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46절 – 52절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고 부르시되 우리가 가장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을 때에 만나시고 부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다른 길이 있다고 여겨지면 그리로 향하고자 발버둥치기 때문입니다. 사방에 벽이 둘러치고 나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아니할 때 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찾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생에서 평탄한 삶을 살고 그 결과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리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칮지 않는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기에 우리를 지켜 보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사방이 막히고 캄캄할 때도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세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소경으로서 이름도 없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또 갈릴리로 가실 때 여리고를 자주 통과 하셨을 것입니다. 소경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또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예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날 하나님이 바디메오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주십니다. 어떤 자들에게는 기도하고픈 마음을 주시고 또 어떤 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만 한다고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은 나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원망합니다.
바디메오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바로 겸비한 사람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처럼 유명한 자들은 마음에 정직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오신 분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은 정직함이 없기에 소경들입니다. 소경에서 치유되는 것은 곧 정직함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들을 때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즉 다윗의 자손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찾았고 구원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소경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 예수님을 찾아 가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만나주시고 구원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육의 구원을 바라는 외침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꾸짖고 나무랍니다. 그들은 바디메오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디메오는 더욱 큰 소리를 외칩니다. 우리도 사방이 막혔다고 느낄 때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멸시할 수 있습니다. 그럴찌라도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욕하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 보시는 때까지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십니다. 우리로 부르짖을 마음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이 바디메오를 부르시자 그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버립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데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디메오는 소리나는 쪽을 향해서 담대하게 뛰어갑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되 담대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바디메오를 보시는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구하는 바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구원 즉 치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바디메오는 치유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바디메오만큼 간절하고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을 오늘 우리가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