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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휴거(The Rapture of the Church)
- By Linton M. Smith -
1. 교회의 휴거
우리는 교회의 휴거에 관해 공부하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참조구절은 고린도전서 15:51~55, 데살로니가전서 4:14~18, 요한계시록 4:1~4, 요한복음 11:25~26, 솔로몬의 아가 2:6~10, 욥기 37:1~4입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전 15:51~55)
“14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4~18)
“1 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2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3 앉으신 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왕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는데 보기에 에메랄드 같더라.
4 또 그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관을 썼더라.”(계 4:1~4)
“25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요 11:25,26)
“6 그분께서 왼손으로 내 머리를 고이시고 오른손으로 나를 껴안으시는도다.
7 오 너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노루들과 들의 암사슴들을 두고 너희에게 당부하노니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이가 기뻐하기 전에는 그분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지니라.
8 ¶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분께서 산들 위로 뛰어 오시며 작은 산들을 뛰어넘어 오시는도다.
9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젊은 사슴 같으시니, 보라, 그분께서 우리의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
10 나의 사랑하는 이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아 2:6~10)
“1 이 일로 인하여 내 심장도 떨리고 제 자리에서 벗어났느니라.
2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
3 그분께서 그 소리를 온 하늘 아래에 이르게 하시며 자신의 번개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느니라.
4 번개가 있은 뒤에 한 음성이 우렁차게 울리나니 곧 그분께서 자신의 뛰어난 음성으로 천둥소리를 내시는 것이라.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분께서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아니하시리라.”(욥 37:1~4)
이렇게 교회의 휴거와 관련한 참조구절은 신구약에서 총 5개를 들 수 있습니다.
단,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절은 대체적으로 사용되는 구절들이고, 나머지는 잘 인용되지는 않지만 성경을 세밀하게 연구할 때 분명 휴거에 관한 구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휴거는, “찬송받으실 유일한 권능자이시며 왕들의 왕이시며 주들의 주이신 분”께서 돌아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모든 참된 신자들에게 대한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는 주제입니다. 그분께서 곧 돌아오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광스런 사건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 우리 모두 이 영광스러운 휴거에 대해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가 그분께 맡긴 모든 것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확신(딤후 1:12)을 가지고,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나도 이 일들로 고난을 당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며 또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딤후 1:12)
더 나아가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에 대해 회계 보고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벧전 4:10, 고전 4:1,2)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벧전 4:10)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2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 4:1,2)
우리는 주님 앞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게 될 때 부끄러움을 당하기 원치 않으며 또한 그분께서 우리를 수치스럽게 여기시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다음의 훈계를 숙고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하시니라.”(막 8:38)
2. 그리스도의 몸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천하고 죄로 가득 찬 몸을 그분 자식과 같은 완전하고 죄 없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땅을 떠나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하늘에 가서 우리의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교회 시대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든 거듭난 신자들로 구성된 영적인 몸을 계속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땅 위에 존재하는 지역 교회와 이 영적인 몸을 혼동하지 말 것).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실 때 성령께서는 그를 영적인 몸의 한 부분으로 만드시고, 하늘에 그의 고향을 마련하십니다(요 14:1~3, 엡 2: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한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또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 14:1~4)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엡 2:6)
이 영적인 몸의 구성에 사람의 외모에 따른 차별이란 전혀 없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38)
이와 대조적으로, 이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방인의 사도)에게 계시될 때까지는 큰 신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에베소서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런 까닭에 너희 이방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노니
2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으리라.
3 곧 계시로 그분께서 내게 그 신비를 알리셨나니 (그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말로 적은 것과 같으니라.
4 그것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읽을 때에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깨닫게 되리라.)
5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 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는데
6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7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엡 3:1~7)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이 영적인 몸의 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2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러 지체이니라.”(고전 12:12~14)
물론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22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2,23)
교회 시대는 약 2,000년 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행전 1장에서 하신 약속의 성취로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시느니라.”(행 1:5)
성령께서는 신자들을 그분의 몸인 교회(하늘과 땅 위에 있는 모든 거듭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몸)에 침례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신자들은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초자연적인 몸이 완성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통 “휴거”라고 부릅니다. 이 “휴거”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휴거라는 말은 ‘멀리 데려감을 당함’, ‘위로 낚아 채여 올라감’을 의미합니다(랜덤 하우스 웹스터 사전 1992년).
3. 사망의 권능
신자가 죽을 때 그의 혼은 하늘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몸은 무덤에 가서 썩게 됩니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스런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사망을 통해 사망의 권능을 가진 사탄을 멸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취하지 않으셨다면, 마귀는 여전히 우리의 몸을 무덤에 가두어 놓을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갈보리 이전에 사탄은 사망에 대한 권능을 가졌지만 갈보리 사건 이후에 사탄은 그 권능을 잃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 2:14)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계 1:8)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면 그분의 권능으로 우리의 몸은 무덤에서 일어나게 되며 우리는 그분과 함께 끌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 장면은 유다서에 기록된 것과 유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장 미가엘도 모세의 몸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며 논쟁할 때에 감히 그에게 욕설로 비난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르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 원하노라, 하였느니라.”(유 9)
모세가 죽었을 때(신 34:5,6) 모세를 장사 지내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유다서에 보면 우리는 주께서 나중에 모세의 몸을 부활시켰음을 배웁니다.
우리는 변형 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마 17:1~5).
“1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사
2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3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그때에 베드로가 응답하여 예수님께 이르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온즉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게 하옵소서, 하더라.
5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보라, 그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므로”(마 17:1~5)
주님께서는 여기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 모세의 몸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것을 하셨을 때 천사장 미가엘은 그의 몸을 일으키는 일로 마귀와 다퉈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 당시에 아직 사망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몸을 주장할 권리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다퉜던 것입니다(주께서는 아직 그 몸의 구속에 대한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주께서는 단순히 마귀를 꾸짖으시고 어쨌든 모세의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구속에 대한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아무런 다툼이 없이 모든 신자들의 몸을 당장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은 그분의 말씀의 권능으로 무덤에서 문자적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몸은 예수님 자신과 같은 새롭고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휴거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이나 “삼위일체”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 또한 성경에 등장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이 성경이 교리를 너무나 잘 묘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용할 것입니다.
4. 우리의 죽지 않을 몸
부활한 몸은 휴거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의 몸이 무덤으로부터 들려 올라가는 순간, 그 몸은 변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부활한 몸을 가지고 우리는 셋째 하늘에 올라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고전 15:42~52).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43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44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46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
47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48 땅에 속한 자들은 또한 땅에 속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과 같으니
49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5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42~52)
5. 바울에게 계시된 신비
신약에 언급된 일곱 신비들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에 형성에 관한 것입니다(교회 시대). 그것은 사도 바울에 와서야 비로소 계시되었습니다(롬 16:25, 엡 3:1~7). 바울에게 계시된 또 다른 신비는 성도들의 휴거에 관한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전 15:51)
성경은 우리의 새로운 몸이 어떠한 피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서 섬기던 중에 휴거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고전 15:52)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의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52)
그들 위에는 옷만이 남이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은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사건이 될 것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과 함께 있게 될 영광스런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참된 인생이 시작될 것이며 고난과 시련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영감받은 구약 대언자들은 이러한 놀라운 사건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에게 계시하실 때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들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기록했다는 것은 성경의 영감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 그리고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 1: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구약 대언자들이 종종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기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1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는지 탐구하였느니라.
12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것들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수행하였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것이니라.”(벧전 1:12,13)
구약 대언자들은 교회 시대와 교회의 휴거에 대해 어떤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전 15:51)
바울은 우리가 모두 죽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51절에 “잠자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1:11~14에서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애통해하는 자들에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느니라.”(요 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가 죽었음을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신자의 미래 부활에 대해 쓰고 있는 바울은 우리가 “모두” 잠자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모든 성도들이 죽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복된 주님께서 우리의 생애 중에 돌아오신다면 우리는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속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변화되리라.”
휴거가 일어나면 어떤 신자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게 될 것이며, 어떤 자들은 살아있는 채로 들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죽을 몸들은 죽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영광스런 몸이 될 것입니다(요일 3:1~3, 빌 3:20,21). 이 모든 일들은 눈을 깜짝거리는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52)
“눈 깜짝할 사이에”라는 것은 눈을 실제로 깜짝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눈을 깜짝거리려고 시작할 때의 눈의 움직임입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약 1초의 천분의 1 정도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빠른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휴거가 얼마나 순식간에 일어날 것인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당신과 같은 테이블을 가로질러 앉아 있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면, 만약 그들이 눈을 깜짝거렸다 할지라도 당신의 사라짐을 인지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나팔 소리(The Trump of God)
52절에 나오는 나팔 소리라는 단어는 적지 않은 성경 교사들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문맥을 살펴봄으로써 그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기보다는 변개된 성경들을 따라 그 단어를 나팔(trumpet)로 바꿔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확한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안에 있는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마지막 나팔 소리”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나팔 소리(trump)는 단순히 나팔의 음성입니다.
어떤 자들은 고린도전서 15:52에서 언급하는 나팔은 계시록 11:15절에 나오는 대환란이 끝날 때 부는 마지막 나팔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말하고 있음에 주의하십시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 KJV : And the seventh angel sounded; and there were great voices in heaven~
* NIV : ~ The seventh angel sounded his trumpet~
마지막 나팔소리와 마지막 나팔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재림 때의 마지막 나팔이 내는 음성이라고 말하지 않고 휴거 때에 들려질 특별한 나팔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변개된 성경들은 여기에서 마지막 나팔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교회가 미래의 대환란을 통과할 것이라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퍼뜨리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교회는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the trump of God)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주님은 마지막 나팔(trumpet)이 울려 퍼질 때가 아닌 이 특별한 마지막 나팔 소리(trump)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at the last trump)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the trumpet shall sound)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52)
그분께서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말씀하기 때문에 그것은 나팔이 한 번 이상 울려 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기 위해 울려 퍼질 것이고, 다음은 살아 있는 성도들을 변화시켜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 울려 퍼질 것입니다.
6-2. 하나님의 나팔 소리(The Trump of God)
* 살전 4:16 "하나님의 나팔 소리"(the trump of God) = 고전 15:52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at the last trump: for the trumpet shall sound)"[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For the Lord himself shall descend from heaven with a shout,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15:51,52)
51 Behold, I shew you a mystery; We shall not all sleep, but we shall all be changed,
52 In a moment,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 for the trumpet shall sound, and the dead shall be raised incorruptible, and we shall be changed.곧 "호령과 음성과 나팔 소리"는 그분이 오실 때 세 가지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이 "나팔 소리"(trump)는 나팔이 내는 소리를 말하며, 정확한 관련 구절은 고전 15:52입니다.그러나 계8:6에 나오는 천사의 나팔과 같은 "나팔"(trumpet)과는 다른 단어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계11:15의 일곱 번째 나팔 소리는 대환란의 끝에 일어날 일입니다."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계8:6)And the seven angels which had the seven trumpets prepared themselves to sound."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니"(계11:15) And the seventh angel sounded; and there were great voices in heaven, saying, The kingdoms of this world are become [the kingdoms]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and he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살전 4:16과 고전 15:52의 나팔 소리는 계 11:15의 나팔이 아닙니다. 즉 전자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이고, 후자는 천사가 나팔을 불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전혀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또한 이 부분에서 계 11:15과 마 24:31의 대환란의 끝에 천사가 부는 나팔을 교회의 휴거시 들리는 나팔 소리(살전 4:16, 고전 15:52)와 혼동함으로써 환란통과설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음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계 1:10,4:1)이라 보이지만, 슥 9:14처럼 직접 부는 나팔 소리일 수도 있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계 1:10)
I was in the Spirit on the Lord's day, and heard behind me a great voice, as of a trumpet,"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계4:1) After this I looked, and, behold, a door [was] opened in heaven: and the first voice which I heard [was] as it were of a trumpet talking with me; which said, Come up hither, and I will shew thee things which must be hereafter.곧 그 음성이 마치 나팔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아시겠는지요가? 바로 "이리로 올라오라" 입니다.휴거를 알리는 신호는 하늘에서 나는 "호령"(shout)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즉 잠든 성도들의 몸이 먼저 들려지고 곧이어 살아 있는 성도들의 몸도 들려지면 그들의 몸은 새롭게 변화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빌3:20~21,롬8:29).그들의 몸이 상공으로 치솟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을 발하실 것입니다(계4:1~4).그분의 음성은 마치 나팔과 같을 것입니다. 스가랴는 이것이 계11:15의 일곱 번째 나팔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주}께서 그들 위로 나타나 보이시고 자신의 화살을 번개같이 나아가게 하시며 [주] {하나님}께서 나팔을 부시고 남쪽의 회오리바람과 함께 가시리로다."(슥9:14) And the LORD shall be seen over them, and his arrow shall go forth as the lightning: and the Lord GOD shall blow the trumpet, and shall go with whirlwinds of the south.시내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보라? (출19:16~19)
"16 ¶ 셋째 날 아침에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the voice of trumpet)가 심히 크므로 진영에 있던 온 백성이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려고 백성을 데리고 진영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라. 18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더라. 그곳의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출19:16~19)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이 음성을 들을 때, 천둥소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욥37:1~4,요12:28~29).
"나팔 소리가 오랫동안 나며 점점 더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으로 응답하시더라."(출19:19)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은 이리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들을 이름으로 불러 그것들을 밖으로 인도하느니라."(요10:3)
To him the porter openeth; and the sheep hear his voice: and he calleth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eth them out.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요 10:14)
I am the good shepherd, and know my [sheep], and am known of mine.그러므로 주께서 부르실 때 구원받은 우리는 분명 어딘가에서 그 소리를 들을 것이고 우리는 분명 어딘가에서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 나팔 소리가 내 혼 안에서 울릴 때 우리는 즉시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7.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어야 한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52)
여기에는 죽은 성도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죽은 성도들과 살아있는 성도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대화하실 때 말씀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24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 하매
25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요 11:24~26)
첫째 부류의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죽어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부류의 신자들은 결코 죽지 않을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아직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
고린도전서 15:52에서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변화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주목하십시오. 바울은 열렬하게 자신의 생애 동안 휴거가 일어나기를 고대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죽음을 보기 전에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자신을 하늘로 데려가시기를 바라는 기대와 소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바울의 깊은 열망은 그에게 “의의 왕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딤후 4: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冠)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 4:8)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다시, 우리는 휴거될 두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첫 번째 부류인 “이 썩을 것”은 죽어 있는 신자들을 언급합니다. 몸이 무덤에 있는 자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그들은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무덤에서 나오는 새로운 몸은 무덤에 들어갔던 썩을 몸이 아닙니다. 그 몸은 결코 늙지 않고, 슬프지 않고, 고통당하지 않고, 죽지 않을 몸입니다.
그 구절의 나머지는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둘째 부류인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mortal”(죽을) 이라는 단어는 “죽음에 종속함”(subject to death-우리 육신의 몸에 속하는)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일시적으로 죽음에 종속하는 몸에 거하는 죽은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애 가운데 돌아오시면 우리는 변화될 것이고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몸은 죽음에 종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 이상 죽을 수도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0:36).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 15:54)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죽음은 승리 속에 삼켜짐을 당할 것이고, 우리는 전여 결코 불러 본 적이 없는 승리의 노래를 예수님 안에서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승리를 얻으셨고, 그 승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기록합니다.
“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5~57)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시점에 아직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는 사망의 어떤 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무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에게 어떠한 승리도 쟁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덤은 그들을 가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말씀의 권능으로 무덤에서 그들의 몸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힘은 율법이며, 그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요일 3:4).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이며, 모든 사람들이 죄인임을 알려주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또한 롬 4:15, 5:13, 그리고 7:7을 보십시오.)
휴거가 되면 우리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그때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육신에 대해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상기하는 모든 신자라면 다음의 구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고전 15:58)
8. 복된 소망
우리는 지금 데살로니가전서 4장으로 돌아가서 교회의 휴거라는 놀랍고도 기이한 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13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잠든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요 11:11~14). ‘위로하라’는 것은 권고하거나 격려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가 구원받았다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떠나갔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보다 그들의 복된 구주께서 함께 거하시는 그곳이 훨씬 행복합니다.
반면에 구원받지 않은 자가 죽어 그들의 사랑하는 자를 떠나면 남은 자들에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주게 되며 큰 비극이 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믿는 자에게 있는 위로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없고 어떤 소망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 바울은 말합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엡 2:12)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불 호수에서 영원히 형법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대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의 풍요함이 준비된 하늘에 가게 됩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소망은 바라는 무엇인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쓰이는 소망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것으로 결코 그저 어떤 것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소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자신감, 확신, 또는 기대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바라는 것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분께서 오신다는 사실을 절대적인 확신과 예상과 함께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른 바 그리스도의 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다른 거짓 종교들은 구원이 믿음과 행위에 의해 받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의 소망에 대해서도 “가능성”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단어를 결코 그런 측면에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일 5:12~13). 그의 확신의 토대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 5:12,13)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날 우리에게 새롭고 죄 없는 영광스러운 몸, 즉 주 예수님과 같은 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돌아오실 것임을 압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낡고, 죄 많고, 일시적인 몸을 벗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신자들은 아직 유혹과 싸우고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모두 다시는 죄에 복종하지 않는 새롭고 죄 없는, 완전한 몸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주님을 온전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언젠가 그분께서 돌아오셔서 우리에게 그 몸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합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하실 것입니다.
“소망”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몇몇 다른 예들이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어떤 자들은 이러한 구절들을 행위 구원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구절이 아님을 압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미래의 사건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가지도록 가르쳐 줍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23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롬 8:23,24)
어떤 자들은 “소망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는 이 구절을 우리는 단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소망할 수 있다(역주: 구원이 여전히 희망사항 단계로, 아직 구원받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23절과 24절을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압니다.
신자들의 혼은 지금 구원받은 상태인 반면에 우리는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구속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주실 휴거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소망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 그는 우리가 입게 될 미래의 부활한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요일 3:1~3)
2절은 우리의 새롭고 영광스러운 몸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미래 사건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입니다.
“11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딛 2:11~13)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이 “복된 소망”은 우리에게 새 몸을 주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입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딛 1:1,2)
“영원한 생명의 소망”은 우리가 바라보는 복된 소망이며, 이때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새롭게 부활한 몸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혼은 영원한 생명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현재 시제). 그러나 우리의 몸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우리의 소망은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결코 죽지 않을 몸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에 달려 있습니다. 약속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주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히 10:23).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히 10:23)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그 은혜로 인해 끝까지 소망을 가질지어다.”(벧전 1:13)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에 대해 끝까지”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소망하는 그 “은혜”는 새로운 몸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림은
4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에게 너희가 베푸는 사랑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요,
5 또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함이니 이 소망은 너희가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들은 것이라.”(골 1:3~5)
우리가 추구하는 이 소망은 이미 우리를 위해 하늘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RP서 돌아오셔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지금 하늘에 우리를 위해 쌓여 있다는 것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고 언제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얻을 것인지가 돼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될지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없고, 지옥으로 향해 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무덤을 제외하고 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일어나셨고 우리는 그러한 복된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13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느니라.
14 또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이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15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리니 이는 우리가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지 아니하셨느니라.
16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느니라.
17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
18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하였느니라.
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3~20)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은 그분께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이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소망도 가지지 못할 것이고 그들은 멸망할 것입니다(18절).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도 더 비참한 자들일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20절).
9. 우리의 지체와 다시 결합하다.
비록 신자의 혼은 지금 구원받은 상태지만, 그의 몸은 휴거 시에 구원받기를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살전 4:14)
고린도전서 15:1~4에서 바울이 제시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염두에 두고 데살로니가 지역에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잠든 자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이제까지 죽었던 모든 신자들의 혼을 다시 데려오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흠잡을 것이 없게 굳건히 세우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3:13)
신자가 죽으면 그의 혼은 몸을 떠납니다. 그 혼은 셋째 하늘에 가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됩니다. 그 혼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입혀 주실 때까지 거기에 남아있게 됩니다.
죽을 때 혼이 몸을 떠나는 또 다른 예를 창세기 3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더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하였더라.”(창 35:18)
다시 바울의 서신들을 보겠습니다.
“21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22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이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빌 1:21~24)
바울은 만일 그의 유일한 소망이 무덤에 가는 것이었다면 “죽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죽을 때에 자신의 영원한 본향인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있을 그곳을 얻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가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썩을 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가지 않습니다. 그 죽은 몸은 무덤으로 가지만 그 몸을 떠난 혼과 영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올라갑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8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6~8)
우리가 죽을 때, 우리의 혼은 우리의 몸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로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옥이 무덤이라고 가르치는 자들과 혼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무의식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예 : 찰스 럿셀의 이단,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헐버트 암스트로롱의 이단, 하나님의 교회). 신자의 죽음에 관한 한 다음 두 가지 사실은 매우 명백합니다.
1. 죽을 때 그리스도인의 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됩니다.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2. 지옥은 무덤이 아닙니다.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5,16)
바울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생애 가운데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 영어 단어인 “prevent”는 앞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오실 때에 아직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어 있는 자들보다 먼저 휴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 스스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무덤으로부터 문자적, 물리적, 신체적인 부활을 한 신자들을 향한 주님의 인격적, 물리적인 나타나심입니다. 이 휴거와 부활이 일어날 때 무덤은 문자적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을 때 일어났던 부활에 대해 읽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마태가 기록한 것을 보십시오.
“52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성도들의 많은 몸이 일어나
53 그분의 부활 뒤에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2,53)
이처럼 휴거는 동일하게 교회 시대의 끈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몸은 무덤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은 하나의 호령(a shout)과 함께 시작될 것이며(살전 4:1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모형인 사도 요한이 하늘에 들려 올라갈 때 들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계시록 4장).
요한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계4:1)
이것은 교회(그리스도의 몸)의 휴거를 알리기 위한 나팔 소리입니다. 계시록 11장에 두 번째 휴거가 일어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다시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들립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그리고 두 증인(모세와 엘리야)이 하늘로 들려 올라갑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이리로 올라오라, 하고 말씀하시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계 11:12)
저는 교회가 휴거 될 때에도 “이리로 올라오라”고 부르는 음성을 또한 들을 것으로 믿습니다. “살아있는 성도들”은 무덤에서 부활한 성도들을 따를 것이고 공중에서 함께 우리의 구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무덤이 이제는 죽은 자들을 붙잡지 못하고, 우리가 모두 자연의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하늘에 있는 본향을 향해 날아가게 되다니! 더욱이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분께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주님께서 또한 신자들 각각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해 양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가는 자 바로 그자는 도둑이며 강도이나
2 문을 통해 들어가는 자는 양들의 목자니라.
3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들을 이름으로 불러 그것들을 밖으로 인도하느니라.”(요 10:1~3)
확실히, 여기에 나오는 “양”은 신자들을 나타내고 있고 양을 밖으로 인도하는 것(leading our)은 휴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양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가!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날 린턴 스미스(이 시리즈의 저자)는 한 음성을 듣습니다. “린턴 스미스, 이리로 올라오라” 그와 동시에 그가 끌려 올라갈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눈 깜짝할 순간에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을 받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이며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신자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은 아마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들이 ‘천둥치는 소리’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내가 이미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하시니라.
29 그러므로 곁에 서서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천둥이 쳤다고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르기를,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하니”(요 12:28,29)
그 음성을 실제로 들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천둥소리 같은 음성만 들은 사람들은 잃어버려진 자들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님께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실 때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단순히 천둥소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을 실제로 듣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분께서 부르시는 말을 들었다면 그들도 또한 위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창 1:3, 시 33:9).
데살로니가전서 4:16은 우리에게 그분께서 “천사장의 음성”과 함께 내려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가엘은 성경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천사장입니다. 우리는 유다서 9절에서 그가 모세의 몸으로 인해 마귀와 다투는 것에 대해 읽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내려오실 때 천사장이 무슨 말을 할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마귀가 모세의 부활 때에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우리의 부활 때에도 어떤 방해를 시도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유다서 9절에서 했던 것처럼 미가엘은 동일하게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10. 우리의 대적, 마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을 주목하십시오.
“25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왕국마다 황폐하게 되며 스스로 분쟁하는 도시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붑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으면 너희 아이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들을 내쫓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으면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재산을 노략하겠느냐? 결박한 뒤에야 그가 그의 집을 노략하리라.”(마 12:25~29)
문맥 속에서 이 구절을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나 불결한 영을 지녔다고 고소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눈멀고 귀머거리가 된 사람으로부터 마귀를 쫓아내신 것을 보았습니다(22절). 그러나 그들은 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 마귀들의 통치자인 바알세붑(사탄의 또 다른 이름임)을 힘입어 마귀의 권능으로 그 기적을 행했다고 고소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강한 자”는 사탄이고 그의 집은 세상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바울은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강한 자의 재산은 사람들입니다.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후 4:4)
베드로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바울은 또한 “마귀의 덫”에 잡혀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딤후 2:26). 이 구절은 사탄에게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능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신뢰하는 모든 자는 그분의 피의 권능으로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게 되었습니다(요 12:31과 16:1을 비교).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공연히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 2:1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사탄을 정복하셨고, 그분께서는 지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러 돌아오실 때 문자적으로 사탄을 결박하실 것입니다.
“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2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계 20: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지상 왕국을 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께서 밤에 도둑처럼 오실 때에 발생할 교회의 휴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 5:2)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도둑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병사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그분을 잡기 위해 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치듯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막 14:48)
그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데려가기 위해 돌아오실 때 그분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를 선택할 것입니다. 즉 가장 예기치 못한 시간에 침입해 집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훔치는 도둑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몸을 낚아채시는 분으로, 무덤을 강탈하는 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유다서 9절에 있는 것처럼 다시 방해하려 한다 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거룩한 사명을 방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을 보았습니다. 그 구절은 나팔이 한번 울려 퍼질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의 무덤이 열려서 그들의 새로운 몸이 밖으로 나와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구름 속으로까지 날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팔이 다시 울려 퍼질 것입니다(이것이 마지막 나팔입니다. 고전 15:52). 그러면 모든 살아 있는 성도들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11. 함께 끌려 올라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16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가장 위대한 약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가족들을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이 한편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자들과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날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결국, 한 가족의 재회는 어머니, 아버지, 누나, 삼촌, 숙모가 없다면 완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눈물로 우리 가족이 하늘에서 재회하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미 예수님 안에서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슬퍼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살전 4:13,14).
17절에서 바울은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돌아오실 때, 모든 그리스도인도 주님과 함께 이 지구상에 돌아올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유업에 대해서 공부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통치는 우리가 벌어야 하는 보상입니다(딤후 2:10~13, 골 3:23~25, 롬 8:16!18). 영원한 생명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분과 함께 통치하는 특권은 우리의 행위에 달려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에서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을 만난다고 말하고 있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위해 돌아오실 때 땅에 발을 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분께서는 구름 속 어딘가에 계실 것이고 우리는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 갈 것입니다.
그 시기는 그분께서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돌아오시기 적어도 7년 전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지난 후에 그분께서는 올리브 산 위에 강림하셔서 이 땅에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이 완전히 분리된 사건은 재림 또는 주의 날이라고 불립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자신의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휴거라고 부릅니다. 둘째는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오셔서 이 땅 위에 자신의 천년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이 땅 위에 실제로 재림하시는 때에 대한 구절 : 슥 14:1~4, 계 11:15, 19:11~15).
12. 위로의 말씀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이 말씀들”(바울이 기록한 말씀들)은 구원받은 사랑하는 자들을 잃은 신자에게 큰 위로의 원천이 됩니다. “이 말씀들”은 이 낡은 세상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현 세상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자로 하여금 구속자의 돌아오심을 사모하게 하며 그로 인해 왕관을 얻게 합니다(의의 왕관, 딤후 4:8). 성경은 죽음에 닥친 신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가져다주는 세상에서 유일한 책입니다.
몰몬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로도 주지 못합니다. 탈무드(유대인들이 쓴)는 어떤 위로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회교도의 코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책들은 모두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가 하늘에 갈지 못 갈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카톨릭 교도도 마찬가지로 위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옥, 성경에는 없는 로마카톨릭의 발명품, 그것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회개한 혼들이 형벌의 시기를 거쳐 죄들을 정결하게 씻은 후 하늘에 갈 준비를 하는 죽음 후에나 가는 장소나 상태)
여호와의 증인도 지옥은 무덤이고 그가 죽으면 무덤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무의식적인 상태로 누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합니다. 무신론자도 확실히 어떠한 위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인생이 무로 끝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3. 구약에서 나타난 휴거
우리는 이제 구약에서 휴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을 둘 찾아 볼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솔로몬의 아가에 나옵니다. 이러한 것들을 쓴 구약 대언자들은 자기가 진정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수백 년 후에 사도 바울에게 계시될 때까지는 신비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아가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러브스토리입니다.
“8 ¶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분께서 산들 위로 뛰어 오시며 작은 산들을 뛰어넘어 오시는도다.
9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젊은 사슴 같으시니, 보라, 그분께서 우리의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
10 나의 사랑하는 이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
11 보라,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치고 사라졌도다.
12 땅에는 꽃들이 나타나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이르러 멧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8~12)
“나의 사랑하는 자의 음성”(8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령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묘사합니다. “보라, 그분께서 오시나니”(8절) 이것은 신부를 만나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창문”(windows-9절)은 하늘의 창들(창 7:11)을 통해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입니다. “격자창”(lattice)은 창의 빗장으로,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우리를 위해 내려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쳐다보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10절) 이것은 신부를 데려가시는 것을 나타내는 모형입니다. 11절과 12절은 휴거가 봄이나 여름철에 일어날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시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시작했고 아마도 동일한 시기에 끝날 것입니다. 즉 4월이나 5월일 것입니다.
“비도 그치고”(11절) 이것은 우리가 구약에서 볼 수 있는 “이른 비”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4월과 5월에 내리는 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휴거의 정확한 날짜를 맞히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때나 시기"(the times and the seasons)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살전 5:1,2).
“1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 5:1,2)
저는 솔로몬의 아가에 있는 이 구절이 신부인 그리스도의 몸이 신랑이 언제 오실지 기대할 수 있는 때와 시기를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1 이 일로 인하여 내 심장도 떨리고 제 자리에서 벗어났느니라.
2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
3 그분께서 그 소리를 온 하늘 아래에 이르게 하시며 자신의 번개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느니라.
4 번개가 있은 뒤에 한 음성이 우렁차게 울리나니 곧 그분께서 자신의 뛰어난 음성으로 천둥소리를 내시는 것이라.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분께서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아니하시리라.”(욥 37:1~4)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2절) 이 구절은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도들을 부르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분께서 그 소리를 온 하늘 아래에 이르게 하시며”(3절) 그 소리는 그분의 음성의 소리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온 하늘 아래”는 땅 위에 있는 백성을 겨냥한 그분의 음성의 소리를 언급합니다.
“그분께서 그 소리를 온 하늘 아래에 이르게 하시며 자신의 번개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느니라.”(3절) 욥기에 있는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휴거가 빛의 섬광을 동반할 것이고 그것은 온 세상에 드러나 보일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아마도 번개처럼). 그것은 뇌우와 같을 것입니다. 양극과 음극 전하가 구름 아래의 한 지점으로 발생하게 되고 거기서 우리가 번개라 부르는 자연 현상이 일어납니다. 전극은 아래로 흘러서 이온화된 입자의 구멍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번개가 치기 전에 무엇인가가 이온에 의해 형성된 이 관을 통해 올라갑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모으시기 위해 이 지구상의 대기권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뛰어난 음성으로 천둥소리를 내시는 것이라.”(4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천둥처럼 들릴 것입니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내가 이미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하시니라.
29 그러므로 곁에 서서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천둥이 쳤다고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르기를,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하니”(요 12:28,29)
주님께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실 때 아마 거대한 천둥 같은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은 아마 코발트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을 것이고 섬광을 동반한 번개가 온 세상에 보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한 관을 통해 셋째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분께서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아니하시리라.”(4절) 여기서 “멈추게”(stay)라는 단어는 “억누르다”(restrain) 또는 “붙들다”(keep back)를 뜻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실 때 그 어떤 것도 하늘로 가는 그 성도들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의 성도들은 땅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그분의 음성에 복종할 것입니다. 구름 속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올라갈 것입니다.
14. 결론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아, 당신의 생애 가운데 그분께서 오시기를 기대하는 바울처럼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깨끗한 삶을 살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의의 왕관을 받을 것입니다.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어하십시오.
우리는 아래로 데려갈 자(undertaker)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위로 데려갈 자(uppertaker)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흙덩이(더러움)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름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표적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은사주의자들처럼). 우리는 한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휴거 이후에 일어날 사건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심판에 대비해야 합니다. 보좌에 않아 계시는 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우리의 구주와 구속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합시다.