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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광기(狂氣)
'아덴만 여명 작전' 중 총에 맞은 삼호 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에어앰뷸런스에 싣고 와 치료했던 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이 선생은 26일 오만에 도착했다. 오래 걸렸다.
그러더니 24일 서울대 병원에서 간다고 해서 난 수술 들어갔다.
그날 밤 다시 전화로 '내일 갈 수 있나' 묻더라. '잘해야 본전, 가면 죽는 길'이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팀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돌아와 바로 배를 수술하는데 칼 대는 곳마다 고름이 나오더라.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배는 10여일 후쯤 봉합했다. 삽관 제거 후에도 호흡기능부전이 와서 애먹었다."
이후 3일간 정신없었다. 25일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단한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여러 의사들이 너무 쉽게 얘기들 하더라.
내 인생, 아주대 입장에서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자는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사실 선장님은 중증도로 봤을 때, 내 환자 중 상위 30% 정도였다.
석 선장님의 차트엔 증상이 두 줄이다. 그럼에도 10가지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네 줄짜리 환자도 수두룩하다. 중증외상특성화센터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중환자만 모여 있기 때문에 고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걱정 없이 되레 편하게 지낼 수 있다더라.
그런데 선장님이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한 거 아닌가. 처음엔 '훌륭한 분이구나, 꼭 살리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전 얘기해보니 간단치 않은 분이더라.
뭐랄까, 정신이 올곧다고 해야 하나."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응급의료체계에 관한 한 오만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오만은 영국식 중증외상시스템을 갖춰 놓고,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정말 영화처럼 스태프들 호흡이 척척 맞더라.
인구 30만인 우리 지방도시에서 외국인이 복부 관통상을 포함해 온몸에 6발의 총을 맞았다면 과연 살아날 수 있었을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수술은 오만에서 아주 잘했다. 거기가 인구가 적은 이슬람 국가라 피가 모자라고, 첨단 의료기기나 첨단의약품이 우리나라에 더 많기 때문에 여기로 온 거다. 거기 오만은 대단한 나라다." ― 우리나라 외상외과 응급체계의 문제는 뭔가. "응급실 당직 의사는 주니어가 대부분이다. 내장 다 터져 죽어가는 중증외상환자 수술은 어렵다. 큰 병원들은 시설이 좋아도 중증외상환자를 받지 않는다. 비용에 비해 수가가 안 나오니까. 반면 병실이 비는 병원들은 중증외상환자를 받아 침상을 채우려고 하는데, 그런 데는 시설이 안 받쳐 준다."
― 얼마 전에도 장중첩증 아이가 여러 큰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다 죽었다. 왜 큰 병원에서 '우리 병원은 중증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질 않나.
"계륵이다. 병원 위상도 있으니까. 그게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위험하다." 이국종 교수가 응급외상센터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동료에게 '이 선생이 왜 이리 스트레스를 받는가'라고 물었다. 지난 해 그의 적자가 7개월간 8억 원이 넘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피를 폭포처럼 쏟는 환자를 수술할 때는 혈액이 수십 봉지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건 작은 예일 뿐이고, 그가 쓰는 첨단의료장비·인력·약품 등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받는 치료비는 훨씬 적다. 행려병자를 치료하다 사망하면 그 비용도 이국종 교수의 '적자'로 기록된다. 이런 계산은 다른 병원에서도 다 하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뭘 것 같은가. 때로 내가 병원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조직의 휴짓조각 같은 느낌 아나? 생각해봐라. 병원이 소년소녀가장에게 1억 원만 기부해도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할 거다. 그런데 내가 일을 하면 할수록 병원 적자폭이 커진다고 한다. 병원 욕하지 마라. 아주대 병원은 굉장히 훌륭한 병원이다. 나를 아직도 거둬 여전히 붙어 있지 않나. 다른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의 경우, 대부분 사직하거나 전공을 바꿨다. 몇년 전 외상외과 하다가 브랜치병원으로 발령 난 어떤 선배한테 다시 해보라고 했더니,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하다."
심장 여는 사람? 아니다. 진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열심히 하는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수입이 안 좋으면 바로 문 닫으니까. 환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는 자기가 어떻게 다쳐 왜 이 병원에 왔는지 모른다. 좀 좋아지면 나한테, 간호사한테 욕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이라고들 하더라.
외상 환자는 그게 안 된다. 내가 만난 환자 중엔 조폭 양아치도 있었고, 상당수가 저소득층이다. 복받치는 게 많은 사람들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는데 욕을 먹는다? 의사에게 숙이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내 환자분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다. 운전하거나 일하다 의식 잃었다가 깨어보니 인공항문이 생겨 있고, 하반신도 못 쓰면 누구나 열받지 않겠나."
분당의 병원에서 안 받아줘서.
노동층은 외상으로 죽을 확률이 화이트칼라보다 20배 이상 높다. 내 환자 중엔 건설노동자·공장 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이들이 많다.
내가 총상전문가라고 언론에 나와 웃었다. '내가 언제 총상전문가였지?'하고.
공장에서 분당 수천 회로 돌아가던 기계에 다치면 간장·담도·췌장이 다 파열된다. 그거에 비하면 총상은 간단하다. 프레스에 눌리면 내장이 터지고 장기가 밑으로 다 빠지고 피가 빠진다. 그런 환자들을 봐왔으니 선장님이 그다지 중증환자로 안 보이는 거다."
췌장 깨진 환자 수술을 맡으면 긴장된다.
그런데 이게 마약 같은 면이 있다. 잔디밭 스프링클러처럼 여기저기서 확 솟던 피를 수술로 막으면 드디어 혈압이 딱딱 잡힌다.
저승에 가던 사람이 살아나는 거다. 배에 고름이 가득해 하루 넘기기 힘들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그게 다 이 손끝에서 결정 나니까."
6·25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지 잘 안다. 그래서 의대에 갔다." 누구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며 잊지 말라고 당부한 말은 '석 선장님에겐 국가가 보상해줘야 한다.
훈장도 주고. 군인이 아니라 안 된다 하면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겠나. 정말 반드시 되도록 해야 한다.'
열정은 뜨겁고, 비판은 호되고, 태도는 냉소적이다. 과도한 자기 비하는 자부심의 다른 얼굴같기도 하다. 집에도 잘 안 가는, 새벽 언제든 전화를 받는 이 의사, 조금은 '미친 의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어떤 광기가 있다면, 그건 분명 사람을 살리는 쪽일 것이다. 의료 마케팅이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아주대 병원에 미친 석 선장 효과는 광고비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이 병원 홍보팀은 '석 선장이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된 1월 29일부터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2월 28일까지 한 달간 신문·방송·인터넷 매체 등에 우리 병원이 거의 매일 노출되었으니 천억 원을 들여도 이 정도의 홍보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3D 영역으로 통하지만 우리 병원이 포기하지 않고 10년 동안 외상외과 진료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이 보상받은 셈"이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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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 살리는 진정한 의술을 실천 하시는 분이네요
감명깊은 좋은글 감사합니다
고마운분 이네요
존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