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이 추천하는 맛집
노병철
지역 맛집을 인터넷에 찾아보면 ‘지역민이 추천하는 맛집’이란 식당이 나온다. 일부러 광고하기 위해 인터넷에 띄운 그런 의도된 맛 집 소개와는 달리 실재 지역민만이 아는 제대로 된 ‘맛집’이란 뜻이 내포되어 사람을 유혹하게 된다. 사실 그런 식당을 가봤으나 노포라는 미명 아래 위생적인 면에서는 다소 불결한 곳이 있었고, 맛 또한 그다지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이런 것도 먹는 음식인가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간 식당이 그 꼴이면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한다.
구룡포에 가면 ‘모리국수’가 유명하다. 구룡포가 집인 지인 덕분에 정말 맛있다는 모리국수 집을 찾았다. 벌써 30년 전이다. 당시엔 뭘 먹어도 맛있는 나이라 그냥 얼큰한 칼국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후 구룡포에 갈 때마다 들렸다. 골목 안이라 찾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인근에 전부 모리국수집이다. 심지어 그 집 바로 옆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돌아가신 철규 형님 이름을 딴 유명한 ‘철규분식’ 바로 밑에 따발총 아줌마가 운영하는 모리국수집이 있다. 그 아줌마는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단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내뱉는다.
“그 집 아들이 인터넷인지 뭔지로 쫙 소문을 내서 그렇게 됐잖아. 나도 모리국수라면 한가락 하는 여자인디, 당최 아들놈이 인터넷에 올려 주지를 않으니 환장하것네.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내가 미역국을 처먹었으니 내 미친년이지. 서방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더니.”
혹여 내가 시킨 모리국수 양푼이에 침이라도 들어갈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결론은 ‘광고빨’이란다. 모리 국수는 어떤 생선을 넣는지에 따라 맛이 확 변하는데 그런 생선을 잘 구하기 힘들단다. 남편이 어부라 가끔 잡아다 갖다 주면, 그날 장사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된단다. 그땐 보답으로 저녁에 아랫도리 제대로 한번 씻고 들어간다는데 그 말뜻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강구에 가면 전국에서 유명한 ‘물곰탕’ 식당이 있다. 지역민이 추천한 맛집이다. 아직 탁자 없이 방에 앉아 먹어야 하는 허름한 식당이다. 작달막하고 통통한 할머니가 원주인이었다. 지금은 딸이 운영하고 있다. 낮엔 영덕 대게 맛보고 놀다가 저녁 무렵에는 물곰탕 한 그릇 먹게 된다. 사실은 아침에 먹으면 더 맛있는 것이 물곰탕인데 물곰탕 한 그릇 먹자고 아침 굶으면서 올 수는 없으니 저녁 맛이라도 보는 것이다. 자리 잡고 앉은 바로 옆 손님도 타지에서 온 것 같은데 부부행세를 하지만 부부는 분명 아니었다. 대화 내용을 보면 짐작이 간다. 남자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음식이 맛있다고 치켜세운다. 여자는 덩달아 알랑방귀를 뀐다. 얻어먹는 여자의 전형적인 말투다. 그네들이 먹는 음식은 나랑은 달리 미주구리 회를 시켰다. 그리고 물회와 함께 먹는다. 물가자미가 미주구리다. 탁월한 선택이다.
식사 때가 훨씬 지난 시간에 국물류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시간상 어쩔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소문난 물곰탕을 먹어야 했다. 속초에 가면 곰치국이란 것이 있는데 이게 물곰탕을 말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뱀장어류가 곰치이다. 그냥 생각나서 한마디 더 적자면 ‘꼼치’라는 어류도 있는데 남해안에서 잡히는 ‘물메기’를 말한다. 곰치와는 다르다. 또 물메기는 논메기와는 헷갈리지 않았으면 한다. 국물이 곰탕 국물처럼 부옇게 된다고 곰탕인 줄 알았는데 곰치의 생김새나 사는 특성을 대충 섞어 ‘곰탕’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찐한 국물에 엄청난 곰치고기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왜 유명하다는 소문이 났는지 이해할 만했다. 맛집인 경우 식사 시간대를 놓치면 편하게는 먹을 수는 있지만 자칫 맛있게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땐 옆 손님처럼 회 종류가 좋을 것 같다. 탕은 졸아서 짜지기 쉽고 간을 맞추기 위해 물을 부으면 쓴맛이 우러난다. 맛집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느 하나라도 소홀해선 안 되는데 옛날 어머니가 배고픈 시절 해왔던 그런 방식으론 식당 명성을 유지하긴 힘들다.
전국 맛집을 일부러 찾아서 먹으러 다녔다.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간 김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자는 식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때엔 정말 물어물어 찾아갔었다. 그런 집이 낡았지만 ‘운치 있다’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맛있게 먹고 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그때 주인들은 다 돌아가셨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내 연배 되는 사람이 추천하는 맛집은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겐 단지 추억의 맛만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 유달리 많이 나오는 맛집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유명인이 방문한 맛집에 갔다가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떤 적도 있다. 몇 입 먹다가 식당을 나와 버렸다. 작가가 주인에게 돈 먹었나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맛집이란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내 입맛에 맞는 맛집이 잘 없다. 어린 시절 못 먹고 자라서 그런지 식탐이 많아 무엇이든 다 잘 먹었는데 이젠 입맛이 자꾸 변한다.
첫댓글 사람 나이 70이 넘어서면 입맛의 40%정도를 잃고
80을 넘기면 잘해야 50%정도 남는다 합니다. 거기다가
먹는 약 가지 수가 늘어나면 추가하여 맛을 잃는다 합니다.
송하 선생께서는 나이도 먹지 말고 입맛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만일 송하가 일찍 맛을 잃으면 애먼 독자들도
따라서 입맛을 잃을까 적이 염려됩니다 그려. 입맛 없는
나도 간간히 뭘 먹으면 맛이 있나 싶어 읽어보니 말입니다.
모리국수 물곰탕 이야기에 밤12시 다 된 지금 입맛이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