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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susy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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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영어: Barack Hussein Obama | |
임기: | 2009년 1월 20일 (예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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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 조 바이든 |
전임: 조지 W. 부시(제43대) | |
출생: | 1961년 8월 4일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
정당: | 민주당 |
종교: | 개신교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
배우자: | 미셸 오바마 |
자녀: | 말리야 오바마, 사샤 오바마 |
서명: |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영어: Barack Hussein Obama II, 1961년 8월 4일, 하와이 주 호놀룰루 ~ )는 미국의 정치인으로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였다.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로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제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케냐 출신으로 케네디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살때 부모의 이혼과 그 직후 어머니의 인도네시아 거주 동행 등 다양한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다문화 가정이나, 한때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 대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수학하였고, 다인종이 공존하는 도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로 편입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을 수학하였고, 졸업 후 시카고 시의 빈민가에서 인권 운동가로 맹활약하였다. 그 이후에는 탁월한 학업 성취를 발휘, 1991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술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그 직후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오바마는 시카고 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독교계의 자선 봉사 단체 및 시민 법률 상담 활동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다졌고, 1990년대에 지역 인권 변호사로 그 명성을 드높였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법과 대학의 인기 전임강사로서 헌법과목을 지도하여 학술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96년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민주, 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대표)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활발한 입법 활동으로 유명세를 드높였다. 2004년 11월의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일리노이 주 대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70%의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라크전에 강력하게 반대[1]한, 유일한 개혁적 아프리카계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2004년 8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전당대회 기조연설과 2004년, 2006년 선거전 등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대중연설 능력과 열성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7년 2월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길고 치열한 경선 끝에 2008년 6월 3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당의 공식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으며 2008년 8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에 우세를 보이며 일찌감치 대세론을 세웠다. 그러나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의 세라 페일린이 지명되면서 한때 매케인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양측의 치열한 선거전, 특히 공화당 측의 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2008년 11월 4일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두배가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232년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 인종 대통령으로 당선을 확실시하였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시절부터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거듭 반대해온 그는, 집권시 2008년 3월까지 이라크에 파병된 자국 군인들의 완전한 철수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국민 건강보험 혜택(당선시 그의 첫 임기 말까지)과 대학 교육 비용 절감 및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금제도 개편 등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들을 추진하고, 또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의 조속한 비준과 더불어 에탄올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며, 초고속통신망의 조기 구축을 통한 지식정보화 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지나치게 보수적이면서 땅에 떨어진 워싱턴 D.C. 기성 정치권의 신뢰 회복 및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또한 그는 동성결합과 낙태를 지지하며, 줄기세포연구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찬성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 하지만 반대자(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그의 핵심공약들과 그 실현 가능성, 특히 추진 비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2008년 2월 11일, 오바마는 자신이 속한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발표문에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현 미국 정권의 불안한 접근방식 등으로 인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보유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북한에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이 집권하면,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할것을 공언했다.[3]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에서는, 체결시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협정이 될것이라며 비준 반대 및 재협상 입장을 밝혔다. 특히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파는 만큼 미국도 한국(시장)에 (자국의)자동차를 팔수 있어야 한다'며 자동차시장분야에 문제를 집중 제기하였다.[4]
버락 오바마는 현재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투표층과 투표율은 젊은층과 여성 및 사회적 소수계층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3일에 치러진 아이오와 주의 민주당 당원대회(caucus)에서 38%를 득표하여 30%를 득표한 존 에드워즈와 29%를 득표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하였다.[5] 이후, 2008년 11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1월 현재, 미국 대통령 당선자. 조셉 바이든(Joseph Biden)을 자신의 부통령(running mate)으로 지명했다. [6]
가족으로, 부인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 1964년 1월 17일 출생, 전 시카고대학교병원 부원장)여사와 두 딸들(말리아, 사샤)이 함께 살고있다.
저서의 내역은 한국어판을 기준하였다.
2008년 4월 기준, 한국어판 관련서적 내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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