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示二子 ~ 한포재 이건명 선조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이 두 아들에게 준 유언[書示二子]
내가 불초하여 조정에 선 것이 거의 40년인데도, 위로 임금에게 미쁨을 얻지 못했고, 아래로 한 조정에서 믿음을 받지 못했다. 마침내 죽게 되었으니 누구를 허물하겠느냐. 너희들은 나를 경계삼아 과거 시험에 마음을 두지 말라. 오직 독서하고 몸가짐을 삼가는 데만 힘쓰도록 해라. 손자들 중에 혹 총명하여 애석하게 여길만한 아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밤낮으로 가르치고 다스려 충효로 이어온 오랜 집안의 가풍을 실추하지 않도록 해라. 그리하면 내가 지하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나머지 일은 죽음이 임박한지라 다 말하지 않는다.
吾以不肖, 立朝幾四十年, 上不見孚於君父, 下不見信於同朝, 終陷大僇, 尙誰咎哉. 汝輩以吾爲戒, 勿留意於科擧, 惟以讀書飭躬爲勉也. 孫兒輩或不無聰明可惜者, 日夕訓勑, 俾勿墜忠孝舊家之風, 則吾可瞑目於地下也. 多少臨命不悉.
못난 애비의 40년 벼슬살이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임금의 미쁨을 받지 못하고, 조정의 믿음도 얻지 못해, 이제 너희에게 몇 자 유언을 남기고 떠난다. 너희는 과거(科擧)에 조금도 연연치 말아라. 벼슬길은 죽음을 부르는 길일뿐이다. 세상의 명리란 이토록 허망한 것인 줄을 깨닫는 데 40년 세월이 필요했다니 그것이 좀 슬프다. 과거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책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독서하지 않으면 남의 손가락질이나 받는 천한 사람이 되고 만다. 또 몸가짐을 언제나 삼가야 한다. 애비가 이리 세상을 떴으니, 너희가 일거수일투족을 함부로 하면 그것이 그대로 큰 흠이 되어 돌아올게다. 손주들 중에 특별히 총명한 아이가 있거든 밤낮으로 가르쳐서 훗날을 기약하도록 해라. 내 비록 이리 간다만 어찌 눈을 감겠느냐. 할 말이 많다만 다 말하지 않겠다. 속뜻은 너희가 가늠해 보아라.
한포재(寒圃齋)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강(仲剛), 호는 한포재(寒圃齋)이다. 병산 이관명이 형이고, 소재 이이명이 그 종형이다. 사후에 과천의 사충서원(四忠書院), 흥덕(興德)의 동산서원(東山書院), 나주의 서하사(西河祠)에 제향되었다.
한포재는 1684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6년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수찬·교리·이조정랑·응교(應敎)·사간을 역임하였다. 1698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우승지·대사간·이조참의·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722년 노론이 모역한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전라도 흥양(興陽)의 나로도(羅老島)에 유배되었다가, 그해 8월 19일 적소에서 사사되었다.
재상으로 있을 때 민생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당시의 현안이던 양역(良役) 문제에 있어서 감필론(減疋論: 군포 2필을 1필로 감하자는 주장)과 결역전용책(結役轉用策: 수령이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田結雜役價를 전용하여 감필에 따른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자는 방책)을 주장하여, 뒷날 영조 때의 균역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문을 잘 짓고, 서법에 능했는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뛰어났다. 저서로《한포재집》이 전한다.
이건명은 광산김씨(光州金氏) 승지(承旨) 김만균(金萬均)의 딸을 아내로 맞았지만 자식이없었다. 이후 안동김씨(安東金氏) 군수(郡守) 김수빈(金壽賓)의 딸을 아내로 맞아 3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차남 이성지(李性之)는 일찍 죽었다. 그 외 측실과의 사이에서 본 두 딸이 있다.〈서시이자(書示二子)〉에서 말하는 두 아들은 안동김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면지(李勉之)와 이술지(李述之)를 가리킨다. 벼슬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들어 과거에 연연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건명의 말 속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이건명은 죽음을 앞두고 두 아들 외에도 손자들과 형인 이관명에게도 유언을 남겼다. 먼저 〈손자들에게[寄諸孫]〉를 읽어보자.
오늘 일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다만 너희들과 다시 영결하지도 못했으니 끝낸 눈을 감지 못할까 걱정이다. 오직 바라기는 너희들이 부지런히 학업을 닦아 충효로 이름난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는 것뿐이다. 너희들이 장성한 뒤에 이 글을 보고 마음에 느낌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네 할애비의 부족한 덕은 모름지기 배우면 안 된다. 다 적지 못한다.
今日事, 何可言. 第未與汝等更訣, 恐終不瞑也. 惟望汝等勤修學業, 勿墜忠孝家聲也. 汝等長成後, 見此書, 則庶可感發耳. 汝祖德薄, 不須學也. 千萬不悉.
당시 손자들은 아직 어려 글을 읽지 못했다. 그는 손자들이 나중에 자라 할아버지의 유언을 읽고서 느낌이 있기를 바라 이 글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형님인 이관명에게 보내는 〈형님께 올림[上伯氏]〉를 썼다.
오늘의 일은 조만간에 있을 줄 알고는 있었지만, 끝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또한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돌아가신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덕이라면 십대에 이르도록 잘못을 용서해 줌이 마땅하겠으나, 그 혜택을 입음을 얻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불초가 스스로 재앙의 기틀을 취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겠습니까? 생각건대 두 아이는 부족하기 짝이 없고, 여러 손자는 너무 어리니, 훗날의 바람은 다만 형님께 달려 있습니다. 다행히 잘 이끌어 가르쳐 주셔서 세대가 끊어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생의 즈음에 한 차례 영결할 인연조차 없고 보니 끝내 눈을 감지 못할까 합니다. 다 쓰지 못합니다.
今日事, 固知有早晩, 而終至於此, 亦復何言. 最是先祖先考之德, 宜得十世之宥, 而不獲蒙其庥, 莫非無狀. 不肖自取禍機, 其誰怨尤. 且念兩兒迷甚, 諸孫穉藐, 日後所望, 惟在於兄主. 幸望善爲指敎, 俾勿絶世耳. 死生之際, 無緣一訣, 終恐不瞑. 千萬不宣.
손자들에게는 부지런히 독서하여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말라는 당부와 자신의 박덕함을 배우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형인 이관명에게는 두 아들과 손자들을 모두 맡긴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건명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모두 옥사하고 말았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