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열혈당원이었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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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중에서 이봉창 의사(1900-1932년)는 처음으로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한국인의 용기를 드러낸 인물이다. 오사카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어려운 생활이 일본인의 식민정책에 연유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는 1931년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스스로 찾아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드디어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는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애국선서식과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슬퍼하는 김구 선생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봉창 의사는 사전답사를 하고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졌는데 히로히토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가 알려지자 특히 중국 신문들은 한국 청년 이봉창이 모든 중국인의 간절한 의사를 대변하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이후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독립투사의 활동을 은연중에 많이 돕게 됐다. 1932년 10월 10일 일본 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이봉창 의사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봉창 의사는 체포부터 심문, 재판, 심지어 교수형 직전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수님의 제자 명단에 열혈당원 시몬(마태 10,4)이 등장한다. 열혈당은 극단적인 유다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우상숭배와 배교, 율법적인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의로운 진노와 심판의 대행자로서 하느님께 헌신한 자들이다. 열혈당원들은 하느님만이 그들의 왕이고 로마인들에 대한 세금 납부도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설명해서 대부분은 현대의 테러리스트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타협적인’ 유다인들에 대해서는 약탈, 살인을 저지르는 공격을 감행하였다. 서기 70년 열혈당은 로마에 대항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런데 열혈당원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감화되어 제자가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설교하였다. 시몬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화에서 시몬을 톱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예수님과 열혈당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에 대한 태도 속에 있다. 열혈당은 율법을 어기는 자를 엄단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새 율법을 선포하셨다.(루카 6, 27-36 참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인 행동의 중심이며 규준이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 사랑의 모범이었다.(루카 10,30-37 참조)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지만 진정한 사랑과 화해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진리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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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