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사람들이 상당히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이성주의나 합리주의적인 접근법은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합리주의보다는 경험주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가 진리를 강조한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가치관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탈 진리, 탈 원리와 같이 사실보다는 당장 와닿는 무엇이 있어서 울림이 있는 것에 반응한다.
진리를 들이대면 그들의 반응은 “so what?”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라며 반문한다. 아무리 확실한 진리라고 하더라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도 아니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교리와 진리를 외면한다. “교리상으로 우리가 맞다”라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그 교리가 삶으로 나타나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에만 인정되고 특별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그 교회가 무엇을 믿는가?”였다면 현대에는 “그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사역들을 하는가?”를 묻는다.
“돈쭐 낸다”는 말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에게 감동을 준 단체나 기업에 후원금을 보내서 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뜻이다.
최근 산불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울진에서 돈쭐난 짬뽕집 사장이 있다. 산불이 꺼지지 않고 길어지면서 이재민과 소방 공무원들이 지쳐가고 있을 때 전 국민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감동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울진 근남면에 있는 한 중국집 사장이 소방대원들과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배달의 민족에 올라온 글에는 “산불작업 하시는 분들과 이재민들에게는 무료 식사 보내 드립니다. 요청 사항에 ‘산불작업’이라고 하시고 결재는 ‘후불’이라고 적어 주세요”라고 적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그 짬뽕집에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감동되면 나하고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처럼 기부한다.
우리나라 전체에 교회 숫자가 6만여 개로 알려져 있다. 커피숍은 전국에 지난해 통계 7만여 개다. 그 정도면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 80% 이상이 미자립교회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 조사는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히 타 종교인과 비교하면 “신뢰할 수 없는” 혹은 “거리를 두고 싶은” 대상으로 평가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딱딱한 교리만 있고 감동은 없는 사람들이 된 까닭이다. 자기들끼리 이단 시비나 벌이고 인터넷에 보면 온갖 파당에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모습들에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다. 그러니 어느 누가 교회의 모습을 보고 감동할 수 있겠는가?
짬뽕집 주인에게는 있는데 요즘 교회에는 없는 것이 감동이다. 일전에 강원도의 한 교회에 지역주민이 한 사람 찾아왔다. 그분은 교인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교회가 평소에 지역주민에게 베푸는 사랑을 주목해 보다가 자기도 그 교회에 헌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서 헌금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다. 아직도 감동이 남아 있는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많은 교회가 합리적인 일만 하고 감동을 주는 일은 하지 못한 채 세상에서 잊히고 있다.
원래 기독교는 감동의 종교다. 그들이 읽는 성경은 그 시작이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령에 감동을 받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세상을 감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유대주의식의 분열법으로는 결코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세상과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