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 그룹큐티나눔
인생은 한계가 있다
전도서 1:1-11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찬송 484장, 구 533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신앙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지만, 특별히 신앙이 꽃피우기 좋은 삶의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중 하나는 분명, 사람이 인생의 한계와 허망함을 깨닫는 자리일 것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헛됨을 깨닫는 자리에서 헛되지 않은 영원한 진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전도자가 인생의 헛됨을 노래합니다(1-3절).
1) 전도자는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합니까(1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비록 직접적인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윗의 아들이자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칭호에 적합한 인물은 솔로몬 외에는 떠올리기 어려우며, 유대의 전승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전도자로 번역된 ‘코헬레트’는 설교자 또는 교사, 혹은 총회의 인도자를 뜻하는 말이다. 저자가 자신을 이러한 호칭으로 지칭하는 것은 전도서가 단순히 개인적인 깨달음이나 인생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기록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2) 전도자는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인생이 본래부터 헛된 것이었을 리는 만무하다. 인생의 허무가 경험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인간이 타락한 이후다. 인간의 타락 이후, 영원했던 인간의 삶에는 죽음이 찾아왔다. 영원한 삶이 존재했던 에덴동산이 일시적 삶의 터전인 이 땅으로 뒤바뀌었다. 죄인 된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불완전하다. 완전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를 잃어버린 인간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허무가 찾아왔다.
3) 전도자가 사람에게 하나도 유익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3절)?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섭리다.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창 1:28). 이 노동은 인간에게 만족함과 기쁨이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 이후 노동은 인간에게 고통이 수반되는 행위가 되었다(창 3:17-19). 그리고 그 고통의 내용 중에는 인간이 느껴야 할 인생무상의 허무함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수고는 장구한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묻히고, 결국 그 삶은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허망함이다.
나눔 1 전도자처럼 하나님을 잘 아는 지혜자도 인생에서 경험하는 허무함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살면서 허무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나눠 봅시다.
2. 전도자는 자연계의 순환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피곤과 허망함을 발견할 뿐입니다(4-11절).
1)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8절)?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
사람은 본래 무한하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함을 얻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주어졌다(전 3:11). 그러므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배제한 채, 눈에 보이는 세계, 즉 영원하지 않은 피조 세계의 것들로 자신의 영혼을 충분히 채울 수가 없다. 게다가 죄로 인한 스스로의 욕심까지 더해졌으니, 사람의 눈과 귀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2) 반복되는 자연계와 인생사를 생각할 때, 해 아래 무엇이 없습니까(9절)?
새것.
자신의 존재가 특별하기를 원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어떠한 이들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특별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삶의 모든 수고를 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장구한 세월을 두고 반복하는 자연계의 순환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인간의 인생과 수고는 세월 속에 씻겨가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을 품은 자연은 무심하게 반복되는 규칙을 따라 흘러간다. 이러한 자연계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는 그 무엇도 새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3) 이전 세대들과 같은 장래 세대들의 운명은 무엇입니까(11절)?
기억됨이 없다.
세상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던 거대한 제국의 군왕들도 장구한 역사 앞에서는 그저 작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존재일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더욱 희미해져서, 불과 수천 년 전 존재했던 거대한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니 평범한 한 개인의 인생은 말할 것도 없다. 각자 인생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한없이 무겁지만, 그 인생의 피곤함도 결국 기억됨 없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인생의 무상함이다.
나눔 2 전도자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보고, 세대가 흘러가고 잊히는 역사를 상고하다가, 피곤하게 살지만 결국 제자리인 인생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떨 때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세상엔 새것이 없구나’ 생각하게 됩니까?
나눔 3 전도자는 ‘해 아래’ 세상이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은 ‘해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 때 걷힙니다. 해 너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어떻게 해 아래 세상의 허무함을 극복하게 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하나님 없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소서.
공동체 _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