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벚꽃이 만개한 부대 거리를 걸으면서 입대한 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고 있는데, 병무청에서 나에게 전화 한통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전화통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사람이 군 복무를 하다가 병무청에서 전화가 올 경우 공익근무로 다시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끔찍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현역으로 입대해서 군복무를 하려고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처럼 4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자원병역이행을 한 사람들의 체험수기 공모전을 한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이번 기회에 나의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2년 20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고된 몸을 버스에 맡긴 채 자취방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몇 개월 전 입대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우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친구의 ‘넌 언제 군대 오냐?’ 라는 한 마디를 듣고 얼떨떨했다. 그때의 난 군 입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예비역 선배들에게서 군대는 구타, 욕설 등이 난무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곳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기에 할 수만 있다면 공익근무요원으로 가고 싶었다. 또한 군대라는 곳은 자유분방한 나를 철조망 울타리 안에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가두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친구가 신체검사를 같이 받으러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결국 신체검사장으로 갔다. 처음 신체검사 받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들이 많았고 다들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으로 검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리, 혈압, 채혈 등 검사들이 시작되고 마지막으로 신체등급과 현역복무가 가능한지 아닌지 판결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검사결과는 놀라웠다. 몇 개월 전 운동으로 다친 허리로 4급 공익근무요원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때 나와 같이 검사를 받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신의 아들이다.” “부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공익근무요원으로 판정 받으면 생각할 필요 없이 공익으로 빠지려고 했지만, 막상 4급 판정을 받으니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4급을 받으니 내 몸에 이상이 있고, 나 스스로 내 몸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 신체검사 결과 때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졌다. 혼자서 답을 구할 수는 없어 부모님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을 타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현역으로 입대해서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지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말씀에 힘입어 바로 재활치료를 받았다.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재활치료 기간은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재검을 받으면 충분히 3급 이상의 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늦은 저녁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친척 형과 만난 이때 현역 입대로 결심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근처 가게에 자리를 잡고 처음 나온 이야기는 군 입대 관련 이야기였다. 형은 나에게 “효준아 너에게 있어 공익근무를 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겠지. 일단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해서 할 수 있으니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효율적이지. 게다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간 등 부수적인 것들에서 현역복무보다 보장되어 있고 무엇보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군부대가 아닌 바깥에서 보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니까. 그런데 인생에 있어 한번쯤 뜻하지 않은 ‘도전’ 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현역복무의 큰 장점은‘다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현역복무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은 그 시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양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경험이었어. 나도 현역복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향적인 성격도 고쳤고, 그 덕분에 사회생활도 잘 적응해낼 수 있었어. 이렇듯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것이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라고 했다. 형과의 만남 이후 집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으며 문득 중학생 때 육상선수로 활동하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육상선수를 그만두고 몇 달 동안 후회했었고, 다신 후회 할 결정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꼭 한번은 가야 할 군대, 멋지고 당당하게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을 다 잡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군별을 찾다보니, 멋진 제복을 입고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이 생각이 났다. 특히,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북한의 만행으로 침몰된 천안함 사건 때 순국한 46용사와 그들을 구하려다 순국한 故 한주호 준위 이들의 이야기는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당당히 재검을 받아 3급 현역복무 판정을 받고, 2013년 1월 해군에 자원입대 신청을 했다. 2013년 1월 7일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뚫고 정든 고향을 떠나 진해 교육사령부에 도착했다. 그곳엔 나와 같이 이제 군인의 신분으로 같이 훈련할 동기들이 보였고, 가족과 여자 친구와 잠시 볼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에 서로 격려하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 또한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조교들과 교관의 인솔 하에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진정한 군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날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000명이 ‘동기’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어 같은 곳에서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1주차에는 주로 신체검사를 받고, 2주차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해군에서 하는 훈련 중 타군과 색다른 훈련이 있는데, 바로 ‘전투수영’이다. 이 훈련은 군함이 격침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이함 훈련’과 이함 시 협동심과 생존력을 높여주는 ‘수중 행군’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훈련을 받으면서 지치기도 했지만, 수영을 좋아해서 가장 재미있게 받았던 훈련이었다. 반면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전군 통틀어서 훈련소의 꽃이라 불리는 ‘화생방 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전시 중의 적의 화학공격에 대비하는 훈련이며, 밀폐된 공간에서 CS탄(최루탄)을 터트려 숨을 참고 방독면의 정화통을 교체하는 식으로 훈련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숨을 들이마시게 되면 눈, 코,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 이렇게 힘든 훈련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동기들과 두터운 전우애를 쌓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좀 더 성숙해지는 발판이 되었다.
군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과 부두를 따라 군함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본 순간 해군에 자원입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배치 받은 곳은 OS정이었고, 부대 내 유류방제 청결작업 등 해안정화활동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이 바다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힘쓰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예상을 뒤엎은 것은 부대 내 선임의 구타 욕설 등 이런 부조리한 것들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긴장한 우리들을 위해 먼저 말도 걸어주고 환영회까지 열어주었다. 사회나 군대나 역시 견해의 차이로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항상 존재했다. 입대 전에는 마음이 맞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멀게 지내왔었기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동기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선임은 나와 동기가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알고 ‘너희 둘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군대를 포함해서 협동심을 중요시하는 다른 조직에서도 서로 간의 믿음은 필수적인 것이다.’ 라고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6개월의 함정근무를 마치고 정든 동료들을 떠나 진해 군수사령부 보급창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은 작전사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작전사에서는 대부분 헬스 같은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보급창에서는 다들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책과 연필을 붙잡고 토익, 자격증, 전공 등을 공부하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하여 얼마 전에는 내가 원하던 토익 점수를 달성했고,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여러 가지 공부를 병행하여 하고 있다.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대학생 시절 부족했던 학점을 인터넷 강의를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군 할인 혜택으로 토익과 같은 시험을 응시할 때 50%의 응시료만 지불하면 응시할 수 있다. 또한 부대마다 다르지만 자격증 취득 시 점수를 획득하게 되는데 일정 점수를 달성하게 되면 포상휴가까지 얻을 수 있다. 16개월 동안 현역복무를 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공익근무가 아닌 현역 입대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들의 질문에 “왜 후회해?” 라고 답한다. 군대는 나에게 있어 고맙고 소중한 것들을 느끼게 해준 곳이다. 책임감, 인내심, 대인관계 등 한층 더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곳이다. 군대는 더 이상 시간 낭비하는 곳이 아닌 ‘배움과 성장의 장’이다. 그때로 돌아가 현역입대냐 공익근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망설임 없이 현역입대를 선택할 것이다. 현역으로 입대하여 얻은 것들은 전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활을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보낼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군 입대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나처럼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는데 현역입대를 할까 공익근무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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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춘예찬 원문보기 글쓴이: 굳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