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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곳 스크랩 흔적없이 사라진 천안삼거리 삼남대로
큰 바위 얼굴 추천 0 조회 543 18.05.28 14: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안 삼거리 - 충남 천안시 삼룡동
 
천안 삼거리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기 힘든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천안 삼거리라는 표식도 없을뿐더러
네비게이션을 사용한다 해도 천안 삼거리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천안에 거주하고 있는 천안 시민들도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 천안 삼거리 옛길의 위치가 어디쯤 되죠 ? "
천안을 여행온 여행객이 천안역 광장에서 행인에게 물어 봤다는 말입니다
 
" 천안 삼거리 공원 앞으로 나 있는 길이 천안 삼거리 옛길 입니다 "
여행객은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또 다른 행인을 붙들고 물어 봤답니다  
 
" 삼거리공원 아래 새로 뚫린 8차선 대로의 교차로가 옛 천안 삼거리로 알고 있습니다 "
이 대답도 여행객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네요. 그래서 또 다른 행인을 붙들고 물어 봤답니다
 
" 천안 삼거리 옛길의 위치가 어디쯤 되죠 ? "
" 글세요..."
 
천안에 거주하고 있는 천안 시민들의 대답도 이쯤되면 외지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천안 삼거리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겠죠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도로 표지판 끝으로 새로 뚫린 8차선 대로가 있는데
그곳을 천안 삼거리 옛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삼거리공원을 천안 삼거리 옛길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천안에는 최근들어 외지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70~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옛부터 삼남대로 였던 천안 삼거리 옛길
 
저 신호등이 있는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경상도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전라도 길이였죠
하지만 전라도 방향으로 가던 길은 말뚝이 쳐져 있는채로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곳에서 표지판이 보이는 방향으로 약 500m 정도만 가면 천안 삼거리 공원이 나옵니다
 
천안 삼거리는 조선초부터 우리나라 삼남대로의 분기점인 동시에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려지는 가장 큰 삼거리였죠
한양에서 수원, 평택을 거쳐 저 위에 보이는 삼거리에 이르면 길은 저렇게 세갈래로 갈려집니다
 
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병천 아우내장터가 나오고 그 장터에서 오창을 지나면 청주가 나오죠
조선시대때는 청주에서 문경새재를 지나 안동, 영주로 가기도 하고
보은을 지나 상주, 김천, 대구, 경주로 해서 부산으로 들어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신호등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공주를 거쳐 논산, 전주, 광주로 해서 여수로 가기도 하고
목포쪽으로도 갔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삼거리 초등학교 건물로 막혀 있는 상태죠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던 여행객들이 북적거리며 번성했던 천안 삼거리의 규모는
지금 현재 보잘것없이 작아졌지만 그런 유서깊은 곳이었기에 그 유명한 능수버들 흥타령에 대한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천안도 삼거리이 ~ 능수야 버들이이 ~ 흐으으으 흐응 ~
제멋에 겨워서어 ~ 흐으으으 흐응 ~ 축 늘어 졌구나 ~ 하아 ~
 
세상 마안사를 ~ 생각 하면은 ~ 흐으으으 흐응 ~
인생의 영화가아 ~ 꿈이로구나아아아아  ~
 
이렇게 나가는 천안 삼거리 흥타령은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아마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겁니다
그러면 천안시 자료실에서 잠시 빌려온 천안 삼거리 옛 사진을 여기 하나 올려 보겠습니다
 
천안시 자료실에 빌려온 천안 삼거리 옛길 - 1960년대 초반에 촬영한 사진이라고 함 
 
저 위에 사진들하고 비교가 되죠
주변 도로와 건물들은 모두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변해 버렸지만 산등성이 모습은 옛날 그대로 입니다
 
마틴공원으로 둔갑된 천안 삼거리 옛길
 
지금 현재 천안 삼거리 옛길 전라도 방향은 한 복판에 말뚝이 쳐져 있고
그 뒤로는 전몰미군 추모비와 삼거리 초등학교가 세워져 있습니다
전몰미군 추모비 앞으로는 마틴공원(Martin Park)이고 새겨진 자연석이 자리잡았고요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흥타령으로 유명했던 천안 삼거리 정 중앙에...
그것도 조선초부터 삼남대로였던 천안 삼거리 옛길에...
마틴공원(Martin Park)이라고 새겨진 자연석을 가장 앞 부분에 세워 놓은 것이죠
 
마틴공원으로 둔갑된 천안 삼거리 옛길 
 
이렇게 천안 삼거리 옛길의 정 중앙에는 마틴공원(Martin Park)라고 새겨진 자연석이 자리잡고 있고
그 뒤로 천안 삼거리라고 새겨진 자연석이 있습니다
 
아직 천안삼거리 옛길의 흔적은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렇게 마틴공원(Martin Park)이란 이름의
자연석을 가장 앞부분에 세워 놓았기 때문에 처음오는 외지인들에게는 더욱더 알아보기 힘들겁니다

 

 마틴공원 이라고 새겨진 자연석 뒤에 숨겨져 있는 천안 삼거리 표지석

 
전몰미군 추모탑과 삼거리 초등학교
 
저 추모탑은 6.25 한국전쟁 당시 천안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추모비고 그 뒤에 세워져 있는
건물은 삼거리 초등학교라고 하는 건물이죠
 
조선초부터 경상도길과 전라도길로 갈려졌다는 전라도 방향의 옛길은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신 그곳엔 삼거리 초등학교와 전몰미군 추모탑이 들어서 있죠
 
옛부터 경상도 전라도지방에서 한양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유서깊은곳 정 중앙에
어떻게 저런 추모탑과 공원을 조성해 놓았을까...싶은 생각이 드네요
 
지금 현재 저 삼거리 초등학교 뒤로는 천안 민속박물관이 08년 9월 중순에 완공 되었는데
천안박물관 앞으로 저런 받들어 총 ! 자세의 추모탑은 아무래도 민속박물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듯한 느낌입니다
 
한국전에 참전하여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산화해간 미군들의 공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장소를 좀 더 신중하게 선택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전물미군 추모탑에는 이런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는 그냥 얻는게 아니다
천안시민들은 한국전 당시
천안전투에서 산화한
미합중국의 아들 딸들에게
깊은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은 잊혀지지 않을것입니다 ! !
대한민국 천안
1950년 7월 8일
 
그러니까 저 추모탑은 6.25 한국전쟁당시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이곳 천안전투에서 산화해간 미군들을 추모하는 추모비인것입니다
 
천안 삼거리, 마틴공원에는 이런 전적비도 세워져 있었죠
 
1950년 한국전쟁
7.8 천안 전투 전황
 
1950년 7월 6일 경기도 오산전투에서 퇴각한 미군 스미스 특공대에 이어 전세가 불리하여 천안
까지 후퇴한 미 육군 제24사단 34연대는 부대동 일대에서 박격포와 소총 병력으로 북괴군 제4
사단, 6사단, 105기갑사단과 접전하게 되었다. 미군 동향을 파악한 북한군은 1개 중대의 따발총
부대로 부대동과 신부동전선의 좌, 우 및 후방으로 포위 공격하였고 아산 음봉을 거쳐 백석동에
도착한 소련제 3륜 오토바이 부대와 입장에서 진출한 북한군이 합세하여 미군과 시가전을 벌였
 
7월 7일 제 34연대가 지연 방어 작전을 펴는 동안 사단장 딘은 34연대장으로 로버트R 마틴 대령
을 발령하였고 7월 8일 마틴대령이 구성동 광산 동네에서 국도를 따라 내려오는 북한 탱크에 2.
36인치 바주카포를 발사하는 순간 북한 탱크에서도 8.5밀리포로 응사하여 마틴 대령은 현장에서
전사하고 북한 탱크도 파괴되었다
 
지휘관의 죽음과 막대한 손실로 지휘 체계가 흔들린 미군은 밤 8시부터 10시까지 도리티 고개에
있던 포병의 엄호 포격으로 후퇴하였고 7월 8일 천안은 마침내 북한군에 위해 점령되었다
 
미군은 천안지구 전투에서 마틴 대령을 포함해서 98명이 전사 및 실종되었다
 
결국 천안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곳 천안 삼거리 옛길에 전몰미군 추모탑과
마틴공원(Martin Park)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자연석을 세워 놓은것입니다
 
마틴공원(Martin Park)과 삼거리 초등학교 뒷쪽에 건립된 천안 박물관 - 08년 9월 중순 개관
 
마틴공원(Martin Park)과 삼거리 초등학교 뒷쪽에 건립된 천안 박물관 - 08년 9월 중순 개관
 
마틴공원(Martin Park)과 삼거리 초등학교 뒷쪽에 건립된 천안 박물관 - 충남 천안시 삼룡동
 
저 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유적물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물까지 다양하게 전시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유적물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 시켜 드리기로 하고
일단 이 박물관 주변을 한 번 돌아 보겠습니다
 
천안 박물관 안내문판
 
관람안내
관람시간 - 하절기(3월~10월) 09 : 00 ~ 18 : 00, 하절기 (11월~2월) 09 : 00 ~ 17 : 00
정기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 추석 당일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관람료 - 무료
 
천안 삼거리 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기와집 - 충남 천안시 삼룡동
 
천안 삼거리 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초가집
 
천안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박현수와 능소의 조형물
 
저 조형물은 화강석과 스테인레스로 된 조형물로서 장원급제한 전라도 선비 박현수가
임지로 내려가다 이곳 삼거리 주막의 능소와 상봉하는 순간을 재현한 조형물입니다
 
앞에 지켜보는 사람은 능소의 아버지 유봉서인데 흥타령이 막 시작 되려는
찰라의 극적인 모습을 암행어사의 어사화와 함께 조형으로 표현한 작품이죠
 
천안 삼거리 옛 주막집을 이야기 하자면 빼놓을수 없는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이곳 천안
삼거리 주막집에서 어쩔수 없이 기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능소" 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
이야기입니다
 
"능소"가 천안 삼거리의 어느 주막에서 기생이 되었는지, 또 어린 능소를 천안 삼거리 주막집에
맡겨놓고 전쟁터로 나간 아버지 유봉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안 삼거리 주막집에 얽힌 "능소"의 사랑 이야기만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오늘
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능소의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
까지 흠뻑 적셔놓고 말죠
 
옛날...그것도 아주 먼 옛날...
먼 옛날이라고 하면 언제쯤이라고 이야기 해야 하나 ?
 
그러니까 능소의 아버지 유봉서가 왜적을 물리치라는 어명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 가던중
이곳 천안 삼거리 주막에 어린딸 능소를 맡겨 놓았다고 하니까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400년전쯤인 조선 선조때의 이야기라고 하는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을듯 싶네요
 
그때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박현수라는 선비를 이곳 천안 삼거리 주막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긴데 이 이야기를 다 하자면 스토리가 무척 길어지기 때문에
오늘은 예고편만 보여 드리고 본 편은 다음에 상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
 
08년 9월 중순에 개관된 천안 삼거리 박물관 - 충남 천안시 삼룡동
 
마틴공원이라고 새겨진 그 뒷쪽으로는 이렇게 천안 삼거리 민속 박물관이 개관 되었지만
삼거리 초등학교와 마틴공원 추모탑에 위하여 길이 끊겨진 상태입니다
때문에 경상도와 전라도 길이 갈려졌다는 삼거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위에서 보시다시피 전라도길 일부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죠
 
경상도 길과 전라도 길이 갈려졌다는 그 지점에서 부터 여까지 길이 쭈욱 ~ 이어져 있었다면
현장감과 아울러 더욱 박진감 넘치는 멋드러진 삼거리 박물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장면들 입니다
 
천안 삼거리 박물관 앞으로 나 있는 전라도 길
 
중간지점에서 길이 끊어진 천안 삼거리 전라도 길
 
전라도에서 한양 방향으로 나 있는 천안 삼거리 옛길
 
전라도에서 한양 방향으로 나 있는 천안 삼거리 옛길
 
저 위에 있는 표지판은 바로 앞에 삼거리 초등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있었던 표지판으로서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표지판이 되었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던 천안 삼거리 옛길 - 길이 끊어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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