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모두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샌 ‘가족’ 의미가 예전에 비해 많이 쇠퇴한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고 가족처럼 아껴주길
바랍니다.”
지역 원로 화가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을까? 황영성(76) 화백이 오는 5월11일까지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
‘가족이야기’를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황 화백이 지난 2005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로 초대전을 가진 이후 약 10년 만에
지역에서 연 개인전이다.
최근 2∼3년 사이 제작한 신작 위주로 전시되며 2005년도 작품도 함께 출품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넓어지는 가족에 대한 의미를 볼 수 있다.
일찍이 황 화백은 ‘가족’을 소재로 오랜 세월 작품활동을 해왔다. 가족은 예술세계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지난 19일 만난 황 화백은 “내 작품은 어렸을 적 무등산 증심사에서 본 500나한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며 “서로 얼굴도 다르고 성장 과정, 득도 과정도 제각기지만 결국 똑같은 자격으로 부처님 곁에 앉아있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가족
이미지와 딱 맞았다”고 말했다.
500나한전에서 영향을 받아서일까. 황 화백 작품은 노랑, 빨강, 파랑 등 밝은 채색이 특징이다.
또 최근작에서 주로 표현하는 정사각형 모자이크 기법도 여기서 비롯됐다. 똑같은 크기 네모에 그가 만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작품에서 다루는 가족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었을 적 가족에 대한 인식은 ‘그리움’이었어요. 6·25전쟁 때 부모님을 떠나보냈던 기억을 표현했죠. 어린
시절 골목길 담 너머 창문으로 보이는 어느 가족 모습을 한없이 그리워했어요. 그래서 초기 작품에는 내가 살았던 초가집, 그 속에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았죠.”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동그란 눈에 우뚝 솟은 뿔이 귀여운 소도 황 화백에게는 가족이었다. 예전에는 소를
팔아 자식들을 가르치고 결혼을 시키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1980년대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1990년대부터는 전세계,
우주를 가족 범위에 포함시켰다.
“요즘 제 가족이야기는 우주가족이에요. 유럽, 아프리카, 인도를 돌아보고 1990년에는
알라스카에서 멕시코, 페루, 몽골리안 루트를 일년에 걸쳐 긴 여행을 했어요. 그곳에서 만난 한명한명이 한 가족이란 것을 인식했죠. 어느 순간
사람들 뿐 아니라 나무, 돌, 물, 공기, 멀리는 별과 달, 문자까지도 가족처럼 귀중한 것이라고 깨달았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교녀시-좌사’ 작품도 출품했다. 중국 서진(西晉)시대 좌사가 남긴 한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아버지
입장에서 사랑스러운 어린딸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생히 전해진다.
또 ‘산유화-김소월’도 만날 수 있다. 정사각형 한칸에 들어가는
한글을 가족 이미지로 의인화한 점이 재미있다.
올해 제작한 작품들은 모자이크 형식에서 탈피한 점이 특징이다. ‘봄날’,
‘옛이야기’, ‘소 있는 마을’ 등은 호랑이, 강아지, 학 등 정겨운 소재를 자유스럽게 배치했다.
그는 “예술가는 하나의
독립국가라고 생각한다”며 “선배·후배 가릴 것 없이 똑같이 경쟁하며 좋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남미 아마존 숲이 불타는 광경, 캐나다 해변에 떠오르는 기름덩어리에도 가슴 아파해요. 그리고 중동지역 전쟁과 피난민 이야기에 어쩔 줄을
몰라하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과 평화와 존중만이 새시대에 가득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