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내역>
서린의 무술실력.
태권도5단 합기도3단->태권도3단 합기도1단
-23.
빈대떡 가게.
점심시간에 맞춰서 온 덕분에, 자리에 앉기까지 10분, 주문한 빈대떡이 나오기까지 20분이 걸렸다. 총 30분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상관없다.
서린과 정 순경은 말일까지 휴무ㅡ비상만 걸리지 않는다면ㅡ이고, 강혁과 진우 역시 전시회를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회사에 안 나가도 된다.
“이게, 밥?”
런던에 있을 때도 주로 한국식당을 애용했고, 가족도 한국음식을 주로 해먹어서 정식에 익숙한 서린에게, ‘빈대떡 따위 밥이 될 수 없다’ 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기란 어렵지 않을 터.
“일단 한 번 먹어보세요.”
정 순경의 추천으로 온 곳이지만 처음부터 내키지 않은 서린이다.
하지만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강혁과 진우로서는 빈대떡도 진수성찬.
엄청난 속도로 한 장씩 해치운 강혁과 진우에게, 정 순경의 뒤늦은 통보가 날아든다.
“삼계탕 먹으러 갈 건데 너무 많이 먹지 마요.”
주문을 한 명당 두 장씩만 했던 게 이유가 있었던 정 순경이다. 왜 그러냐고, 시킬 때 왕창 시키라고 강혁이 떠들어댔으나 진우가 옆에서 최대한 말린 덕분에 빈대떡은 한 명당 2장씩이다.
정 순경도 맛있게 먹고, 강혁과 진우 역시 빈대떡 두 장을 순식간에 해치운지라, 서린은 <껄끄럽다> 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서 한 입 베어 문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내린다.
“싱거워. 맛없어. 못 먹겠어. 안 먹을래.”
“…….”
입맛하고는.
“이게 얼마나 맛난 건데 그러세요. 차 형사님, 런던에 있을 때 김치전은 안 먹어보셨어요?”
“그건 먹어봤어요. 엄마 안 계시면 혼자서 한 번씩 해먹기도 했고. 근데 이건 진짜 못 먹겠어요. 최악이야.”
2개월 가까이 같은 집에서 사는 강혁과 진우는 서린의 입맛이 심하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고 안다. 그런데도 맛없다며 밀어내는 이유라면-.
“혹시 삼계탕 때문에 그러세요?”
강혁의 물음에 서린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빙고~! 당연하죠. 자자, 얼른 계산하고 가자고요.”
“…….”
역시 그랬군.
차기 점심인 삼계탕에 머리와 마음이 팔려, 빈대떡은 성에 안 차는 서린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도착한 삼계탕 가게. 지금 시각 오후 2시, 식당가가 붐비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서린 일행 넷은 쉬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삼계탕도 빨리 나왔다.
따끈한 국물과 쫄깃한 고기 그리고 달콤한 냄새의 향연. 빈대떡으로 소리치는 뱃속이 진정이 됐던 강혁과 진우지만, 닭고기에 눈이 반짝반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손으로 닭다리를 북북 뜯어서 쩝쩝대며 먹는 강혁과 진우, 손으로 뜯어서 젓가락으로 나눠 먹는 서린, 그리고 젓가락만 사용하는 정 순경.
아마, 정 순경으로서는, <누군가를 의식한 나름대로 고상한 행동> 이리라 여겨진다.
젓가락으로 먹던 서린, 안 되겠는지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기어이 양손으로 닭을 뜯는다.
근데 이상하다. 분명 꽉 잡고 있는데도 고기가 튕겨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같이 식사하던 세 일행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덕택에 한참 닭고기를 뜯던 서린도 덩달아 멈췄다.
“왜들 그래요?”
“차 형사님, 고기 멀쩡하네요?”
진우의 물음을 들은 서린, 물휴지에 손을 닦은 뒤 주머니를 뒤져서 안경을 꺼내 끼고는 고기를 속속들이 살폈다.
“안 익었어요? 잘 익은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망가지지가 않잖아요.”
“저도 진우 씨의 말에 동의해요. 유리도 금을 내는 손인데 고기가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해요, 차 형사님.”
정 순경의 덧붙임을 들은 서린은 가만히 생각하다 느닷없이 대소를 터트린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왼손 손등으로 입가를 가린 서린은 터진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다행히 식당 안에 손님이 몇 없어서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아무리 저라 해도 그냥은 무리죠! 태권도 배울 때 <기력>이라는 것의 흐름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 때문에 돌려차기 한 방으로 철문 넘기는 게 가능했지요.”
“아하.”
“난 로봇도 사이보그도 아니거든요? 순수한 발차기로 철문을 부수려면, 전 세계 모든 무술을 마스터하지 않으면 안 될 걸요?”
대답을 끝낸 서린은 식사를 이었다. 기력이라는 것으로 모든 상황을 납득이 가도록 만든 덕에, 다른 일행도 의구심을 털고 식사를 이었다.
1시간 뒤.
식사를 끝낸 넷은 집으로 돌아왔다.
“정 순경, 자고 갈래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정 순경은 서린의 제안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같이 밤을 샜으니 피곤한 것이다.
대문을 넘으며 하품을 크게 한 둘은 1층 침실로 들어가는 순간 곯아떨어졌다.
반면 비행기로 서울까지 오는 동안 눈을 좀 붙였던 강혁과 진우는 서로를 바라본다.
오후 3시, 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형, 우리는 뭐 하지?”
“글쎄. 나갈까? 아니다. 우리도 씻고 자자.”
비오는 바깥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
띠리리리리리링.
누군가의 PDA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2층 주택 전체를 뒤흔들었고, 소리에 깬 서린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누구 거야!”
눈도 안 뜬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서린은 PDA의 신호음이 자신의 것과는 다르다고 파악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기 위해 귀를 쫑긋거렸다.
잘 들어보니 정 순경의 바지주머니에서 난다.
서린은 손을 뻗어 PDA를 꺼내서 손으로 화면을 톡 두드린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상태로, 서린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입을 연다.
“예, 정수연 순경 PDA입니다. 저는 정 순경이 감시원으로 붙어 있는 차서린 형사입니다. 이곳은 제가 사는 집이며 우리는 사흘을 홀딱 세었습니다. 그래서 정 순경은 제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할 말이 있으신 분은 모레 다시 연락주십시오. 졸리므로 이만 끊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뚝.
화면을 두드려서 전화를 끊은 서린은 PDA를 정 순경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뒤로 휙 쓰러졌다.
하지만 사태는 그대로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산에 버린 담배꽁초의 남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산 전체를 태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번졌다.
모레 다시 연락 달라던 서린의 말을 귀담아들은, 서린의 상대였던 정 순경의 어머니가 날짜에 맞춰 연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 모녀는 영상전화로 다투는 중이다.
“외박이라는 것을 모르던 애가 외박을 하니 하는 말이잖아! 큰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OK인거니, 넌?”
“큰아버지이기 이전에 청장님이셔. 나보다 직위가 훨씬 높으신, 경찰청의 총사령관님이시라고요.”
“그래서 외박을 했다는 거니? 누구랑 있었어!”
이쪽도 의심의 구렁텅이.
“누구랑 있기는 누구랑 있어? 차 형사님이랑 다른 형사님들이랑 같이 있었지! 현장수사를 했다니까요? 말했잖아, 나 감시원 자격을 부여받았다니까?”
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만 같은 어머니다.
“너까지 밤을 샐 이유가 어디 있다고!”
“차 형사님이 워낙 범인들을 두드려 패서, 두드려 패지 못 하게 하려고 내가 있는 거라니까? 런던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사람이 바뀌었다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한 달 넘게 잘 있어.”
하루에 한 번씩 바뀐 이유, 성별에 있다.
“무슨 소리니, 그건. 어쨌든, 알아들었으니 집에 들어와.”
“못 들어가요.”
“또 왜.”
“비상 걸려서 경찰청 와 있어요. 끊을게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정 순경은 PDA를 주머니에 넣었다. 바로 옆에서 눈으로는 TV 화면을 보고, 귀로는 대화를 다 들어버린 서린이 웅얼대듯 말한다.
“어머니께서 꽉 막히셨네요.”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차 형사님, 혹시 우리 엄마랑 통화한 적 있어요?”
“없어요.”
목요일 늦은 밤의 통화는 기억에 없는 그녀다. 잠결에 받았으니 그럴 수밖에.
“엄마는 차 형사님이랑 통화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요? 난 모르겠는데.”
글쎄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니깐.
전화로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을 가진 통화라는 것에 빗대어 봤을 때, 서린만 일방적으로 말하고 끊어버린 상황을 두고 통화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엄마가, 일방적으로 내쏘고 끊으셨다고, 화를 마구 내시는 거 있죠? 차 형사님, 정말 몰라요?”
“모른다니까요, 저는.”
서린이 자꾸 모른다고 내빼자, 정 순경은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는 모르는 일에요.”
“정말이에요, 진우 씨?”
“제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혹시, 차 형사님의 남자무신증에 전염된 건 아니겠죠?”
“그랬다면 친구하자는 제안을 거절했죠. 당연한 걸 왜 물으세요? 그럼 누구지? 부재중인 것도 아닌데.”
정 순경의 꿍얼거림을 들은 진우, 고개를 갸웃대다가 다시 묻는다.
“잠깐만, 언제라고요?”
“목요일 밤 11시 45분이요. 집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부재중이 아니거든요. 그럼 누가 받았다는 건데.”
“확률로 봤을 때 차 형사님이 가장 높지 않나요? 차 형사님이랑 같은 침대에서 잤었으니까.”
“차 형사님은 전혀 모르는 일이래요. 엄마는 차 형사님이 전화를 받아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다고,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형사를 하냐고 화를 내시고, 정작 차 형사님은 기억이 없다고 하시고. 누구 말이 맞을까요?”
“음~!”
진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 순경이 내준 문제 푸느라 바쁜 탓이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맞는 거 같네요.”
진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서린이 잠결에 전화를 받은 것으로. 그러니 기억에 없을 수도 있는 것으로.
“그럼 그렇다고 하죠, 뭐. 머리 아파요.”
“하핫.”
진우는 슬쩍 웃은 뒤 화면을 두드려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