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절 사람의 젊음과 힘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던’(삼상 16:12) 소년 다윗이 몸이 시려 견디기 어려운 노인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장수가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게 되었고, 주변국을 정복하고 온 나라를 다스리던 통치자가 신하들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을 피할 수 없기에 그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전 12:1).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다’(전 12:13) 맞이하는 인생의 황혼기라면, 절망과 허무의 암흑기가 아니라 소망과 의미로 가득한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5-7절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아도니야는 생존한 왕자 중 가장 연장자였고, 압살롬처럼 용모가 수려했으며, 요압과 아비아달을 포섭할 정도로 정치적인 수완도 좋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 왕이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이 선위(禪位)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부왕의 기력이 쇠약해진 때를 기회 삼아 스스로 왕이 될 것을 공언하고, 기병과 호위병을 거느려 왕 행세를 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하고 교만했습니다.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삼상 16:7)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재능이나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과 충성과 거룩함입니다.
7-10절 정세를 읽고 시류에 영합하기보다 무엇이 옳은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요압과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했습니다. 자격과 자질 면에서 아도니야가 왕위를 이을 적임자이고, 다윗의 기력이 쇠약해진 때가 새 왕이 즉위할 적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세를 정확히 읽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읽지 못한 결정이었고, 왕자인 아도니야에게 충성하면서 도리어 왕인 다윗을 무시한 처사였습니다. 현실과 상황만 봐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첫댓글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ᆢ
아버지께 순종하고 따르고 살아간다 하면서도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치중했습니다 남들이 알아 봐주기를 바랬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스스로를 높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모든 행위나 사역들을 내가 잘보이기 위해서 했던 일이었슴을 고백하고 아버지께 회개합니다 스스로 높아진 교만을 다스려주시는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성령님과 호흡하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도와주옵소서
나의 약함을 너무나도 잘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