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806)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5~7).
하나님만 바라라~~~~~본 시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쓴 비탄시 중의 하나다. 아들의 반역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상‘ 속에서 다윗은 구원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이 아니라 ‘반석'이요, ’구원‘이요,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잠잠히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기다리는 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잠잠히 바라다‘는 말은 단순한 침묵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조용히 기다리는 중에 상대방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스스로 인간적인 동기와 방법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자신의 전인격을 주께 의뢰하겠다는 다윗의 확고한 신앙의 표현을 나타낸다. 다윗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기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시니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포함한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이 절대시되고 더 나아가 우상시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신앙자세가 바로 ’하나님만 바라라‘는 다윗의 고백이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욕심이 개입된 소망은 일시적이요, 허망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소망은 영원하기에 죽음에도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은 안전한 피난처가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인생을 항해하다보면 폭풍우와 같은 환난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대비해 물질, 학벌, 인간관계 등을 잘 형성하여 자기들의 피난처를 만들어 둔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유동적이며 한시적인 것으로 진정하고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궁극적인 영원한 피난처는 하나님뿐이다. 우리의 구원이요, 소망이요,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라. 그 분이 책임져 주실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가장 안정을 찾고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듯이 영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중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난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 품을 떠나는 것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의 온갖 좋은 것만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크리스천들조차도 잠깐 있다가 사라질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 대한 욕심과 소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처럼 행동하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가치전도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내가 최고로 여기고 바라보던 것들을 내려놓고 영원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삶의 문제들을 해결받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영적인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우리의 삶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고 본받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가라고 하면 가는 지혜롭게 영적인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땅이 전부가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