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성전과 기도응답
대하 7:1~18
요즘 새벽기도회에 성경통독을 하면서 지난주간에 역대하를 마무리하고 이번 주 부터는 에스라 성경을 통독하고 있습니다. 요즘 다들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성경 읽기가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에 하나님 앞에서 직접 성경을 통독하고, 매일 성경을 두, 세장 읽으면서 은혜받고 있습니다. 역대하 5장을 보면,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 왕의 숙원이었던 성전을 마침내 완공하고 언약궤를 지성소로 모셔온 후에, 나팔 부는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레위인들이 일제히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은 선하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그때 “주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을 가득 채워서, 구름이 자욱하였으므로, 제사장들은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5:14) 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입니까? 이렇게 성전을 봉헌한 솔로몬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이때 그가 한 기도 내용입니다. 6:18-19,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겨우 성전이란 건물에 모셔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아무리 예배당을 수백억을 들여 멋들어지게 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그 안에 가둬둘 수 있겠습니까? 6:19,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님의 종이 주님 앞에서 부르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솔로몬 왕은 이어 낮이나 밤이나 성전을 살펴 주셔서 자신이나 백성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용서하시고 응답해주시고 구원해주시길 간구합니다.
1. 성전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이어지는 대하 7:1ff.는 솔로몬 왕이 그 기도를 다 마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7:1-3,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라 버렸고, 주님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2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성전에 가득 찼으므로, 제사장들도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3 이렇게 불이 내리는 것과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찬 것을 보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돌을 깎아 포장한 광장에 엎드려 경배하며, 주님께 감사하여 이르기를 ‘주님은 선하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들을 불살라 버렸고 또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고 백성들은 “주님은 선하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하며 찬양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충만함 모습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솔로몬 왕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다. 셀 수도 없는 소와 양을 잡아 바치며 하나님의 성전을 봉헌했다. 이 봉헌식을 일곱째 달 초막절 절기에 했는데, 평소에는 초막절 절기는 한 주간 지키는 거지만, 이때는 성전 봉헌식을 한 주간하고 이어서 초막절 절기를 한 주간 더 지켰습니다. 알다시피, 초막절은 광야 40년간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을 자녀들과 함께 나뭇가지로 천막을 쳐놓고 지내면서 그 은혜를 회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녀들에게는 간증하며 교훈하는 절기다. 그렇게 절기를 마치고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v12, “내가 이제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가 제사를 받는 성전으로 삼았다.”하시며 이어서 말씀해주셨다.
2.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
솔로몬 왕이 말했듯이, 하나님을 성전이란 건물 안에 모실 수 있습니까?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시기에 부족하다면, 그 하나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신 일을 보면 그분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으로 가늠할 수 없는 크신 분이시다. 신이십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그분은 천지만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주는 얼마나 클까요? 허블망원경의 발명으로 우주의 크기를 어느 정도 측량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얼마전 미국우주항공국 나사에서 100억달러(약13조원) 들어서 개발한 우주망원경인, 더 멀리 정확히 관측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을 발사 했습니다. 더 자세한 우주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지름은 12,756km입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의 지름의 크기는 150억 km입니다. 그런데 태양계는 은하계 일부입니다. 은하계 직경이 큰 것은 1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돕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입니다. 10억 광년이면 1초에 하나씩 세어서 10억 세려면 쉬지 않고 31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하계가 허블 망원경의 관찰로 수십억 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를 하나님이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요! 또 그가 만드신 우주에 비하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요? 벌레만도 못하고,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더 못하고, 먼지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만든 성전이란 건물 안에 그 크신 하나님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당 크기에 하나님을 가둘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람의 머리(지식) 크기에 하나님을 가둘 수 있겠습까? 과학으로 하나님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내가 생각하는 지적인 한계를 가지고 과학으로 하나님을 가둡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당 크기와 출석 교인 숫자에 하나님을 가둬버립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훨씬 크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3. 솔로몬의 성전이 주는 의미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곳을 택하여 내가 제사를 받는 성전으로 삼았다’고 하는 그 내용은 무슨 의미인가요?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늘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성전에 임재하여 인간을 만나시겠다는 겁니다. 신약시대에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전 3:16-17,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기에 거룩하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술 담배나 마약과 악한 습관을 끊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이렇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을 때, 성령이 그 속에 들어와 내주하시며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가 성전이 되고,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 천국이 됩니다. 그런 성도가 모인 가정과 목장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도 하신 것입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그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기도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 나라를 체험한다.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실현되는 현장이 교회입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거나, 기도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면 성전을 봉헌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겸손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성전을 봉헌하였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여기의 ‘택하고’는 원어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한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눈과 마음을 성전에 두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성전 중심의 생활을 강조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솔로몬의 성전을 택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이미 택하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택하신 이 성전을 어떻게 세우라고 말씀하십니까?
4. 성전은 예배하는 곳
본문 12절입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내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여기의 ‘제사하는’은 원어로 ‘자바흐’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예배드릴 곳으로 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생이 달라집니다. 환희가 넘칩니다. 부디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에서 예배가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5. 성전은 기도하는 곳
본문 15절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여기의 ‘기도에’는 원어로 ‘리트필라트’인데 ‘탄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청원하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기도를 들어달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진솔하게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17절에서 교회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든 백성들에게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세상적인 것으로 만연한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성전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6. 성전은 응답받는 곳
본문 18절입니다.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 여기의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원어로 ‘익카레트’인데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 이루어지다’라는 의미입니다. 성전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응답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응답의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시고 눈과 마음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이유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있는 곳이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순종하기만 하면 응답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거대한 고목 나무처럼 커졌습니다. 예산도 많고 프로그램도 화려해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 가식적인 찬양과 할 수 없어 하는 섬김 투성이뿐입니다. 성전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교회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가 택한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예배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으로 세워가야 합니다. 기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성전으로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이 회복되어 응답을 체험하는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으로 세워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