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송충이-노천명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노천명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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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셈인지 나는 황충(黃蟲)이니 송충이니 하는 벌레들이 무섭다. 그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몸뚱어리를 꿈틀거리며 기어오는 것을 보면 나는 자지러진다.
호랑이보다도 이런 종류의 긴 짐승이 더 무섭다.
어려서 나는 빠알갛게 익은 꽈리를 따려고 꽈리 나무 속에 손을 넣다가 꽈리 나무에 붙은 황충이를 보고는 그만 기절해 넘어진 적이 있지만, 커서도 마찬가지로 벌레를 보면 오금을 못 쓰고 병신스럽게 군다.
하도 송충이를 무서워하니까 학교에서 장난꾸러기 동무들이 다 썩은 지푸라기 같은 것을 끊어다 등에다 놔 주며 ‘아유, 천명이 저기 송충이 붙었다.’ 하고 놀래 주면 교실 안에 송충이가 있을 리 만무인데 못난이는 어쨌든 자지러지게 놀라곤 했다.
봄철이 돼서 원족 갈 때가 되면 나도 남들처럼 좋기는 했으나 언제나 은근히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발표하시는 우리 반 가는 곳이 소나무들이 있는 곳이나 아닌가 해서다.
영락없이 봄의 원족지는 솔이 있는 곳으로 정해진다. 거기서 요행히 송충이를 안 만나고 유쾌히 잘 놀다 돌아와도 돌아오는 길엔 반드시 어떤 짓궂은 친구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나무를 꺾어서 놓아 주고, ‘저 송충이 보아.’ 라고 소리를 쳐 놀래주고야 마는 것이었다. 놀라고 나서는 나는 번번히 화가 났다.
아무리 탈겁(脫劫)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송충이가 한참 성할 때 소나무 밑을 지나가면 밤중이라도 나는 양산을 받고 겁이 나서 속히 지나가려고 애를 썼다.
일찌기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사는 곳에 봄철이면 송충이가 많아서 내가 거기를 갈 때면 무척 애를 쓰던 일이 있다.
전차를 몇 번씩 갈아타 가며 한참 늘어지게 가야 한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으나 전차를 내려서 솔밭 사이로 몇 분 걸어가야 하는 일이 실로 진땀이 났다.
도대체 이 송충이란 괴물에게 어떻게 해야만 탈겁이 될 것인지 미상불 걱정거리다.
꽃이 지기 전에 한번 들엘 나가자고 조카딸과 약속을 해놓고 실은 동구능(東九陵)엘 가고 싶으나 생각해 보니 지금쯤 큰 송충이는 없어도 새끼 송충이들이 나올 때인 것 같아서 그만 창경원이나 덕수궁 잔디밭에나 가서 놀다 올까 하는 것이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