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윤석주 씨가 손수 목조주택 짓기에 도전했다. 시골 생활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 두 번째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는 그의 집을 찾아가 특별한 일상을 엿봤다.
줄곧 서울 강남구에서 자라 ‘집=아파트’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하던 사람이 있다. KBS 신인 개그맨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윤석주 씨다. 그가 이 공식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된 건 바로 가정을 꾸리고 딸 ‘채린ʼ이를 얻고 나서다. 주변을 의식하고, 휩쓸리는 도시의 육아와 교육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를 원했기에 과감히 전원행을 결심했다. 얼마 전에는 손수 집을 짓고 직접 찍은 사진과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 「땅.집.GO!」를 내고 작가로서의 제2의 인생도 시작했다.
“오시는 길에 이렇게 센스있는 집 보셨어요? 모든 곳에 제 손이 하나하나 간, 제가 만든 집이에요. 이게 전부 제가 쓴 책에 담겨있어요. 앞으로 잔디도 깔고, 펜스도 쳐야 하고, 마당에 흙도 더 채워 넣고 상수도랑 지하수도 옮겨야 해서 사실은 미완성이지만요.”
직접 쓴 에세이집을 들고 너스레를 떠는 윤석주 씨. 누가 개그맨 아니랄까봐 질문도 전에 집과 책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늘어놓는 그는 왜 직접 집짓기에 도전했을까.
• SPACE POINT •
“현장일지를 기록하다 보니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웃음). (정)선희 누나도 ‘이 책 네가 직접 쓴 거 맞냐’고 연락을 해왔고 남궁연 형도 재미있다고 하고요. 집 짓다 보니 저의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되네요.”
윤석주 씨 가족이 살았던 첫 번째 전원주택은 경기도의 한 주택 단지에 자리했다. 꿈에 그리던 가족의 러브하우스는 160평의 대지에 40평에 가까운 이층집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펙을 가졌지만, 입주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비가 새고 단열이 좋지 않았다. 비록 집은 불편했으나 전원생활은 절대 불행하지 않았다는 그들. 도시의 회색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자란 가족에게는 텃밭을 가꾸고 이웃과 나누는 전원생활 자체가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텃밭을 가꿨는데 쪽파나 토마토같이 남들이 키우기 쉽다고 하는 것마저 잘 자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할머니들이 지켜보다 못해 도와주곤 하셨어요(웃음). 우리 밭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아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니까 다 따다 먹으라고 하시고, 직접 가져다주시니까 고기 외에는 자급자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처음엔 잔디와 구분이 되지 않던 풀들이 사실은 채소였고, 나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시골살이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다음 순서는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집을 지어 시골에 살기’가 되었다.
“집 짓는 일이요? 사실은 간단해요. 집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터주고, 골조를 선택해서 올려서 지으면 되잖아요. 주변에 전문가들과 집을 지어본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서 결정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장단점을 듣고 최대한 어렵지 않게, 복잡하지 않게 짓는 게 목표였죠.”
• PROCESS •
그는 문제에 대한 답을 달듯 집짓기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목조로 골조를 올리고 관리가 쉬운 스터코플렉스로 외벽을 마감했다. 독일식 고급 창호도 있지만 이중 미국식 창호면 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지붕에는 가장 저렴한 아스팔트싱글을 올렸다. 결정은 명쾌했으나 직접 시공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고용하다 보니 그 안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아 개그맨 특유의 임기응변을 발휘해 소통해야만 했다고. 언젠가는 집짓는 스트레스가 심한 두통으로 이어져 올림픽대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경찰을 부른 적도 있고, 목재를 태우다 크게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며 무심결에 뱉은 “집 지으면 사람이 죽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했단다.
• ACTIVITY •
“고급 재료로 지었다는 집에서도 살아봤는데 결국 하자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지었어요. 닭 잡는데 도끼를 들이댈 필요는 없죠. 새총만 있으면 돼요.”
집을 지은 경험을 출산에 비유한 윤석주 씨는 매일매일 사진과 일지를 남기며 본인의 글 쓰는 소질을 발견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사진을 찍고 작업하는 날이 더 많이 늘어났다. 사시사철 풍경이 변하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새들이 다양한 강화도는 석주 씨의 또 다른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딸 채린이도 이제는 텃밭에서 호미를 갖고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저는 늘 전원생활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숨 쉬는 공기부터가 다르잖아요. 아이가 이 동네로 이사오고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도 안돼 그 학교 아이들이 다 저를 ‘채린이 아빠’라 부르며 인사하더라고요.”
연예인이 아닌 한 아이의 아빠로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잡초를 뽑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는 그. 이 가족의 전원생활은 하루하루 그들만의 ‘정답’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