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2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주말 같은 황금의 금요일 새 날 아침을 열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사랑의 교제가 있는 성도들이 서로 관용으로 용납하고 교제함에 있어 강압적이거나 권위적으로가 아닌 긍휼과 섬김의 자세로 본이 되어 주어진 가정과 일터와 직장과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 된 무대 위에 멋진 주연자로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야고보서 2장1- 9절 }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 제 목 ◑◑◑◑
◗◗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
◑◑◑ 본문 이해와 요약 ◑◑◑
◗ 2장에서는 야고보 사도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와 빈부 격차 등의 이유로 성도 간에 차별하는 악습을 책망하면서, 서로가 사랑으로 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 성도들이 사람의 외모를 보고 차별 대우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며, 이러한 행위가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벗어남을 강조합니다.
-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끼리 차별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을 소유한 형제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약속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이 형제 차별을 금하고 형제 사랑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 때문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서로 구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 또한 믿음이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 외형적인 믿음이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말하므로 이러한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질책합니다.
- 사람이 아무리 입술로 신앙을 고백한다 하더라도 그 신앙이 사랑의 행위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과 같고 영혼 없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 이제 2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9절에서 인간관계에서 성도들은 차별 대우를 금하고 있습니다.
- 한편 10-13절에서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 또한 14-18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19-26절에서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시며, 그리고 믿음과 행함의 상관관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성도의 사전에 차별대우란 없어야 합니다.
- 한편 2-3절에서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려면 교회 안의 차별부터 없애야 합니다.
- 또한 4절에서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결정은 악한 죄일 뿐입니다.
- 그리고 6절에서 가난한 자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없습니다.
- 한편 6-7절에서 부자라고 무조건 우대하는 것은 복음의 진보를 막는 것입니다.
- 그리고 9절에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자는 죄를 짓는 자입니다.
◗ 결론적으로 야고보 사도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일은 무의식중에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악행입니다.
- 신앙 공동체는 한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 특히 성도의 모임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으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 구약의 선조들이 믿음의 위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행위로써 증명했기 때문이므로 참된 믿음은 진리에 대한 실천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의 법을 좇아 사랑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묵상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세상은 빈부로 차별하나 하나님은 믿음의 빈부를 보신다.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부자라고 무조건 우대하는 것은 복음의 진보를 막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하지 않고 그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아 변하게 해야 말씀을 받았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써 우리에게서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이 말이라 했습니다. 말의 내용과 사용하는 단어와 억양과 말하는 횟수까지도 변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에게서 또 변하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 신앙 공동체는 성도들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 특히 부자인가 가난한 사람인가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이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 들게 하는 큰 문제의 하나가 바로 차별의 문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 그리고 야고보는 더 나아가 오늘 본문 5절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지를 강조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 삼으셨는데, 어떻게 교회 안에서 그들을 차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히 6-7절을 살펴보면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 부자들의 일반적인 행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선 6절에서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갔다”라고 했는데, 이는 부자들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채무자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삼아버리는 등 여러 세속적인 압제를 가한 일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 그리고 7절의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했다.”라는 것은 종교적인 핍박과 탄압 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 따라서 6-7절 말씀을 종합하면 부자들은 오히려 너희들을 탄압하고 하나님의 영광마저 짓밟았는데, 너희는 어째서 그러한 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선대하느냐는 책망이 담긴 말씀인 것입니다.
- 물론 이 권면을 이해할 때 오해하지 말 것은 앞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는 무조건 선하고 부자들은 모두 악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 성경에는 보아스(룻 2장1절)나 삭개오(눅 19장2절), 고넬료(행 10장1-2절)처럼 재물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본 절을 비롯한 성경 말씀들을 평면적으로만 보면서 무조건 부자는 악하다는 결론과 함께 그들을 원수처럼 대하는 일종의 역차별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물론 교회사나 선교역사를 볼 때 가난한 자들보다는 부자들 가운데 압제와 착취를 하고 복음을 훼방했던 자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 이는 아마 부하고 높아지면 그 마음 또한 교만해지기 쉬운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신명기 8장12-14절에서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던 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왕이나 귀족과 같은 부한 자들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보기를 들라면 아마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되기가 무섭게 그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화로에 던져 넣었던 여호야김과 같은 자가 될 것입니다(예레미야 36장20-26절).
- 그리고 신약 시대에도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당시 대제사장이나 분봉 왕, 총독과 같은 자들이었고,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를 앞서서 방해했던 자들 역시 데메드리오와 같은 부자였으며, 이후 로마 시대에도 교회를 핍박했던 자들은 대개 황제들이었습니다.
- 사도행전 16장19절에서 “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라고 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19장 24절에서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 구약에서 역대하 12장1절에서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오늘날에도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들이 복음을 더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성도들은 물론 심지어 목회자나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들을 더 가까이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 이는 아마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들이 복음의 진보에 더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아무리 부자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그 지갑이 열리는 법이며,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은 불의의 삯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절대 기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 그렇기에 부자라고 무조건 가까이하고 우대하려는 것은 오히려 복음의 진보에 장애가 될 뿐입니다.
- 마태복음 19장 24절에서“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우리의 교회는 부자와 권력자에게 존중하고 가난하고 약한자를 차별하는 경향은 없는지? 나는 솔직하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오늘 야고보가 강조하는 내용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가 어떤 자세로 성도의 교제를 이루어 나가 길 원하시는지? 오늘 성령님은 나에게 어떻게 원만한 교우관계를 섬겨가길 원하시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부자라고 무조건 우대하는 것은 복음의 진보를 막는 것입니다.
- 세상은 돈과 권력의 빈부로 차별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믿음의 크고 작음을 논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빈부로 차별하나 하나님은 믿음의 빈부를 보십니다.
❥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기 원한다면 사람의 권력과 물질보다는 마음과 믿음 중심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며,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돈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웃을 섬기며 겸손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