합니다.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연희문학창작촌이란 곳이 있어요. 2011년 10월에 거기 들어가게 된 거에요. 시를 쓰려고. 가을이었어요. 그전까진 페이스북이 뭔지도 몰랐어요. 대학원 후배가 오빠는 반드시 페이스북을 하라고 하는 거에요. 나 같은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 후배가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제가 이 페이스북의 메카니즘을 전혀 몰라요. 그래서 그냥 장난처럼 예전 자취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거에요. 자취방, 술, 연탄불 뭐 이런 얘기를 쓰기 시작한 거에요. 그리고 거기 밥을 안주거든요. 그 관리하시는 분도 조금 무섭고.(웃음) 그 때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했는데 글을 올리니깐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그러더라고요. 같이 놀자고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깐 페이스북의 류근이 생긴 거에요. 전국에서 라면이나 쌀 이런 생필품들이 막 오더라고요.(웃음) 어제는 어떤 분이 쌀하고 묵은지를 가져다 주셨어요. 사람들이 너무 착해. 이번 산문집을 내기 전에 시집을 내셨는데, 등단하고 18년 만에 내셨습니다. 이유가?
대학 들어가서 어쩌다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고 등단은 했지만 여러 이유로 시집을 못 냈어요. 그러다 직장생활을 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니깐 시를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런데 아마 그 직장에서 월급을 20만원만 더 줬으면 그만두지 않았을 거에요. 그럼 시는 못썼겠죠.(웃음) 회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했는데 그것도 망하고. 그리고 인도를 다녀왔는데 좀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돈 좀 없으면 어때 하면서. 이 후 이런 저런 사업들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18년 만에 전격적으로 전작시집을 냈어요. 발표를 한번도 하지 않은 시를 한꺼번에 다 낸 거에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 속에서 김현이란 평론가의 해설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내가 시집을 내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내야지 생각을 했고 그 기회를 기다리다 보니 이렇게 늦어진 거 같아요. 그런데 그 평론가님은 돌아가셨더라고요. 본인을 3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하십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3류란? 3류의 기준이 그거에요.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이루어낼 수 있으면 그건 1류에요. 하고 싶은 일이 어떨 때는 되고 어떨 때는 안되고 하면 그건 2류에요. 마음에 열정은 있지만 그런데 안 되는 사람은 3류에요. 좌절하는 사람이 3류죠. 내가 꿈꾸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삼류에요. 내가 꿈꾸는 시인의 삶과 현실의 시인의 삶이 달라요. 그래서 항상 좌절하는 거에요. 지금이야 남들이 조금 읽어주는 산문가가 되었지 시인의 모습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미 성골, 진골이 나눠져 있어서 난 이미 힘들어. 평론가들한테 잘 보인 것도 아니고. 요즘은 시를 어렵게 쓴다는 것도 잘 알아요. 시를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 평론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어려운 시를 써요. 요즘 시를 보면 황당해요. 시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라는 반발심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3류로 하려고 작정한 거에요. 오히려 더 부드럽고 따뜻한 시를 쓰려고 작정한 거에요. 시인들이 말하는 리그에서의 3류에요. 그들은 1류고. 책이 술에 대한 얘기가 전부입니다 술 권하는 책. 읽다 보면 다들 술 생각이 난다고 해요. 계속 반복적으로 술 얘기를 해서 그런가 봐요. 사실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실은 제가 숫기가 없어서 술을 먹는 거에요. 술 마시면 좀 달라지고 버틸 만 하니깐. 하나의 방편이지. 사람들이 제가 맨정신인걸 잘 못 봐요. 나는 집에서는 맨정신인데 밖에서는 취해있으니깐 사람들이 다 저거 어떻게 사나 걱정을 해요. 그런데 집에서 마시진 않으니깐. 술을 안마시면 난 어떤 문제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셔야 하는 내 심정은 오죽하겠어요. 술을 마셔야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또 술을 마셔야 애인들한테 아쉬운 소리도 하고. 술은 죄가 없어요. 제가 죄인이지.(웃음) 책을 보면 상처투성이 삶이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대체 무슨 상처인가요? 제가 볼 때 상처는 자꾸 느는 것 같아요. 상처거리가 늘어요. 상처는 단련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점점 더 상처받을 일들이 많아지는 사회인 거 같아요. 계속 상처받고 사는 거에요. 외로움도 마찬가지에요. 누구나 죽음이란 절대 과제를 매달고 사는 존재로서 그 죽음을 견디기 위해서 살죠. 사람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죽음과 직면해 있어요 사람은. 죽음을 매달고 사는 존재. 죽음에 대한 저항, 투쟁. 그 안에서 우리끼리 아웅다웅하면서 싸우는 거에요. 서로 견제하면서. 외로운 거에요. 어쩔 수 없는 구조적 외로움이에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죠. 그런데 사실 외롭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외로운 거에요. 진짜 불쌍한 거지. 그럼 작가님은 외로움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술 먹고 연애하는 거죠.(웃음) 모든 예술들이 다 그런 거 아니에요. 감동과 웃음을 주겠다는 거잖아요.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해보려고 하는 거죠. 故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작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인연이 궁금합니다
등록금이 힘들었어요. 아는 후배가 가사 한번 써보라고 저한테 얘기를 했어요. 늙은 복학생이었을 때인데 후배가 기획음반에 들어가는 가사를 써보라고 했어요. 등록금을 마련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그날 밤에 29개의 가사를 썼어요. 그리고 그 가사가 원래 의도했던 가수한테 안가고 떠돌다가 김광석에게 갔죠. 6개월 만에 가게 된 거에요. 그리고 한참 후에 연락이 왔어요. 4집 나온 게 94년도니깐 몇 년만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느날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갔더니 노래를 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처음 들었는데 처음에는 몹시 실망을 했어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가사와 멜로디가 안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자꾸 몇 번 들으니깐 점점 좋아져요. 참 좋은 노래에요. 부르기는 힘들지만. 김광석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라고 들었어요. 죽기 5시간 전에 부른 마지막 노래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이 노래 때문에 먹고 살아요. 사람들한테 저를 시인이라고 하면 모르는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를 했다고 하면 그제서야 아~ 해요.(웃음) 이외수 작가님과 꽤 친한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멋진 추천사도 써주셨는데요 춘천에서 학교를 다닌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집에 갔었어요. 그런데 그 집 2층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려오는 거에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사람이더라고요. 내려와 내 옆에 앉았는데 이외수 작가인 거에요. 황당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그림을 그리시더라고요. 그 때 제가 시인이 되려고 한다고 하니깐 이외수 작가가 시 좀 줘봐 이러시는 거에요. 마침 가방에 써둔 시가 있었는데 그걸 보여드렸어요. 시를 읽으시더니 사모님한테 “여보 이거 또 평생 돈 안 되는 시가지고 해맬 사람 하나 생겼구먼. 여기 술 한 병 갔다 줘.” 이러시는 거에요. 그리고 같이 밤새 술을 마셨어요. 그 때 돈이 없어서 휴학을 한 상태라고 이야기를 살짝 했는데. 아침에 작가님이 일어나시면서, 그림이 별볼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돈이 꽤 될 거라고 하시면서 갔다 팔아서 등록금에 보태 쓰라고 하시면서 밤새 술 마시며 그린 그림을 주시는 거에요. 감동 아니에요? 이외수가 보이지도 않는, 등단도 못한 애한테 그림을 주시면서 등록금에 보태라고. 그 때부터 제가 팬이 되었죠.(웃음) 요즘 인기가 많아지셨습니다 제가 글쓰는 재주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이 재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다는 게 너무 기뻐요. 놀라운 일이고 기쁜 일이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SNS는 많이 퍼질 수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보고 좋아하시면 기쁘죠.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전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그래서 조금 더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아침방송에 나가야 해요. 가서 대박을 내야죠.(웃음) 혹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신경을 쓰고 계신지? 제가 꼭 그런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계속 알려줘요. 지금 얼마나 팔리고 순위가 몇 위라고. 그런데 제가 곧 라디오 녹음이 있거든요. 사실 전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스튜디오 같은 곳에 잘 못 들어가는데 출판사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해요. 제가 지금 출판사의 운명을 짊어 지고 있어요. 열심히 팔아야 해요.(웃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책에도 담겨 있지만 카리브해(Caribbean Sea)로 가서 살 거에요. 낚시하면서 살 거에요. 많이 팔아주면 가겠죠.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으면 하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 번째는 출판사를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로는 내가 좀 더 유명해져서 좀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갔으면 좋겠어요. 뻔뻔하게. 내가 나쁜 놈은 아니거든. 여자들한테는 나쁜 놈 일수도 있지만.(웃음) 이외수 선생님 말에 의하면 ‘나쁜놈’은 ‘나 뿐인 놈’이라는 거에요. 전 나 뿐이진 않거든요. 그리고 페이스북 폐인이 돈벌어서 카리브해로 갔다면 또 재미있지 않겠어요? ┃글_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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