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지난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9명 연방대법관의 만장일치로 그동안 진행되어 온 P2P 서비스 Grokster에 대한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하고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미국에서는 2001년 이후 P2P 서비스와 관련한 저작권 침해소송이 Napster 사건, Aimster 사건, Grokster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방식에 대한 법적 책임 유무가 다투어져 왔다. 특히 Grokster 항소심 판결로 인하여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 P2P 서비스제공자의 경우 단순 컴퓨터 프로그램 배포자로서 이용자들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간접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올해 3월 29일 심리개시를 결정하였고 결국 새로운 P2P 기술의 진보와 저작권과의 충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다[MGM Studios, Inc. v. Grokster, Ltd., 2005 U.S. Lexis 5212(2005)].
P2P 서비스는 그 동안 사용자가 중앙서버에 접속하여 저장된 정보를 제공받는 기존의 네트워크 방식(server to client)에 비하여 사용자들의 각 컴퓨터가 중앙서버의 역할을 하여 이용자 상호간에 파일을 직접 공유할 수 있는 방식(peer to peer)을 말한다. 위 Grokster는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형 P2P 방식으로서 음악파일의 리스트나 이용자의 접속정보를 제공하는 중앙서버가 존재하는 혼합형 P2P 방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P2P 방식은 인터넷에서의 자유로운 정보 공유라는 면에서 매력적인 기술 진보로 평가되는 동시에 그에 따른 저작권 침해 등의 법적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II. 사건의 개요 및 쟁점
Grokster는 저작권자들에 의하여 Napster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자 중앙서버의 역할을 없애고 소프트웨어 공급만을 통하여 단지 네트워크상에서 이용자들이 파일을 공유하도록 하여 Napster의 대안을 제시한 대표적인 서비스이다. 본건의 원고들은 음반업자 등이고, 피고는 Grokster와 StreamCast 등 P2P 프로그램을 배포하는 서비스 제공자들이다. 피고회사들은 모두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패스트트랙(FastTrack)이라는 동일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 작동원리는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고 이용자들의 컴퓨터 중 대역폭 등이 우수한 컴퓨터가 슈퍼노드(supernode)가 되어 서버의 역할 일정부분을 나누어서 대신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권화된 네트워크(decentralized network)에서는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파일이 복제되는지 전혀 알 수 없고 단지 프로그램 공급자로서 이용자들의 이메일 및 회답을 통하여 이용 현황을 알고 있었다.
본 판결에서의 주된 쟁점은 이용자들의 무단 파일공유에 의한 저작권 직접침해가 인정됨을 전제로 서비스 제공자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따른 프로그램 배포자로서 저작권 침해의 간접책임, 즉 미국 판례법상 기여책임 및 대위책임이 인정될 것인지 여부이다.
III. Grokster 서비스제공자에 대한 법원의 판단
1. 항소법원의 판단
제9항소법원은 2004. 8. 19. 위 Grokster 서비스제공자에게 Sony 판결에서 제시된 기여책임 기준을 토대로 저작권 침해의 간접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즉, 기여책임의 성립요건은 직접침해행위를 인식하고 그 침해행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을 것인데, Sony 사건[Sony Corp. of America v. Universal Studios Inc.,464 U.S. 417 (1984)]에서 Sony사가 생산하는 물건의 용도가 상당부분 비침해적인 경우(substantial non-infringing use) 이용자들의 구입 이후 침해행위에 대한 추정적 인식(constructive knowledge)만으로는 책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구체적인 침해에 대한 인식을 요한다는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프로그램도 용도 상당부분이 비침해적인 경우로서 피고들이 저작권 침해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정을 안 것만으로는 책임을 지울 수 없고 행위 당시에 구체적인 침해에 대한 실제인식(actual knowledge)이 요구된다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실제 인식이라는 요건은 피고가 자신이 기여하고 있는 침해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하여 행동할 수 있을 때에 인식하는 것을 요하므로 피고들이 설령 구체적인 침해행위를 인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막기 위하여 달리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기여책임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대위책임에 관하여 우선 피고들이 광고 등으로 수입을 얻은 것은 인정되지만 이용자들의 직접침해행위에 대한 통제할 권리나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 책임을 부인하였다.
2. 연방대법원의 판단
연방대법원은 2005. 6. 27. 대법관 9명의 만장일치 판결을 통하여 항소법원이 Sony 사건을 잘못 해석하였다고 지적하면서, 피고측은 단순한 프로그램 배포를 넘어서 이용자들의 저작권 침해를 야기하거나 조장할 의도를 가지고 그로부터 광고수입 등의 이득을 취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그 침해에 대한 의도에 초점을 맞추어 제3자인 이용자들의 제품을 이용한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위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는 영미법의 특허권 및 저작권 침해 사안에 있어서 기존에 인정되던 “침해행위에 사용된 물품의 배포자가 예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고 등을 통하여 유발한(not only expected but invoked by advertisement)” 침해에 대하여는 책임이 인정된다는 소위 inducement theory[Kalem Co. v. Harper Brothers, 222 U.S. 55(1911)]을 토대로 한 것이다.
즉, 항소심에서 인용한 Sony 판결이 다른 유형의 기여책임 법리를 적용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침해행위를 야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경우까지 기여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피고측의 저작권침해와 관련된 의도는 다음의 세 가지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피고측은 이전에 존재하던 Napster를 대신하여 저작권 침해를 위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의도했고, 둘째, 그 소프트웨어 사용을 통한 저작권 침해를 줄이기 위한 매커니즘이나 파일 필터링을 위한 시도를 전혀 기울이지 않았으며, 셋째, 광고 공간을 판매하고 소프트웨어 화면상에 광고를 운영함으로써 더 많은 프로그램 사용을 통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관계를 토대로‘침해행위를 유발하려는 의도의 존재’가 인정되고 다른 증거에 의해 침해행위에 적합한 수단의 배포 및 실질적인 침해행위의 발생이라는 요건이 모두 충족되므로 피고들에게 기여책임을 인정하였다. 결국 정당한 사용과 불법적인 사용이 모두 가능한 P2P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배포하더라도 이용자들의 저작권 침해를 위한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도가 확인된다면 서비스제공자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간접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IV. 맺음말 - 우리나라에서의 P2P 서비스에 대한 법적 규율 모색
본 판결은 Gnutella 방식에 기초한 순수형 P2P에 대한 미국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연방대법원은 상당수준 적법한 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를 위한 사용을 광고하거나 방법을 알려주는 등 이를 조장하려는 적극적 의도가 보이는 경우에는 그 책임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 판결은 향후 전세계적으로 관련 사건에 있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다만 이미 네덜란드에서 소위 KaZaA 사건에서 서비스가 음악파일의 교환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 프로그램이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다운로드받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책임을 부인한 상고심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소리바다3 및 eDonkey 등 순수형 P2P에 대한 법적 평가를 위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하급심 판례로 중앙서버의 역할이 남아있는 혼합 P2P의 일종인 소리바다1에 대하여 민사와 형사 사건간에 다른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즉 민사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05.1.25.선고 2003나80798 판결)에서 서비스 운영자는 사용자들의 저작권 침해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방지할만한 아무런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파일교환에 필수적인 중앙서버를 운영하여 침해행위를 용이하였으므로 방조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용하였으나, 형사 항소심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05.1.12.선고 2003노4296 판결)에서는 위 서비스가 비침해적 용도로 사용될 개연성이 높고 피해자의 구체적인 침해행위의 통지가 없어 침해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침해행위를 방지해야 할 법적 작위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중앙서버가 없는 P2P의 경우에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이용자들의 저작권침해를 조장하려는 의도를 중시하여 저작권 침해의 간접책임을 인정하려는 미국의 연방대법원 위 판결 취지에 비추어 위험원의 지배에 근거한 보증인의 지위에서 작위의무를 인정할 여지는 없는지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고 본다. Kennedy 연방대법관이 위 판결에 앞서 “허가받지 않은 복제 콘텐츠가 업체의 자본의 일부로 사용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지적한 것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현재까지 P2P 기술이 인류가 개발한 가장 효율적인 대량정보 전달망의 미래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장기적으로는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와 함께 P2P 관련 기술의 발전을 제도적으로 조화할 수 있도록 복제사용료 등의 입법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오디오지문(audio fingerprinting) 인식기술 등으로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한 기술적 필터링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정보 공유의 인터넷 정신의 구현과 함께 저작권 보호를 통한 창작의 장려를 균형있게 도모하려는 법률가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