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8일 방문한 프랑스 파리 북부 센생드니의 보비니 시. 삼성사회봉사단,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방문한 유럽 5개국 가운데 첫 방문지였다. 센생드니 가족수당금고(CAF) 상담 창구마다 가족수당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센생드니 인구 150만 명의 절반 이상인 80만 명이 가족수당을 받는다. 인구 12%가 한부모 가정이고 38%가 빈곤 상태인 대표적 빈민 지역이다. 하지만 출산율은 프랑스 평균 2.02명보다 많은 2.4명에 달한다. 》
마르틴 샤보니에 가족수당금고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높은 출산율 덕분에 센생드니는 프랑스에서 가장 젊고 활기찬 지역”이라며 “아이를 키우려는 가족은 20개의 지원 프로그램 중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신생아가 아닌 신생아의 가족을 지원
프랑스 여성이 임신 8개월이 되면 프랑스 국립가족수당금고(CNAF)로부터 출산준비 비용 890유로(약 138만 원)를 받는다. 출산휴가는 둘째 아이까지 16주, 셋째 아이는 26주까지다. 육아휴직을 할 경우 일을 못해서 손해 보는 비용까지 가족수당금고에서 보조해준다.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월 560유로(약 87만 원)를 지급하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면 이 비용 역시 전액 지원한다.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경우가 90%지만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든지 조부모가 양육하든지 상관없이 지원한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260∼270유로를 지원한다. 엄마는 육아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육아를 위한 ‘가족의 희생’에 대해서도 국가가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을 경우 4세 미만 아동을 둔 소득 하위 5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소득 258만 원 이하) 가정에만 17만∼38만 원씩 지급한다. 둘째 자녀를 둔 가정은 소득 하위 70% 이하에서 전액 지원받는다. 하지만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으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다. 손자 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나 베이시시터를 이용하는 가정에는 아무런 보조도 하지 않는다.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한국이지만 정작 가족의 아이 돌봄에 대한 사회 경제적 접근은 전무한 것이다.
프랑스 여성은 평균 2명의 자녀를 갖고 있지만 여성 취업률이 80%에 달한다. 아이가 있는 가족을 지원함으로써 출산율과 여성취업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육아는 보육시설 지원, 빈곤은 최저생계비 지원 등 복지 지원이 파편화 분산화돼 있다”며 “유럽은 다양한 문제를 통합적 정책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가족수당 재원은 기업이 60% 부담
프랑스에선 육아와 아동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아동이 아닌 가족에게 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CNAF가 있고 123개 지역마다 CAF가 있다. 아동수당, 주택수당, 장애수당을 지급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CNAF의 예산은 6600억 유로. 프랑스 전체 교육예산과 맞먹고 국방예산보다는 오히려 많다. 재원은 기업에서 고용근로자당 임금의 5.4%를 내는 가족수당보험료가 60%, 국가 보조가 20%, 근로자 소득세가 20%를 구성한다. 기업이 근로자와 함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족지원 정책은 20여 개에 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원칙에 따른다.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기본으로 삼고 그중 빈곤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가족을 우선 지원한다. 따라서 자녀 수가 많은 가족, 한부모 가족, 집이 없는 가족에게 지원금액이 늘어난다. 프랑스의 빈곤 아동 비율은 27%이지만 가족수당을 지급하면 7%만 빈곤 상태에 남는다.
한부모 가족 지원도 많다. 가족수당 100유로와 최저생계비 600유로가 기본적으로 지급되고 아버지가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가족수당금고에서 강제 징수해서 어머니에게 지급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아동수당을 자녀 수에 따라 184∼215유로를 지급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양육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을 경우 세전 소득의 67%를 최장 12개월까지 지원한다.
○ 개인의 가난은 가족에서 시작된다
벨기에의 브뤼셀종합사회복지관(CPAS)은 공공사회복지단체이다. 브뤼셀 시 밀브뤼셀 구의 경우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1만7000명을 지원하고 있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사회복지관에 지원을 신청하면 자산 조사와 내부위원회 심사를 거쳐 필요한 지원의 종류와 금액을 결정한다. 1인 최저생계비는 약 725유로다. 가족 구성원이 둘이면 한 명에 대해서는 725유로를, 다른 한 명에 대해서는 483유로를 준다. 가족 수가 늘어날수록 지원 금액이 늘어난다. 동거 부부나 동성애 부부 등 실질적 가족관계에 있다고 판단하면 모두 지원한다.
또한 빈곤 가족의 자녀는 급식비, 교육비, 의료비가 모두 무료다. 수학여행비, 겨울외투비, 체육시설 이용비, 영화관 티켓 비용까지 모두 지원한다. 빈곤 가족의 자녀도 동등한 문화적 자본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레오폴트 페레이컨 사회서비스 담당자는 “가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뿐만 아니라 빈곤 아동이 다른 아동과 동등한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며 “가족이 보육과 교육기능을 스스로 수행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의 보육 및 아동 사업 등 가족 지출 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3%다. 프랑스 3.02%, 벨기에 2.6%, 독일 2.2%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의 6분의 1 수준이다. 고경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복지예산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가족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서구에서 오히려 가족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지출이 늘어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스테크 佛국립가족수당금고 국제협력담당관 ▼ “가족형태 갈수록 다양화 지원방식도 유연해져야”
필리프 스테크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국립가족수당금고(CNAF)에서 만난 필리프 스테크 국제협력담당관(사진)은 “세계 인구는 고령화,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 욕구, 한부모 가정의 증가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부처별로 가족정책이 분산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가족정책을 주도하는 부처가 따로 있나.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각 부처를 조율하는 가족정책위원회가 대통령 밑에 있다. 또한 국가 가족정책 담당 비서관이 따로 있다.”
―가족수당은 보편적 복지제도로 보이는데 부작용은 없는가.
“가족수당의 절반은 보편적이고, 절반은 선별적이다. 영국은 빈곤층을 위한 선별적 제도를, 스웨덴은 보편적인 제도를 채택했는데 프랑스는 그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각종 수당을 보면 부자인 15%는 제외하고 있다. 사회보험보장비가 증가했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로 가기는 힘들다. 4년마다 한 번씩 가족수당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2년마다 지역 가족수당금고를 평가한다. 가족 수당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민자가 증가해 출산율이 늘어난 것 아닌가.
“프랑스의 외국인 비율이 8%에 이른다. 외국인의 11%가 최저생계비를 받는다. 속지주의에 근거해 가족수당도 지원한다. 하지만 이민자가 많아서 출산율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이민자가 높인 출산율은 0.1명에 해당한다. 이민자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1.9명이다. 인구 증가의 75%가 이민이 아닌 출생에 의해서다.”
―출산율 반등에 가장 기여한 것은 무엇이었나.
“1920년 이후 인구 감소로 인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돼왔다. 단 하나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출산율을 올리려면 꾸준히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도 좌우 정권이 교체되는 가운데에도 가족지원 정책은 변함없이 시행됐다. 1993년 합계출산율이 최저를 찍고 2000년 들어서 반등을 시작했다.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 80년이 걸린 셈이다.”
스테크 씨는 “2050년 유럽에선 지금보다 가족, 고령 관련 사회복지비용이 4.2% 증가하지만 프랑스는 3%만 증가한다”며 “한국도 선제적 투자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