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식 PE 이음관, 볼밸브 수출에 보람
대연 : 김영식 대표이사
사업을 위해 손에 쥔 돈은 결혼자금으로 한 푼 두 푼 모았던 230만 원이 전부다. 190만 원을 주고 기계를 구입하고 보니 남은 돈은 달랑 40만 원이었다. 20대 후반에 사업을 시작한 김영식 대연 대표이사(58세)는 31년 만에 전자식 폴리에틸렌(PE) 이음관과 볼밸브로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성실성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1990년대 초반, 중견기업인 D사의 모 부장은 제천공장에 금형을 납품하던 중소업체 사장을 눈여겨보게 됐다. 아무리 늦은 오후에 기계가 고장 났다고 연락해도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보면 멀쩡히 수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때로는 다른 기계까지 손본 흔적이 역력했다. 자초지종을 살펴본 모 부장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납품업체 사장이 새벽같이 달려와 기계를 고쳐놓은 덕분이었다. 로스타임 없이 공장을 돌리는 경험을 몇 번 하면서 그는 젊지만 성실한 납품업체 사장을 신뢰하게 됐다.
시 D사는 미국에서 수입해오던 전기융착식 이음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0개를 주문하면 한두 개를 제대로 납품받기 어려울 정도다. 이음관의 납품이 지연되면서 다른 공정까지 영향을 받았다. 이음관 수입대체를 결정하고 관련 계획을 진행하면서, 모 부장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던 납품업체 사장을 떠올렸다. 그 납품업체 사장이 바로 대연 김영식 대표다.
금형에서 이음관 개발로 영역 넓혀
금형 제작 사업을 하던 김 대표는 D사의 국산화 의뢰를 계기로 전기융착식 이음관 개발을 시작했다. 금형 개발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이음관을 만드는 데는 한 차원 높은 기술이 필요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쳐 1996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기융착식 이음관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는 전기융착식 이음관을 미국에 역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음관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에는 자금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볼밸브도 개발했어요. 1998년에는 가스용, 수도용 볼밸브에 대한 KS 표시인증도 획득했습니다.” 제품 내부에 열선이 내장돼 이음 부위를 자동 융착시키는 ‘폴리에틸렌(PE) 이음관’과 부식이나 변형이 거의 없는 ‘PE 볼밸브’ 등 두 종류는 현재 대연의 주력 품목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25개국에 수출되면서 지난해 1,000만불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 200억 원 가운데 이음관과 볼밸브의 비율은 6대 4 정도이다.
230만 원으로 금형 사업 시작
서울 종로구 관철동이 고향인 김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다.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 기계과를 다녔다. 기계 가운데서도 그의 전공은 금형이었다.“졸업할 때는 자신이 쓰던 공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집으로 모두 가져왔어요. 나중에 반드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측정기를 비롯해 드릴, 바이트 등 공구를 한 아름 메고 성남 집까지 낑낑대면서 왔던 게 기억나네요.”한두 푼 용돈을 모으면 청계천에 가서 조그만 부품들을 사는 게 취미다. 1만 원만 쥐어도 바이트 몇십 개를 산다는 생각으로 젊은 시절부터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직원 3명으로 성동구 마장동에서 조그만 금형 공장을 차린 것은 28살 때인 1984년이었다. 사업을 위해 손에 쥔 돈은 결혼자금으로 한 푼 두 푼 모았던 230만 원이 전부다. 금형 기계를 190만 원어치 구입하고 보니 남은 돈은 40만 원에 불과했다.
직원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30~40분 떨어진 집에서 어머니가 점심과 저녁을 해다 날랐다.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금형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것이 사업 아이템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낮에는 영업하러 뛰어다니고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일하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별 보기 운동’(김 대표의 표현)을 했다. 다행히 그의 성실성이 알려지면서 일거리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붙은 공장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보험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이사하기도 했다. 고생 끝에 D 산업이 의뢰한 이음관 국산화로 도약의 계기를 잡았다. 이음관으로 국내 시장을 확보한 지 2년 만에 볼밸브를 자체 개발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일찌감치 나섰다. 1999년 중국 베이징에 지사를 설립해 첫발을 내디딘 후 2001년 톈진공장을 설립해 이음관과 볼밸브 수요가 많은 중국 시장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현재 톈진공장에는 한국 주재원 4명을 포함해 1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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