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나 연대의식은 무슨 거창한 세계관이나 정치노선의 일치 따위로 인해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믿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마찬가지로 만화·당구·바둑을 좋아하고, ‘애수의 소야곡’ ‘사랑밖에 난 몰라’ ‘망향’ ‘Five Hundred Miles’ 등 대중가요·가곡·팝송을 가리지 않고 즐겨 부르며, 고향에 정 많은 당숙모가 계신다면 그와 나는 직접 대면하기도 전에 지기가 된 듯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58·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제10회 고바우만화상’을 받은 박 화백을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뒤 그에 관한 자료를 읽어내리다가 이 같은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박재동을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만나 고바우만화상 수상에 대한 소회와 만화에 얽힌 얘기를 들어보았다. 고바우만화상은 신문 네 컷 만화 ‘고바우 영감’을 그린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한국만화가협회 고문)의 작가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그동안 이홍우·이현세·박수동·김우영·허영만·이두호·신문수 화백 등이 받았다.
“그날 밤 찰리 쉰은 나를 죽이려 했다”
겨울을 기다리는 패션 소품
이응경 진실공방 점입가경
‘만화의 사회적 역할을 넓힌’ 공로로 제10회 고바우만화상을 받은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우리 시사만화의 현실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권력이 대중을 억압할수록 시사만화는 더욱 치열해지고 강력해진다”고 말했다. | 김세구 선임기자 k39@kyunghyang.com
박재동은 “나보다 더 일찍 만화에 투신해서 만화 발전에 공헌한 동료·후배들이 많은데 이 상을 받을 줄 정말 몰랐다”며 “이것은 결코 입에 발린 겸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30대 중반이던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시사만화를 시작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만화에 전력투구한 동료들을 제치고 수상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만화상의 상금은 1000만원이다. 이 적지 않은 돈의 용처에 대해 박재동은 “우선은 우리 만화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쓰겠다”며 “구체적인 사항은 동료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액을 만화계를 위해 쓸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아니다”라며 “그동안 감점만 당해 왔는데 이번에는 아내(배우 김선화·53)에게도 점수를 좀 따겠다”고 덧붙였다.
박재동의 수상사유는 ‘한국 시사만평의 새 장을 열었고 만화의 사회적 역할을 넓혀 만화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으로 인해 ‘역할이 넓어지고 위상이 높아진’ 시사만화의 최근 상황에 대해 그는 적잖게 걱정하고 있다. 우선 시사만화가 “외적으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만화를 싣지 않는 신문이 늘어나고 있고, 시사만화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단된다고 해도 해당 신문사가 그 후속작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재동은 “시사만화의 활동무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로서는 서운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비주얼이 넘쳐나서 “비주얼에 대한 갈증이 옛날 같지 않다”는 점도 신문시사만화 위축의 또 다른 요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그러나 시선을 신문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터넷이나 각종 전시회 등으로 넓혀 시사만화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전보다 더욱 활력이 넘치고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사만화가들이 힘을 합쳐 적극 대응하고 전시회를 열면서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박재동은 “우리나라 시사만화가들의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인하다”며 “시사만화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작가들도 놀라운 시선으로 우리 작가들을 다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만화 100주년대회(그는 100주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행사기간 도중 열린 ‘세계시사만화대회’에서도 구미의 만화가들은 한국 시사만화의 독특한 문화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박재동은 “우리 만화가들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대의식은 민주화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작가들의 이러한 열정과 에너지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시사만화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신문시사만화의 1세대 격인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도 초기에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소재로 하는 ‘생활만화’였다고 한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의 전횡이 갈수록 심해지고, 권력비판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증가하다보니 이들의 생활만화도 자연스레 ‘정치만화’가 됐다는 것이다. 박재동은 “권력이 대중을 억압하면 할수록 만화가들의 작품은 그만큼 더 치열하고 강력해진다”고 말했다.
8년 동안 그리던 ‘한겨레 만평’을 그만둔 뒤 박재동은 애니메이션 제작과 대학강의 등에 몰두하면서 불가피하게 시사만화와는 다소 거리를 두게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민주주의 역주행에 대해서도 때때로 ‘확 긁어버릴까’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량 있는 후배만화가들이 중심을 잘 잡고 활동하고 있는 데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옛날처럼 열심히 나서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필치가 때때로 불을 뿜을 때가 있다. 문수 스님이 4대강 반대를 외치며 소신공양했을 때 가부좌를 튼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스님 뒤편에 환하고 따뜻한 후광이 서려 있는 그림을 그렸다. 한때 물러났던 옛 비리재단이 다시 상지대를 삼키기 위해 나타났을 때는 ‘상지오누이’와 ‘상지괴담’을 그렸다. 남매를 잡아먹기 위해 어머니로 변장한 호랑이와, ‘없어진 줄 알았지’라며 음흉한 웃음을 머금은 채 출몰하는 괴물의 모습을 통해 상지대 사태를 풍자했던 것이다.
박재동은 1952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범서읍 서사리에서 태어났다. 서사리(西沙里)란 지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곳에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척과천 모래톱이 펼쳐져 있는데 사람들은 ‘서사리’보다는 ‘모랫골’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그는 그림을 그린답시고 송곳으로 장판을 모조리 뚫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단지 “잘 그렸다”는 짧은 ‘심사평’만을 내놓았다. 이것은 그의 그림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였다. 박재동은 “어린아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발현한다”면서 “만약 그때 혼이 났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동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그의 집은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단칸방에 모셔놓고 어머니는 월세집 1층을 빌려 만화가게를 열었다. 당시 만화 앞에는 반드시 ‘불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어린이날 같은 때는 아이들의 ‘건전한 정서 함양’을 위해 ‘불량만화 불태우기’와 같은 관제행사가 벌어졌다. 학교에서 ‘만화방 가지 맙시다’ 등의 포스터를 그리고 칭찬받고 온 날 어린 박재동은 과거시험에서 조부를 욕하는 글을 지은 김삿갓의 심정이 들기도 했다.
박재동은 ‘불량문화’에 얽힌 박기정 화백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렸을 적 그가 즐겨 읽었던 만화 등의 저자인 박 화백은 ‘만화가 아이들 버린다’는 주위의 비난에 위축된 나머지 한때 붓을 꺾었다고 한다. 뒷날 박 화백은 경영난에 시달렸던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잡지에 기고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된다. 그 사장은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다가 훈이(박 화백 만화의 주인공)를 생각하며 그때마다 일어섰다’고 썼다. 어느 모임에서 박 화백은 박재동에게 “내가 나쁜 짓(‘불량만화’를 그린 것)만 한 줄 알았더니 내 만화를 읽고 힘과 용기를 얻은 사람도 있더라”고 말했고, 이에 박재동은 설움이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남들이 뭐라고 하든 “멋진 상상과 그림이 가득한” 만화책을 매일 마음껏 볼 수 있었던 그때가 어린 박재동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산호, 박기정, 박기당, 김종래, 임창 등 당시 그의 예술적 감수성을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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