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제가 한자를 익히는 방편으로 삼는 좀 단순/무식한 공부법입니다. 먼저 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공부라 생각하시지 말고 그냥 재미삼아 읽어가다보면 혀(舌)에 관한 한자어는 확실히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급 배정 3500자를 모두 이런식으로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때가 되어 글이 쌓이면 '수필처럼 읽는 한자사전'을 펴낼까 합니다만 세월이 그야말로 隙駒와 같은지라 제 평생에 이룰 수 있을 지...
(舌)
혀(舌)의 자원은 干(犯할 간)+口(입 구)로 입에 닿아 소리를 내거나' 맛을 구별하는 器官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한자의 造字原理인 六書중 두가지 이상의 뜻이 모여 글자가 되었다(舌=干+口)는 會意라는 說과 사물의 모양을 본떴다는 象形이라는 설이 각각 있으나 '상형' 쪽이 더 타당한 듯하다.
혀가 등장하는 成語는 참으로 다양하다. 우선
설건순초(舌乾脣焦)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혀가 마르고 입술이 탈 정도로 빨리 말한다는 뜻이다. 궁지에 몰려 매우 다급하고 초조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주로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 白日하에 뽀록(발각)이 나서 변명하는 기자회견할 때 써 먹음직한 성어다. 살아가면서 '설건순초'의 경우는 당하지 않는게 좋겠지.
설검순창(舌劍脣槍)은 참으로 섬짓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혀의 칼'과 '입술의 창'이란 뜻이다. 입으로 讒言과 讒訴하여 사람을 해치는 일을 일컫는다. 입으로 사람을 물어뜯고 씹어 돌리는 것이 칼과 창으로 사람을 해하는 것 못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요즈음처럼 인터넷을 통한 言路가 만연한 상황에서 우리는 수많은 '혀의 칼'과 '입술의 창'에 둘러 싸여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한다. 때로 우리의 혀와 입술도 언제든지 남을 해하는 칼과 창이 될 수 있음도 아울러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치 혀로 독설과 궤변을 속사포처럼 날려 상대방을 만신창이로 만들거나 결국에는 죽음으로 모는 경우를 우리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일상처럼 목격하고 전율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혀부터 굳어버리므로) 죽인 자는 환호 속에 우쭐거리며 더욱 더 칼과 창같은 혀와 입술을 갈고 벼리는데 열중한다. 칼과 창 끝에 치명적인 독을 묻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 알랴, 그런 자들은 결국 더 강력한 혀와 입술, 그리고 이빨로 무장한 자객에 의해 소리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설경(舌耕)은 학문을 호구(糊口: 입에 풀칠을 함)의 밑천으로 삼거나 글을 가르쳐 생계(生計)를 세움을 뜻한다. 小說을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에야 대학에 가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 모두 糊口之策인 직업을 잡기 위한 것이지만 예전에는 학문은 그 자체가 순수한 것이었다. 그래서 글을 팔거나 학문을 내세워 돈을 비는 행위를 선비의 치욕으로 알았다. 보잘 것 없는 학문적 성취를 밑천삼아 賣文이나 曲學阿世를 서슴치 않으면서 권력의 주변을 까치발로 기웃거리며 자리 하나 차지 하려고 안달이 난 천박한 무리들은 그리하여 侮蔑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못해 사회병리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태라 모두들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 나머지 수재들이 교육대학으로 몰리고 있어 교육대학의 인기와 수준이 한꺼번에 치솟았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2세들의 교육을 담당할 '선생님'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환영해 마지 않을 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들이 현실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하여 일찍이 '설경'에만 뜻을 두고 그 가능성의 날개를 스스로 접어버리는 모습은 웬지 씁쓸하기만 하다. 하기야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냐고 항변하면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지만서두...
예전에 교육대학(교대라고 불렀다)은 2년제라 인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비고사도 치르지 않아도 입학할 수 있었던 점을 상기하니 세태의 극심한 변화가 桑田碧海라는 말로도 감당할 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설경'을 무턱대고 나무랄 일 만은 아니다. 맹자가 人生三樂 중 하나에 '천하의 영재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을 거론 한 것은 그만큼 교육이라는 것이 중요하고도 보람있는 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師道에 입각하여 올바른 학문과 지식을 제대로 가르쳐 훌륭한 하나의 인격체로 길러 내는 일은 중요한만큼 칭송받을 일일 것이다. 다만 師道 자체가 이미 滅失되어버린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 세태이고 보면 교육은 그야말로 '설경'이 되어버려 호구의 밑천으로 전락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설망우검(舌芒于劍)이란 혀는 칼보다 더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준엄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흔히 쓰는 영어 격언'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와 같은 뜻이다. 세치 혀로 大軍을 물리친 사례는 역사속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거니와 그러나 혀도 혀 나름일 것이다. 논리정연하고 사리분별에 합당함은 물론 상대의 심금을 울려 마음속으로부터 항복을 받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말'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소위 정치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심심하면 내뱉는 공허한 궤변과 췌언은 칼은 커녕 나무젓가락보다 더 약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설상존(舌尙存)은 상존오설(尙存吾舌)로 "내 혀가 아직도 있다.'라는 뜻이다.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遊說家인 위(魏)나라 장의(張儀)에 얽힌 이야기에서 나온 성어이다.
가난했으나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장의는 권모 술수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수학했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 과는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귀곡자는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모사)로 그 성명과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상의 이치와 지식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 '귀곡자(鬼谷子)' 3권을 지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장의는 수업(修業)을 마치자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나라 재상 소양 (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사람들이 말하자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는 끝내 부인했다. 매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했어요? " 그러자 장의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 "그럼 됐소. 내가 공을 세울 수 있음이니 "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傷)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 고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은 부귀영화(富貴榮華)·생사여탈(生死與奪)을 결정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제자백가의 유세(遊說)는 '말의 성찬(盛饌)'에 지나지 않는다. 말과 떼 놓을래야 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 치 혀(三寸舌)다. 장의(張儀)는 세 치 혀로 일약출세(一躍 出世)를 할 수 있었지만, 사마천(司馬遷)은 혀를 잘못 놀려 궁형(宮刑)의 치욕(恥辱)을 맛보아야 했고, 한비자는 혀가 민첩(敏捷)하지 못해 사약을 받고 죽었다. 말은 듣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말을 잘못해 곤욕(困辱)을 당하는 운수가 구설수다. 주역(周易)에서 태괘(兌卦)는 구설(口舌)과 여자를 동시에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래도 수다스러운 것은 여자였던가 보다.하긴 요즘에는 수다스런 남자도 엄청많다. 특히 여자가 말이 많은 것은 옛날에는 禁勿로여겨 칠출(七出)(칠거지악)의 하나로 삼기도 했다. 진부하긴 하지만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란 말이 있으니 혀를 조심해서 놀려야 함에 남자라고 예외 일 수는 없다. 적어도 남자의 한 마디 말은 천금의 무게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뜻일 게다.
설유순종이불폐(舌柔順終以不弊)란 말은 혀는 부드러워 이보다 오래 견디다는 뜻으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보다 오래 보전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혀 때문에 세상에는 분란이 그치지 않고 사람들은 상처를 입히거나 받거나 하며 고통스럽고 후회스러운 시간을 살아간다.
혀(舌)에서 파생된 말 중 '홡을 지(舐)'가 있다. 말 그대로 혀로 무엇을 홡는다는 뜻이다.
지강급미(舐糠及米)라 했으니 겨를 다 홡고나면 끝내 쌀까지 다 먹어치운다는 말이다. 害가 점차로 미치는 것이나 국토를 떼어주기 시작하면 마침내 나라가 망함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침범, 역사교과서 왜곡, 이런 것들이 지강급미의 禍를 부르는 조짐은 아닌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지독지애(舐犢之愛)는 어미소가 송아지를 홡아주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제 자식을 깊이 사랑함을 겸손하게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홡아주는 정경은 참으로 평화롭고 따뜻하지 않을 수 없다.
지치득거(舐痔得車)란 남의 치질을 홡아주고 수레를 얻는다는 뜻이다. 천한 일로 큰 이득을 얻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성어다. '돈 벌 모퉁이가 죽을 모퉁이'라는 말이 있지만 남의 치질 아니라 더 한 것도 홡아주고 살아가야 할 절박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치질이라도 홡아줄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만 '일거리'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프랑스에 아첨꾼을 가리켜 '남의 구두를 혀로 홡아 닦아준다.'는 속담이 있는데 남의 치질에 비하면 구두쯤은 아예 상대가 되지 못한다. 역시 동양사람들이 독하긴 독한 모양이다.
혀를 조심하고 깨끗이 해야겠다. 양치질할 때 이만 닦지 말고 혀도 꼼꼼히 닦아야겠다. 본의아니게라도 내 혀가 '생각없는 칼'이 되어 남을 해치지는 않았는지 곰곰히 自省해 볼일이다.
첫댓글 정말 좋은 말씀이세요^^ 모닝스타님 공부방법이 제 스타일과 비슷한 면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