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淸和)한 날씨에 조용히 조섭(調攝)하시는 체후(體候)가 만안(萬安)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집사(執事)에 대해 실로 일생동안 서로 의지하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같은 고을에 있을 때에도 생각대로 다 하지 못한 후회가 늘 많았고, 이미 바닷가로 와서 사우(師友)들과 떨어져 홀로 거처한 지 수년 동안에 서찰 또한 몇 통 보내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서로 종유(從遊)하며 강론하는 즐거움을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잠깐 사이에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니 앞으로의 인사(人事)가 다시 이와 같을 뿐이라면 장차 어이하겠습니까. 다만 움직이고 고요할 때와 생각하고 배우는 사이에 날마다 새롭게 되기를 힘써서 서로 아껴 주는 지극한 뜻을 거의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는데 실로 전심을 다해 정밀(精密)하게 하지 못하니, 매번 슬프고 한탄스럽습니다.
이전의 편지는 급박하게 답장을 보내느라 말은 뜻을 모두 전달하지 못하고, 뜻은 또 얕아서 웃을 만하니, 실로 말학(末學)이 길에서 듣고 내뱉는 진부한 평상(平常)의 말인지라 대방가(大方家)가 이를 본다면 정히 웃음거리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집사께서는 이 이치에 대해 이미 자신하셔서 장차 저술할 때에 천인(天人)과 고금(古今)의 정밀하고 온축(蘊蓄)된 것을 모두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이는 심사(心思)가 허명하고 견문이 폭넓어 반드시 다시는 여한(餘恨)이 없을 것이니 오히려 어찌 다른 사람의 한두 가지 도움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오히려 불가한데, 더구나 저처럼 평범하고 용렬(庸劣)한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다만 책이 완성되기를 기다려 책에 대해 득실(得失)을 지적하여 논하고 의혹을 강론(講論)하여 없애는 일은 아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보내 주신 편지는 겨우 한 번 읽자마자 (화재로) 불에 타 버렸으니, 문장을 배열하고 구성한 웅장하고 은미(隱微)한 규모와 절목(節目)을 이미 열에 하나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병중에 어렵게 써서 보여 준 뜻은 끝내 허사(虛事)로 돌아갔으니 한스럽고 속상한 마음을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 가운데 학문을 논할 적에 연평(延平.李侗)의 뜻을 사용하려고 한 것은 다만 대강(大綱)을 말하였을 뿐이고 애당초 그 설(說)을 다 말하지 않으셨으니, 지금 저를 위하여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없는지요? 바라는 마음이 몹시 간절하고 외숙(外叔)의 병세는 견딜 만하니 응당 꺼리는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고 인편을 만나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