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묵상 본문 : 오바댜 1장 1절 - 14절 - 절망의 때에도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하늘에 소망을 두며 견고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한 주, 하루를 시작하며 주의 품을 향해 나아갑니다.
토요일과 주일은 강집사님을 통해 식사를 대접받아 육신의 풍요함을 누렸습니다.
강집사님의 삶 가운데 함께 해 주시고 그 가정이 생명의 은혜로 풍성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일상의 삶이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먼저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 되게 하옵소서.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게 하시고 그 은혜를 나누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7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본문 해설
오바댜는 남유다가 멸망(B.C. 586년)한 후에 활동한 선지자로써 그 이름은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오바댜서는 B.C.6세기 초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오바댜는 당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모두 멸망한 이후 선민의식이 실종되고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던 상황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유다를 학대한 에돔과 이방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하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한다.
오바댜는 하나님께서 에돔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선포한다.
오바댜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열방의 나라들 가운데 보내시고 그들에게 일어나서 에돔과 싸우도록 하실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에돔을 심판하시되 강대국들을 이용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에돔을 나라들 가운데 매우 작게 만드실 것이며 크게 멸시받게 될 것을 선언하신다.
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마음의 교만 때문인데 그들은 스스로 교만함에 대해 깨닫지 못했으며 교만함에 속아서 자신들이 바위틈에 거주하면서 점령하기 힘든 높은 곳에 살고 있었기에 누가 그곳을 점령하여 자신들을 땅으로 끌어 내리겠냐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드러내신다.
이에 하나님은 에돔이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서 별 사이에 보금자리를 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곳에서 에돔을 끌어내실 것임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도둑이나 강도가 물건을 훔치려고 집에 들어가서 만족할 만큼 훔치게 되면 더 이상 훔치지 않고 포도를 따는 자도 필요한 만큼 거두고 어느 정도 남기는 것이 정상임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에돔은 이러한 정상적인 심판으로 그치지 않고 철저히 망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신다.
그래서 에돔은 철저하게 수탈당할 것이며 그들이 감춘 보물까지도 철저하게 빼앗기에 되고 에돔과 약조한 모든 자들이 에돔을 쫓아내어 변경(가장자리)에 이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또한 에돔과 화목하던 자들이 에돔을 속여 정복할 것이며 에돔과 친밀하고 도움을 받았던 자들이 에돔 아래에 함정을 파게 될 것인데 이는 그들이 지각(분별력)이 없기 때문임을 말한다.
오바댜는 하나님이 에돔을 심판하시는 날에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시고 지각 있는 자를 멸하실 것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드만(에서의 손자 데만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성읍-창36:11)의 용사들이 놀라 두려워할 것이며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될 것임을 선포한다.
무엇보다 에돔의 심판은 에돔이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악한 행위 때문이며 이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 되는 것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에돔은 유다가 멸망하는 날 유다에 대한 침략군이 되어 적극적으로 유다 침공에 앞장서서 재물을 빼앗고 외국인이 성문에 들어가서 약탈 물을 제비뽑던 자들과 같았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에돔이 형제가 재앙을 당하는 날에 방관해서는 안 되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하지 않고 고난의 날에 입을 크게 벌려서는 안 됨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는 에돔이 그 성문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방관하지 않고 약탈한 물건에 손을 대지 말아야 했으며 4거리에서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고 고난의 날에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말아야 했음을 제시하신다.
이는 에돔이 유다가 멸망할 때 함께 침략하고 약탈하며 유다백성들을 죽이며 말살하려는 모습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계심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오바댜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열국에 흩어져 정체성을 상실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먼저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그들의 교만함과 패역함, 잔인함과 포악함의 모습을 지적한다.
이러한 에돔의 죄악의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의 약속이 증거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에돔이 에서의 자손으로써 이스라엘, 즉 야곱의 형의 자손이며 피를 나눈 민족이었는데 이러한 연결은 무시하고 오직 자기 살길만을 찾아 행하는 모습을 지적하신다.
그리고 자신들이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다른 민족에게 쉽게 정복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교만함으로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의 철저한 멸망을 선포하신다.
땅의 것을 기초로 삼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고 하며 스스로의 교만함을 버리지 못한 어리석음의 모습이 에돔의 모습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땅의 것으로 사는 자들은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자들이 됨을 발견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에 판단의 근거를 두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질 때 판단의 근거도 사라지기에 쉽게 변절되고 무너지며 방황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의 것에 기초를 두지 않으셨으며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기준을 두고 말씀하시고 증거 하셨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일을 시작하셨음을 보여주셨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요2:23~25)
표적을 보고 믿음을 가졌던 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표적이 나타나지 않게 되자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었으며 심판받을 자로 서게 된다.
예수님이 사람의 지지와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신 이유는 바로 그 모든 것이 쉽게 사라지고 무너지기 때문이며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심판 당할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오바댜의 시대에도 눈에 보이는 강대국에 기준을 두고 사람들의 모습에 소망을 두는 자들은 모두 절망 가운데 빠지게 되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오바댜를 통해 말씀하시고 언약을 상기시키시며 하나님 안에서 회복된다는 사실을 증거 하도록 하심으로써 백성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셨음을 보게 된다.
또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기 위한 과정이며 하나님은 이 회복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하게 성취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절망으로 향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 복음의 진리를 통해 하나님께 참 소망을 두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며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도록 만드신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참 지혜는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신 복음에 있음을 선포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자로 살아감이 진정한 능력임을 선포한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2~25)
과거에는 복음의 능력을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요즘은 복음의 능력이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에 실제가 되고 땅의 것에 기초를 두지 않게 하는 힘이 됨을 고백하게 된다.
현재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에도 복음의 능력은 땅의 상황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마음을 두게 하여 흔들림이 없게 만든다.
나의 모습도, 나의 상황도 크게 소망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은혜는 마음에 평안을 얻게 하며 주님이 이끄시는 은혜를 바라보며 살게 한다.
나의 모습은 절망적이지만 주의 은혜는 소망을 품게 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도록 이끄신다.
그 은혜를 오늘도 누리며 주의 선한 일에 힘쓰며 사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인생의 어리석음은 늘 반복되고 주의 은혜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께서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 참으로 큰 은혜요 사랑의 손길임을 고백합니다.
땅의 것으로 기준을 삼고 목적을 삼는 것은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참 지혜는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며 주와 교제의 기쁨을 누리는 것임을 믿습니다.
참 지혜를 통해 절망의 상황에서도 주의 평안을 얻고 소망을 품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품 안에서만 안식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삶의 목적과 방향이 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땅의 가치로 세워졌던 마음을 기준들을 철저히 버리고 무너뜨리는 은혜를 주옵소서.
그리고 주의 의로 옷을 입고 주의 복음으로 다시 세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 은혜를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하오니 마음을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생명의 은혜로 풍성한 양식을 먹여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