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아 마땅한, 힘 있고 진정성 넘치는 수작
철학과 3학년
박해정
군사독재 시절인 83년도 당시 군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도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의 폐쇄되고 억압되며 철저히 고립된 이들의 사회였다. 비록 현재의 군대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해도 절대로 개선될 수 없는 것들은 존재한다. 상명하복의 군인정신과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기희생, 일당백의 전투력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완성하기 위해 군대는 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차압하고 유보하며 퇴화시킨다. 비록 그것이 2년여의 약속된 시간 동안일지라도. 한정된 시간동안의 경험과 기억은 제대 후 한 인간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이 모인 군대의 특성 중 하나는 시간이 담보하는 권력에 있다.
사회적 지위, 학력, 인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동진급에 따른 자동으로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비열한 자들의 축복받은 공간이 군대인 것이다.
제 아무리 힘들고 박박 기는 졸병 생활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최고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기에 그날을 위해 참고 견뎌낸다. 이 집단에는 무의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끝없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항하며 개선의 노력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군대는 후자의 사람들에게 고문관이라는 거룩한 호칭을 하사한다.
윤종빈 감독의 독립장편 [용서받지 못한 자]는 한 마디로 고문관들의 이야기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꽤나 합리적인 병장과 그의 중학 동창인 고문관, 그보다 더한 고문관인 또 다른 신병, 이 세 남자의 이야기이다. 군대의 추억담을 겉절이처럼 보여주며 고문관이며 아웃사이더인 이야기를 깍두기처럼 내세우기에 더 없이 재미있지만 정작 배추김치를 맛보는 것은 영화가 후반에 이를 때쯤에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오락성으로 포장된 감춰진 메시지와 만나는 동안 시종 지루하지 않고 힘 있게 영화를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는 감독의 영민함이고 탁월한 연출력에 기인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유태정 병장과 이승영 일병 허지훈 이병 사이의 삼각구도 속에서 군대의 실상을 고발하면서도 시간이 담보하는 권력구도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영화의 핵심에는 이중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즉, 군대라는 집단이 어떤 방법으로 한 인간의 개성과 인권을 잠식하고 말살시켜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리는 한편, 사병들의 권력구도와 시간에 따른 자연 승계로 인한 재편 속에서 이합집산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리 토끼도 잡기 힘든 독립영호가 두 마리를 다 잡은 셈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유한한 시간, 다시 말해 입대에서 제대까지 약속된 시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함몰되었다면 그야말로 군대 고발영화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덫을 피해가기 위한 수색대 역할로 영화의 핵심인물인 병장 유태정과 제대한 후 지리멸렬한 삶을 사는 한 젊은이 유태정을 내세우고 있다.
기억하기조차 싫다 면서도 여자친구 앞에서 군대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내는 유태정의 모습은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의 보편적 행동과도 같이 한다. 그것은 군대조직이 한 인간의 젊은 날을 어떻게 세뇌하고 깊숙이 개입하면서 행동양식마저 바꾸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무서운 사례이다. 우정과 군대에 대한 추억이 유태정과 이승영 모두에게 악몽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후반부 장면은 세심한 플래시백과 해답을 찾아가는 스릴러의 긴장감마저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군대를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군대와도 같은 폐쇄되고 특수한 조직,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된다고 믿는 이들이 득실거리는 한국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겨냥한 직격탄에 가까운 영화이다. 전체적으로는 군대고발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영화 속 환경과 장소와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판이나 검찰이나 감옥, 종교집단, 기업조직에 환치 시켜도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원형을 잃지 않는 불가사의한 조직의 이야기는 곧 현재 한국사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착화된 이념이나 관행, 관습의 개선과 변혁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영화는 이승영이라는 신병의 눈으로 군대와 세상을 바라보고, 부조리한 조직을 개선하도록 독려한다. 그의 노력이 끝내 좌절로 이어질 때 우리는 다시금 거대한 벽 앞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거짓 환상을 심어주지 않았고 작은 몸짓으로나마 변화와 개혁의 희미한 빛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나는 이 소박하지만 진실성 넘치고 힘 있는 영화를 한껏 지지한다.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는 것은 잘 짜여진 스토리와 실감나는 대사들, 누구라도 동조할 수밖에 없는 군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다만, 군의 부조리와 인권과 개성의 말살이 낳은 비극적 결말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핵심인물인 유태정의 제대 후 인성변화나 생활방식의 변화가 수박 겉핥기에 머문 점은 아쉽지만 독립장편이 이만한 완성도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영화의 밝은 미래를 기대케 한다.
2004년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이 있었다면 2005년에는 단연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만들 만큼 뛰어난 내러티브와 녹녹치 않은 메시지를 지닌 보석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칭찬함에 있어 첨언 할 것이 있다면 음악이다.
베토벤의 “비창소나타”로 시작된 영화는 본 윌리엄스의 “푸른 옷소매”의 환상곡으로 끝난다. “비창소나타”가 샹그리라스의 노래 “Past Present and Future"로 편곡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려낸 노래였다면 ”푸른 옷소매의 환상곡“은 서부개척 시대의 순수한 목가적 향수와 자유의지를 담아낸 1962년 작 [서부개척사]의 테마로 쓰인 음악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절묘하게 담아내는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곡을 사용한 감독의 의도야 알 수 없으나, 음악까지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이전 독립영화의 핸디캡을 단숨에 극복한 뛰어난 선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