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갑자기 봉건시대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아버지와 형이 대통령을 지낸 젭 부시가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차기 대선에서는 남편이 대통령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시가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로 나설 공산이 커졌다.
2008년 힐러리와 버락 오바마가 맞붙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이 봉건적 가문정치가 횡행하는 인도 등 서남아 국가를 닮아간다고 한탄했다.
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직을 꿰차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요즘 가문정치가 극성인 곳이 동북아시아다.
김씨 3대가 권력을 세습한 북한을 필두로, 박정희가의 딸이 집권한 한국, 외할아버지가 총리였던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공산당 원로의 자식들 모임인 태자당의 시진핑이 집권한 중국이다.
파키스탄의 부토 가문, 인도의 네루 가문, 스리랑카의 디사나야케, 쿠마라퉁가 가문,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칼레다 지아 가문 등은 창업자가 모두 건국이나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가 반민주적인 세력들에 의해 비명횡사했다.
그 후계자들의 집권은 민주화 투쟁의 한 상징이었다.
물론 이들 가문이 세세손손 권력을 독점하다가 부정부패 등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혹독한 비용이 지불되고 있다.
이에 비해 동북아의 가문정치는 이들로 대표되는 고착화되는 사회 기득권층 파워의 산물이다.
일본의 경우 1980년 이후 19명의 총리 중 12명이 아버지를 이어 의원을 한 세습 정치인이다.
자민당 의원의 절반 이상은 세습 정치인이다.
서남아 가문정치의 권력자들은 창업자들의 고난 속에서 나름대로 단련되고, 민주화를 가치로 내세웠다.
반면 동북아 가문정치의 후예들은 보수와 안정을 내걸고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올랐다.
서남아 가문정치의 비극은 그 사회들의 전근대적인 잔재가 원인인 데 비해, 동북아 가문정치의 위험 요인은 주인공들의 인물 자체다.
이른바 공주병, 왕자병 리스크다.
공식 명칭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이 병의 핵심 증세는 유아독존이다.
권력형 공주·왕자병은 나라를 결딴낼 수 있다.
권력형 병자들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주변 환경 덕택에 현재의 자리에 오른 사실을 모른다.
생득적인 주변 환경을 생득적인 능력으로 착각한다. 전형적인 부잣집 망나니 큰아들로 놀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회개했다는 조지 부시는 그 과정에서 왕자병 증세가 심해졌다.
그의 유아독존적 믿음은 미국을 역사상 최악의 전쟁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청와대 문건 사건이 일어나자 박근혜 대통령은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다, 이렇게 말을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
며 “
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고…”
라고 말했다.
중증의 공주병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중증이 되면, 자신의 아픔은 강렬하게 느끼면서도 남의 아픔은 하찮게 여기게 된다.
마음이 상한 국민들에게 사과는 못할망정 자신이 더 아프다고 화를 낸 것이다.
김자옥의 노래처럼 ‘공주는 외로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소비세 인상이 불발하자 의회를 해산해 다시 총선에서 압승했다. 그는
“사람들의 강한 지지가 나의 마음과 늘 함께 있다는 것을 선거 내내 알렸다”
며 개헌 추진을 총선 뒤 일성으로 내뱉었다.
경제회복을 갈망하는 국민들을 의회 해산으로 을러댄 결과물을 자신이 옳았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와 아베는 이념, 정치노선으로 보면 역대 양국 지도자 중 최고의 찰떡궁합이다.
하지만 둘은 최악의 관계다. 공주와 왕자는 서로를 용납 못한다.
내시가 필요할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발전을 보이던 동북아가 어느새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권력자로 상징되는 정체된 사회로 퇴보했다.
박근혜는 당연히 내시 최순실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