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기행 (普門寺보문사 편)
1) 일시: 2007.11.11(일)
2) 위치: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 (席毛島석모도)
3) 유적지: 낙가산보문사, 마애석불상(관음보살상), 낙가산등
그림1= 반도 강화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 지도
4) 가는방법:
강화도에서 普門寺보문사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席毛島석모도로 가는 배정착장이 나오는데, 그 정착장엔 대형주차장이 있으면서 차들이 배를 탈려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운임은 왕복 14000원, 탑승객은 1인당 1300원정도이다. 좀 비싼편인데도, 강화도와 席毛島석모도사이에 대교를 놓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교를 놓으면 돈도 안들이고 席毛島석모도를 쉽게 관광할 수 있을 터인데. 관광수입을 올리려고 일부러 배편을 방치하는 걸이 아닐런지?
席毛島석모도로 가는 배편이 3대가 운영되는데 갈때보다 올때가 시간이 더 걸렸다. 건너는 것은 5~10분인데 기다리는 시간이 갈때는(오전 11시반경) 20분, 올때(오후 3시경)는 1시간 20분정도가 걸렸다. 席毛島석모도 정착장에서 내려 곳장 보문사로 향했다. 섬을 빙돌아 반대편 낙가산 기슭에 보문사가 있었다.
5) 普門寺앞에는 버스정류장, 주차장, 식당, 거리장터가 벌어졌다. 그곳 주차는 2000원 사찰입장료는 대인이 2000원 이었다. 사찰입구 대문에는 낙가산보문사라고 써있었다. 거기서 普門寺보문사까지는 경사가 매우 급했다. 10여분 올라가니 경내가 들어왔다.
대웅전, 석굴, 명부전, 삼성각, 종탑, 법고,등이 있었고, 대웅전 오른쪽에는 마애석불로 올라가는 등산로(145개계단)가 있었다. 마애석불이 있는 눈썹바위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경사가 너무 급해 숨이 찼다. 한 30여분을 올라가니 마애석불(관음보살상)이 있었다. 교과서에서 본듯한 보살상이었다.
그림2= 반도 보문사 대웅전
그림3= 반도 보문사 범종각
그림4= 법음루
그림5= 반도 보문사 법고
날씨는 화창하였고 석불에서 내려다 보이는 황해바다 풍경이 멋있었다. 단풍은 그리 보이지 않았지만, 산천은 누렇게 물들었다. 도로마다 강화도특산물인 고구마, 순무, 잔새우를 팔고 있었다.
2. 반도 洛迦山普門寺낙가산보문사란?
1) 강화도에서 배로 10분 정도 걸리는 석모도에 위치한 普門寺보문사는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특히 절이 자리한 곳을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불교성지? 補陀落迦山보타낙가산에서 따온 이름으로 낙가산[落袈山(사전),洛迦山(보문사에서),落迦山(대륙에서)]이라 부른다.
普門寺보문사는 대한민국 4대 관음기도처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근대의 고승인 석전 박한영 스님이 작성한 '보문사법당중건기'에 작성한 글을 토대로 하면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화정대사라는 스님이 이 절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림6= 반도 보문사 입구
2) 새벽 동틀 무렵에 듣는 절 앞 바다의 파도소리와 눈썹바위의 磨崖觀音菩薩像마애관음보살상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강화8경에 드는 명승지로 꼽혔다. 지방기념물 17호로 지정된 수령 약 600여 년이나 된 향나무도 멋지다.
3) 향나무 뒤에는 거대한 석실이 있다. 이 석실은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화정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중건된 석굴사원으로,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내에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과 나한상을 안치하였다.
이십산나한상과 관련해 절에 내려오는 창건전설이 있는데 신라 때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나한상을 현몽에 따라 낙가산에 안치했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7= 보문사 석실
그림8= 반도 보문사 석실 안내판
4) 석실 옆으로는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지름 69cm, 두께 20cm의 큰 맷돌이 있으며, 중창불사를 끝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이 절 마당에 위치해 있다.
그림9= 맷돌 안내판
5) 보문사에 있는 마애석불은 높이가 32척, 폭이 11척인 觀音菩薩像관음보살상. 32척은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을, 11척은 11면 관음의 화신을 상징한다. 관음보살상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섬세하나 예술감각이 미약하여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성지로서 더 중요시되고 있다한다. 시 유형문화재 제28호.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기도 사찰중의 하나이며 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 이하 보문사 홈페이지 http://www.bomunsa.or.kr/
그림10= 반도 낙가산 마애관음보살상
그림11= 반도 낙가산 마애관음보살상(마애석불좌상) 안내판
3. 대륙 절강성 普陀山보타산 (Putuoshan(푸투오샨))이란?
1) 普陀山보타산은 대륙 절강성 영파시 동쪽바다 가운데 위치를 한다. 주산군도 500여개의 섬중의 작은 섬으로 최고봉은 불정산 보살정으로 293.1m 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기세가 웅장하며 물은 깊지않지만 파도소리가 요란하며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하늘을 떠받드는 특이한 풍경을 이룬다.
2)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강성 普陀山보타산은 지장보살을 모신 구화산,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4대 불교성지라 불리고 있다. 중국을 이해할 때 중국의 오악이나 황하, 양자강등으로 분류하여하남, 하북, 산서, 산동, 호북, 호남 등지역분류를 이해하는 것이 대륙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곳에는 남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지난번 불탄 해수관세음보살상과 상당히 유사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듯하나 이곳이 좀 더 넓고 규모가 큰 듯하다.
3) 이곳에 신라방 신라초등 신라 유적이 많아 그 당시 활발한 신라인의 활동상을 엿볼 수있다
(주)이하 대륙조선사 대륙조선답사기 25번 제2미션,보타낙가산-불교4대성지(정덕형저)
4) 조선의 普陀山보타산에는 3개의 큰 사원과 88개의 암자, 148개의 기도원이 있고, 승려와 비구니는 모두 2,000여명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주요사찰로는 보제선사, 법우사, 혜제사 등이 있다.
5) 普陀山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 普濟寺보제사(푸지스) 는 속칭 전사(前寺)라고 칭하며,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로 10전, 12루, 7당, 4문, 300여칸의 집으로 구성되어있다. 普濟寺보제사는 북송? 원풍 3년(1080)에 건립되어 보타관음사로 명명한 것을 청? 강희 38년(1699)에 수건하고 이름을 보제사라 했다.
(주) 중국에 있는 불교성지 보타낙가산 komwor님
그림12= 대륙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산)도
그림13= 대륙 절강성 보타산 보제사 앞마당
그림14= 절강성 보타산 보제사 입구
그림15= 절강성 보타산 케이블카
그림16= 절강성 보타산 관세음보살상
4. 대륙 普陀山보타산의 신라초
1) 신라초는 이 보타도의 남쪽 끝에 있는 조그만 암초이다.「佛祖統紀불조통기」라는 책에 실린 이야기가 그것인데, 일본에서 온 혜악이라는 스님이 산서성 오대산에서부터 관음상을 가지고 와 일본으로 가지고 가려고 하는 데, 보타도 앞을 지날 때 배가 도대체 움직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배가 나가지 않자 이것이 무엇때문인가 하고 궁리한 끝에 관음상과 중국 동해와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문이 아니가 생각이 들어서 배를 내려 이 섬에 올라가 관음상을 섬에서 봉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자 비로소 배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처럼 관음상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不肯去불긍거'라는 수식어가 절 이름 앞에 붙어있는 것이다. 배가 걸려서 가지 못하게 된 암초, 배를 가지 못하게 한 암초가 바로 신라초다.
2) 불긍거관음원이 일본승려와 인연이 있다고 기록된 것은 앞에서 본대로「佛祖統紀불조통기」라는 책인데, 그보다도 140여년 전인 1124년에 나온 책으로서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徐兢(서긍)의 「高麗圖經고려도경」에서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高麗圖經고려도경」에서 관음사 관련 항목을 보면 " 보타도 돌다리에 오르면 깊은 산록에 蕭梁소량때 세운 보타원전에 영감스런 관음상이 있다. 옛날 신라상인이 오대산에서 불상을 새겨 가지고 와서 귀국하려 하자 바다에 암초가 나타나서 갈 수가 없었다. 이에 불상을 암초에 올려놓고 승려 종악이 보타원전에 봉안한 후에 선박의 왕래가 가능해졌으며, 복을 빌면 감응이 없지 않다." 라고 기록돼 있어서 오대산에서 관음상을 가지고 온 스님은 일본의 혜악이 아니라 신라상인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徐兢서긍의 「高麗圖經고려도경」은 「佛祖統紀불조통기」보다 연대가 앞선 만큼 그만큼 더 당대에 가까운, 즉 보다 사실에 가까운 기록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3) 북경 중앙민족학원의 黃有福황유복씨가 쓴 「中朝佛敎文化交流史중조불교문화교류사」에 언급된 것처럼, 서기 502년부터 519년 사이인 天監천남 연간에 중국에 최초로 불교를 공부하러 온 백제의 스님 發正발정이 바로 절강성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음을 듣고 갔다고 한다.
(주) 블로그 동산(sunonthetree) http://blog.naver.com/sunonthetree/110000006721
5. 대륙 普陀山보타산 유적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