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역사의 외침을(2021.12.20.)
정인 지음
기획출판 거름(1985)
압박과 핍박의 현장을 목도하며 1986.10.29. 김영복
이 완전히 거꾸로 된 현실에 눈을 뜰 때, r,동안 우리가 얼마나 속아 지내왔는가를 절감한다.
그러나 암흑의 동굴 속에서 지낸 사람이 광명의 대지에 나올 때 눈이 부셔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듯이, 거꾸로 된 현실에 익숙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의 눈을 의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그럭저럭 사는데, 나 혼자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낀다. 동굴의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진지를 찾아나서는 길은 외로운 고행의 길이다.
오늘날 많은 뜻있는 젊은이들이 이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거
꾸로 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선 먼저 그러한 현실을 낳은 거꾸로 된 역사를 바로 인식하여
야 한다. 그들의 고난에 찬 발걸음에 조금의 도움이 될까 하여 이 책을 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초등학교때의 일이다. 학교 선생님의 회초리가 무서워, 밖에 나가 동무들과 하고 싶은 딱지놀
이도 팽개치고 방구들에 앉아 온종일 나는 책과 씨름하였다. 조선 역대 왕의 이름을 공책에
스무 번 쓰고, 3분 이내에 달달 외어 오라는 선생님의 엄명을 따르느라, 아무런 의미도 모르
면서 무조건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하고 싶은 일도 많고 놀러 가고 싶은 데도
많은데 이 내 머리가 나빠 식으로 외기만 하였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해는 고구
려 소수림왕 2년이요, 거란의 1차 침입은 983년, 2차 침입은 985년에, 3차 침입은 989년이
다. 신석기시대는 빗살무늬토기요 청동기 시대는 민무늬토기...하면서 교과서가 아예 닳아없
어질 때까지 연필로 문지르며, 외어쌌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거니와, 그때 그토록 기똥차게
많이 외웠던 역사지식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당시 그토
록 비장하게 머릿속에 집어 넣었던 수만 가지의 지식들이 군대를 갔다오고 술 담배를 먹어가
면서, 봄날의 따사한 햇살에 눈 녹듯 없어져 버렸다.
왜 그랬을까? 분명한 것은 어린시절 그 많은 정력을 투자하여 벌어놓은 지식들이 내 한 인생
을 결단하는 고정에사 아니 하루하루 밥벌어 먹는 과정에서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
실이다. 그렇다면 왜 나의 은사님은 장차의 사회생활에서 아무 쓰잘 데 없는 역사사실들을 어
린 나의 손바닥을 때려가며 가르쳐야만 했을까? 난 모른다.
요사이 난, 전에 없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다. 내일 먹을 쌀이 닷 되나 쌓여 있어 뱃속
이 편해, 그따위 지나가 버린 사건에까지 관심이 쏠리는가 은근한 반문을 해보나, 나의 호기
심은 지나가버린, 따지기 힘든, 기기묘묘한, 이상야릇한 사실들을 새삼 들추어 내어 요리 짱
구를 굴려보고 조리 짱구를 굴려보는 식자들의 태평성대한 짓거리는 아니다. 또 조국을 지키
기 위해, 조국의 해방을 위해 피흘려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웅적인 이야기에다 뭐가 잘못했느
니, 이렇게 했어야 옳지 않았느니 하며 초칠이나 하고 싶은 호기심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단 하나, 역사를 조금씩 알면서 우리의 세상이 너무 거꾸로 되어 있음을, 그리고 우리
의 생각 역시 완전히 거꾸로 된 것임을 몸서리치게 깨닫게 된 까닭에서이다.
농민과 노동자는 휴식시간도 없이 현장에서 땀을 흘릴 때, 고급 갈비집에서 배를 불리며 요정
에서 술을 먹고 취한 몸을 풀기 위해 안마사의 백만 원짜리 나긋나긋한 손길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여자는 자기집 설거지할 틈도 없이 남의 집에 달려가서 남의 그릇,
옷가지, 마루바닥을 설거지, 빨래, 청소해야 하는 반면, 사우나탕 가마솥에서 온종일 피부를
가꾸는 여자가 허다하다.
나라의 주인인 노동자, 농민, 학생이 조그만 모임을 만들고 집회를 열고 요구를 하면, 재빠르
게 출동하는 무장경찰에 잡혀가는 반면, 초대형 부정을 저지르고 수천억 원을 은행에서 갖다
쓰고 부도를 낸 사람들은 자자손손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비축해 놓는다. 일제 하에서 같은
동포의 뼈골을 빼먹은 친일파들은 해방 후 오늘날까지 떵떵거리며 사는데, 평생을 조국의 독
립에 바친 투사들의 자손은 달동네의 허름진 셋방에서 기죽어 살고 있다. 외국의 바이어들에
게 잘 보이려고 보신탕집을 없애고, 노점상을 쫓아내고, 예비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게 하면
서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월급봉투에 돈 몇 푼 더 담아넣기 위해 뛰는 노동운동지도자들에게
는 곤봉과 해고와 구속으로 대한다. 40여년 동안 우리의 쌀을 빼앗아가고, 독립운동가를 고문
하여 죽인 일본놈들에게는 선린이다. 우방이다 하며 반가이 대하면서도 같은 동포의 목에는
여전히 총구를 겨누며 지내고 있다.
노동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 남이 땀을 흘려 벌어 놓은 것은 무더기로 빼앗아가는 사회계급
은 존경을 받으면서 정작 국민을 먹여살리는 노동자는 공순이, 공돌이라 천시를 받는다. 백
성들의 피땀을 수탁하여 호화찬란하게 살았던 왕과 고관대작들이 어인 일인지 오늘까지도
TV의 역사무대에서 판을 치고 있는 반면,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외세를 물리쳐 민중의 나라
를 세우고자 하였던 농학농민, 의병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이 완전히 거꾸로 된 현실에 눈을 뜰 때,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속아 지내왔는가를 절감한
다. 그러나 암흑의 동굴 속에서 지낸 사람이 광명의 대지에 나올 때 눈이 부셔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듯이, 거꾸로 된 현실에 익숙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의 눈을 의심한다. 대부분의 사
람들은 동굴 속에서 그럭저럭 사는데, 나 혼자 미친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을 느낀다. 동굴의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나서는 길은 외로운 고행의 길이다. 거꾸로 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먼저 그러한 현실을 낳은 거꾸로 된 역사를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뜻있는 젊은이들이 이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고난에 찬 발걸음에 조금의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글을 쓴다.
1985년4월
지은이
제1장 양반의 나라_조선봉건국가
1 춘향이를 협박 회유 매수하는 변사또
2 봉건사회에 이르는 세계사의 흐름
3 양반과 상놈의 계급사회
4 허가낸 도적들
5 지배논리에 물드는 상놈들의 의식
제2장 오백 년 장기집권이 무너지다니
1 변화하는 필연
2 양반의 집안싸움
3 무너지는 착취질서
4 반항의 형태
5 터져나온 민란의 봇물
제3장 농민들 횃불을 들다
1 사기꾼 조병갑
2 농민혁명의 횃불을 들다
3 왜놈 뙤놈 불러들이는 민비
4 농민과 외세와의 대접전
5 껍데기는 가라
제4장 제국주의에 놀아나는 한반도
1 제국주의의 검은 구름
2 낯모를 군함 한 척
3 유린당하는 한반도
4 바람난 여편네_등쳐 먹는 제비족
제5장 원한 맺힌 니뽄도
1 땅뺏기고 나무 뺏기고
2 신작로에 얽힌 사연
3 조선혁명선언
4 러시아혁명과 윌슨의 민족자결 선포
5 3.1독립만세
제6장 끊임없는 민중의 항거
1 지주와 자본가, 일제와 손을 잡다
2 대지를 요로 삼고 창공을 이불 삼아
3 눈을 뜨는 노동자
4 돛대도 아니 달고 삿개도 없이
5 부끄러운 이름들
제7장 다시보자 미군정, 규탄하자 이승만
1 독립투사의 나라 민중의 나라
2 민족분열을 부채질한 자 누군가
3 이승만의 3대 죄악상
-안팍의 정세
-친일파와 손을 잡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
-권력이란 꿀처럼 단 것일까
4 4.19의 신화
제8장 독재권력의 가면을 벗기다
1 박정희 대통령의 삼대 공약
2 모순된 현실
3 세 개의 구멍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누구를 위한 총력수출인가
-재벌이 솔을 피나 공돌이가 솔을 피나
4 부정부패의 주인공들
5 독재는 적화의 황금교
-짓밟힌 인권
-적색 오징어포
부록 1 노동자는 누구에게 얼마를 빼앗기나
부록 2 오적(김지하)
부록 3 80년대 권력형 부정축재
-비싼 전철 타는 서울시민
-고위공무원은 뇌물 먹고 서민은 비싼 전기 쓰고
-농산물 수입으로 죽어나는 농민들
-뻔뻔한 정래혁
-장영자 치마 뒤에 숨은 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